달, 그림자

4. 응달

by 금봉




미네코의 몸이 쇠약해지기 시작한 건 꽤 오래되었다.

타다요시의 죽음이 그만큼 기억나지 않을

정도의 일이 되었을 즘,

엊그제 일어났던 일처럼

감정의 소용돌이는 이제 그들 사이에서

추억은 농담처럼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의 것이 되었다.


그때부터 줄어들기 시작한 몸무게는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마치 미네코의 원래 모습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하즈키 가족이 한국으로 들어간 이후,

그들이 이곳에 살았던 것도 아닌데,

바다 건너에 있다는 생각에 한없이 쓸쓸했고

어둠이 밀려오는 기분이 들었다.


마나츠는 가까이 서 자주 미네코를 볼 때마다

딸인 나오코를 이해할 수 없었다.

자기도 미네코를 보면 속상하고 걱정이 되는데

어떻게 딸이란 사람이 그렇게

모질 수가 있는지

어깨를 으쓱할 정도로 소름이 돋기도 한다.


꽤 더운 날씨가 시작되었고

절정을 이루고 있었을 때,

가까이 있는 마나츠는 미네코를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유토가 유치원에 간 시간을 틈타

그녀의 집에 가끔 들러 확인한다.

힘없이 열리는 대문이 꼭 미네코 같다.

잠금장치를 자꾸 잃어버리는

미네코가 걱정이다.


“정말 큰일이네, 후.”

출처, 어느 가족


내리쬐는 햇살이 반갑지 않아 미간을 찌푸렸다.

마치 비어 있는 집처럼 엉망이었다.

앞뜰은 긴 수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고,

언제 널어놓았을지 모를

옷가지들이 바싹 말라 흔들거렸다.


마나츠는 절로 다시 긴 한숨이 늘어졌다.


“하아아아아.”


마나츠의 걸음이 빨라졌다.

미네코는 방에도 화장실에도 옥상에도

그 어디에도 없었다.

분명 알았다는 대답까지 한 미네코다.

마나츠는 미네코를 기다리며

정리되지 않은 물건들을 정리했다.


비가 그친 지 얼마 안 되어

습기를 머금고 있는 마룻바닥은

그야말로 끈적거렸다.

미네코는 다다미를 한 번도 바꾸지 않은 모양이다.

재빨리 뜨거운 물에 걸레를 빨았다.

환기가 될 수 있도록 창문, 덧문 할 것 없이

모두 열어 놓고 빠득빠득, 거리는

소리가 날 정도로 바닥을 닦았다.


한 시간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을 때

기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미네코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럴 줄 알았어, 마 나아츠으으.”


미네코의 목소리는 숨이 찬 소리다.

마나츠가 걸레를 화장실로 빠르게 집어던졌다.

걸레를 보면 분명 불만 섞인 목소리를 토해 낼 것이다.


“네에.”


미네코의 두 손에 커다란 비닐이 가득이다.


“이리 주세요, 어디 다녀오세요?”


“네가 온다길래, 시장에 다녀왔어.”


미네코가 무언가 찾는 것처럼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유토는?”


마나츠는 주방에서 물건을 정리하며 말했다.


“학교에 갔죠.”


뒤돌아 미네코의 얼굴을 보니 환했던 얼굴에

그림자가 금세 생겨버렸다.

미네코는 유토와 함께 올 줄 알았는지

아이가 좋아하는 과일과 과자 생선까지

봉투 속에 가득 담겨 있었다.

마나츠는 그녀의 서운함을 끊으려

빠르게 태세를 전화하며 말했다.


“끝나면 데리고 올 거예요
그래도 학교는 빠지면 안 되니까.”


미네코의 얼굴에 다시 햇살이 반짝거렸다.

깊은 주름은 미소 덕분에

더욱 굵고 잘게 패인 모습이다.

그녀는 비닐 속을 뒤지며

약 봉투를 빠르게 가져갔다.


“뭐예요?”


“응 늘 먹던 거다.”


미네코는 만성 질환성 빈혈이다.

그럴 때마다 약을 수시로 먹었다.

늘 그랬기 때문에 그녀의 빈혈에 관해서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증상이 있을 때마다 철분제를 복용했고

약이 떨어지면 다시 병원을 오고 가는 것을

오랫동안 반복해 왔다.


오늘따라 미네코의 얼굴은 미소를 짓고 있어도

햇살이 그녀를 비춰도 회색빛 얼굴이다.

불현듯 마나츠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마나츠는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말해야

미네코의 입에서 솔직함이 나올 거라는 생각을 했다.


“며칠 동안 몸이 지친 것 같았는데
그럴 땐 꼭 전화하기로 했잖아요,
이렇게 혼자 힘들게 병원에 다녀올 필요가…”


“아니야 아니야

몸이 움직일 수 있을 때 움직여야지.”


미네코의 이 대답은 며칠째

몸이 좋지 않았다는 뜻이 확실했다.


“다시 또 술 드시는 거예요?”


마나츠는 개수대 밑에 양주병을 가리켰다.


“또는 무슨, 가끔 먹는 거지,

괜찮아질 거야.”


그 말은 마시지 않아도

잠에 들 수 있겠지,라는 말과 같다.

그때 약 봉투가 하나 더 남은 것을 발견한

마나츠가 빠르게 집어 확인했다.


“저건 철분제, 이건 뭐지?”


“그렇게 들여보면 뭔지 알겠니?”


“뭐예요?”


“술을 먹지 말라면서?”


미네코가 신경 쓰지 말라며

온몸으로 얘기하는 듯

약 봉투를 서랍 안에 쑤셔 넣었다.


“잠을 여전히 통 못 주무시는 거죠?”


“늙어서 그렇다 유난스럽게 굴지 마,

우리 같은 노인들은 모두 흔히들 먹는 거니까.”


“흔히, 요?”


미네코는 딴청을 부린다.


“난 좀 쉬다 나올 테니 유토나 데리고 와.”


마나츠는 대문 잠금장치를 얘기하려 다

정말 피곤해 보이는 미네코를 보고

목소리가 쑥 들어갔다.


“네, 저녁에 올게요,

좀 쉬고 계세요.”


마나츠는 조금 더 일찍 유토를 데려와

미네코가 다니는 병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미네코의 주치의는 마나츠의 주치의이기도 하다.


의사는 미네코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던 터라

그녀의 상태를 동의 없이 발설했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며 손을 저었다.

마나츠는 그 소리에

오히려 가족이 잘못될 수도 있는데

그 어떤 도움도 못 되는 것보다

더 비참한 일은 어디 있겠냐는 소리로

그녀 특유의 설득력으로 의사의 긴 이야기를 들었다.


미네코는 우선 젊었을 때부터

간이 좋지 않았고

제때 치료를 하지 않았던 것도 요인이라고 말했다.

만성적으로 간 수치가 늘 높은 상태였고

의욕이 생기지 않음은 당연했고

활력이 없는 것도 빈혈이 있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마나츠는 의아했다.

유토를 사랑하고 나오코를 하즈키를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어째서 건강을 관리를 하지 않았는지 말이다.

시기를 놓쳤다는 것을

미네코가 알고 있었다는 것에

마나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의사가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쇼크 상태가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자 마나츠는 정말 눈앞이 캄캄했다.


태어나자마자 잃었던

엄마의 모습에 미네코가 그려지며

의사의 말처럼 될 것 같은 생각에

무섭고 절망스러웠다.

미워하고 원망했던 날이 더

많았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만이 아니다란 생각이 든 건

정말 얼마 되지 않았다.

불행의 씨앗을 몰고 올 것 같은

목소리의 의사는 덧붙인다.


“꼭 보호자가 곁에 있어야 합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금봉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저는 [광과 모서리를 닮은 여자] 저자 작가 금봉입니다.글의 쓰임이 엇나가지 않게 쓰고 또 써나갑니다, 오늘도!

290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2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35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