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사라진 그의 충돌
하즈키는 고속도로 위를 가는 내내 말이 없다.
하즈키는 정말 할 말이 없었다.
속도는 점점 느려지고 시간이 갈수록
고속도로 위 차들의 사이는 가까워졌다.
말 없는 시간을 보낸 후
결국 한숨과 함께 나오코가 먼저 입을 열었다.
“후, 그럼 모레 떠나는 거야?”
답이 없는 하즈키를 슬쩍 보았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잠이 든 것 같지는 않다.
미운 마음과 억울한 마음이 들 정도로
하즈키는 눈도 뜨지 않았고 입도 열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나오코는 운전에 몰두했다.
석양이 나오코의 눈을 찡긋하게 만든다.
다시 그를 흘깃거렸다.
하즈키는 눈을 뜨고 석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레 떠나는 거지?”
하즈키는 대답보다 먼저 한숨을 쉰다.
“후우, 그래 그리고 떠나는 게 아니라
돌아가는 거야.”
하즈키의 말에 나오코는 손으로 머리를 짚는다.
“하즈키?”
하즈키는 또 대답 없이 나오코를 보며
듣고 있다는 시늉을 하며 미간을 찌푸린다.
나오코는 조금 망설이다 말했다.
“나한테 왜, 왜 그래? 대체 왜?”
하즈키가 매섭게 말을 끊었다.
“그냥, 그런 말 좀 안 하면 안 돼?”
“어? 난 그저....”
하즈키는 아예 고개를 돌려
옆 창문만 바라보았다.
“대체 왜 그러는 거야?
그냥 말하면 되잖아?
그렇다면 다신 말 하지 않겠지
이유라도 알아야 할 거 아니야?”
하즈키는 아예 나오코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나오코가 말했다.
“나를 가장 비참하게 만드는 사람…”
한참 후, 하즈키는
자신이 운전대를 잡겠다고 말하며
휴게소로 방향을 바꾸길 말했다.
나오코는 다시 또 고집을 세운다.
나오코의 감정은
운전하는 모습에 고스란히 남았다.
나오코의 분노와 흥분은 가라앉지 않을 것 같았다.
나오코는 지금이 아니면
그에게 답을 들을 수 없을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냥 말하라고 뭐야?”
하즈키는 점점 불안하다.
나오코가 말했다.
“내가 말할까?
코하네는 하즈키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아니까
그걸 내가 아니까 그러는 거지,
안 그래?”
하즈키는 나는 너의 말에
동요되지 않았다는 듯
애써 평정심을 찾으며 말했다.
“넌 필요 없는 얘기를 굳이 늘어놓고
늘 상대방을 곤혹스럽게 만들어
몰랐다고 하지 마
난 그 점에 대해서는 네가 너 자신을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해.”
나오코가 웃었다.
“핫, 근데 그게 틀린 말이야?
내가 틀린 말을 해?”
하즈키가 다시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앉았다.
나오코가 다시 말했다.
“모른 척하면 되는 거야?
내 말이 다 맞는 거지 안 그래?
갑자기 할 말이 없겠지
근데 그건 알아?
하즈키만 모르는 게 아니라는 거 말이야,
다들 알아 다들 안다고... 멍청이.”
하즈키는 나오코를 똑바로 바라보고
낮은 목소리로 매섭고 단호하게 뱉는다.
“상관없어 다신 오지 않을 곳이니까
그리고 우린 정말 행복해.”
중앙 분리대가 언제부터
사라졌는지 모를 도로가 시작되었다.
쌩쌩, 달려오는 커다란 트럭들의 소리에
위압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나오코는 운전대를 두 손으로 힘주어
꼭 쥐더니 어깨를 움츠린다.
하즈키의 말은 나오코에게
그다지 충격적인 말이 아니다.
나오코는 하즈키가 그 생각으로
늘 머릿속이 꽉 차 있다는 것을
예전부터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타다요시의 집에서 도쿄로 오기 전까지도
늘 도망갈 궁리였던 하즈키다.
비겁하고 용기도 없는 삐쩍 마른
바보 같은 남자에 불과한 그였다.
나오코의 손바닥 위에 놓고 명령을 내리면
그 안에서 못 시킬 일이 없었다고 생각했던 그가,
친절하지 않아도 가족이었던 그가
이젠 그녀의 주위에 있어도
손끝에 닿지 않는다.
다시 중앙 분리대가 시작되는 시점에
역시 또 큰 트럭이 나타나
갑자기 클랙슨을 울렸다.
그 소리는 온몸이 움찔거릴 정도로 엄청난 소음이다.
나오코와 하즈키는 동시에 놀란 눈으로
앞을 응시했고 반대편에 있던 그 트럭은
갑자기 중앙선을 타고
그들의 차로 돌진했다.
찰나, 눈 깜짝할 사이, 악, 소리를 낼 시간도 없이
트럭은 그들의 차 위로 올라선 채
그들의 차를 뒤 따르던 다른 차들을
겹겹이 쌓은 후 멈추었다.
중앙선을 침범 한 트럭을 피해
나오코는 본능적으로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었으나
시간은 충분하지 않았고
트럭은 하즈키가 앉은 좌석을 누르며
몇 미터를 끌고 갔다.
빠지직, 쇠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유리가 깨지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고
하얀 물체가 하즈키의 눈앞에 멈추더니 정신을 잃었다.
정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잠시 정신을 잃은 나오코는
그보다 더 빨리 눈을 떴다.
뿌연 연기와 트럭 밑에서 나오는
그을음과 기름 냄새가 진동했다.
사람들의 말소리가 메아리치듯 들렸다.
도저히 나오코는 눈앞에 보이는 것들에
초점을 맞춰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
뭔가 생각이 났는지
목에서 흐르는 피의 통증도 모른 채,
옆자리의 하즈키를 보았다.
“으아악, 하즈키 하즈키이 하즈키.”
트럭의 커다란 바퀴가 유리문을 뚫고
하즈키를 누르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지체했다가는
트럭이 나오코 쪽으로 기울고 말 것이다.
나오코는 풀리지 않은 벨트를
미친 듯 잡아당겼고
하즈키의 형체를 찾았다.
나오코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더 이상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으어억, 하즈키 하즈키이익.”
목에 박힌 유리 파편들이
계속 몸을 꿈틀대는 덕에
조금씩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그제야 눈앞에 초점이 정확히 바뀌며
하즈키의 손을 찾을 수가 있었다.
풀리지 않는 벨트를 잡아당기며
그의 손을 잡았다.
“하즈키 하즈키? 제발, 하즈키...”
보이지 않는 어깨와 머리는
움찔대지도 소리를 내지도 않고 조용하다.
갑자기 징, 하는 소리와 함께
하즈키를 향한 바퀴가 내려앉으며
하즈키를 한 번 더 찍어 눌렀다.
“으아아악, 안돼 안돼 안돼, 하즈키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제발.”
빠르게 도착한 응급차와 구조대 경찰,
그들이 내는 소리가 요란하다.
자동차의 문이 절단기로 뜯기기 시작했고,
누군가 나오코를 잡아당겼지만
나오코는 하즈키의 손을 놓지 않았다.
구조대가 손을 놓아야 모두 살 수 있다고
하는 말에 꺽꺽대는 소리를 내며
나오코는 그의 손을 놓으며 소리치며 울었다.
몸이 차에서 모두 빠져나오자마자
그녀는 정신을 잃었고
목 주위의 사방에서 흐르는 피가 시트에 흥건했다.
나오코는 수혈이 시급했고
빠르게 병원으로 실려 갔다.
하즈키를 찍어 누른 바퀴는
크레인과 포클 레인이 들어 올렸고,
그 작업은 위험했다.
하즈키의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갔고
그를 조수석에서 빼내는 순간
구조대와 부상자들이 탄식했다.
그의 하체는 설명하기 힘든 모습을 하고 있었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성한 곳이 없었다.
바퀴의 뜨거운 부분은
하즈키의 작은 얼굴이 불에 덴 듯
녹은 것처럼 보였다.
하즈키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큰 수술에 들어갔고
하즈키가 정신을 차린 건 두 주가 지난 후다.
그날의 사고는 핸들이 말을 듣지 않던
트럭이 만들어 낸 12중 충돌 사고로
내내 뉴스에 보도되었다.
두 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25명이 부상 입었다.
겐토는 눈앞의 세상이
암흑과도 같다고 버릇처럼 말했다.
이 상황을 인정할 수 없는 건
모두가 마찬가지다.
그들은 숨소리도 내지 않을 정도로
적막을 애써 지켜내는 사람들 같았다.
하즈키는 깨자마자 자기의 모습을 확인했고
절망으로 빠져들기 전 그들에게 말했다.
“누구든지 내 가족에게
내 일을 말하는 사람은 가만두지 않아
죽여 버릴 거야, 그리고 죽겠어.”
하즈키의 담당 의사는
하즈키에게 천운이라고 말하며
용기를 잃지 말라는 말을 했다.
하즈키는 정말 큰 소리로 이죽거리며 대답했다.
“천운이라고? 하반신이 날아가 버렸고,
얼굴은 그을려 괴물이 되었는데
죽지 않았다고 천운이라니,
의사 양반 참 잔인하군,
아마 난 지금부터 당신을 원망하며 살 것입니다
병신을 살리고 천운이라니,
죽었어야 천운이지... 하하하.”
하즈키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렇게 크게 웃어댔다.
나오코는 목 주위를 세 군데나 꿰맸다.
상처는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 했다.
몇 번의 성형술로 희미하게 만들 수 있다고 했지만
나오코는 고개를 저었다.
하즈키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후
같은 병원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오코는 그에게 갈 수가 없었다.
도저히 하즈키를 볼 수가 없다.
모든 게 자신의 탓이라며
나오코는 치료도 거부하고
퇴원 후 술만 마셨다.
당연히 겐토는 이 암흑과 같은 일을
먼 곳에서 볼 수가 없었고
빠르게 도쿄로 다시 출근하기 시작했다.
나오코는 정상이 아니었다.
통원 치료라도 받아야 할 상황을
인지하지 않으려 했고 술을 마시며
검은색의 알 수 없는 그림만 그려 댔다.
하지만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막을 수 있어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통이란 단어는 이럴 때 쓰이는 것이다라고
생각나게 할 만큼 나오코의 모든 부분에는
고통이 서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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