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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그림자

8. 그 여름, 지독한 감기처럼

by 금봉




한여름 밤이 이렇게 추울 수 있는지 의아하다.

몸이 덜덜 떨리는 오한에

모든 근육이 베어 나가는 듯한

통증이 계속되었다.

좀 더 두꺼운 이불을 찾아

머리끝까지 올려 보지만

추위는 덜어지지 않는다.


코하네는 네발로 기어가며 뭔가를 뒤적였다.

아이를 위해 머리 밭에 늘 두던

체온계가 보이지 않는다.

이불을 몸에 칭칭 감고

카페인 덩어리의 물약을 찾았다.

남은 약을 들이켜고 다시 아이 옆에 앉았다.

한참을 벽에 기대어 있었다.

흘러간 짧은 시간에

오한은 땀으로 변해 있었고

근육의 통증은 가끔 저릿하다.


입에 쓴 물이 올라와 삼켜 보지만

목 안에는 침 한 방울도

남지 않은 것처럼 뻑뻑하다.

저절로 몸이 기울어졌다.

그제야 잠을 잘 수 있었다.


누더기 같은 한복을 입은

후미코(코하네의 엄마)가 창틀 위에 앉아 있다.

이곳에는 어떻게 돌아왔냐고 묻지만,

입술은 움직이지 않았다.

후미코는 뭐가 그리 좋은지 계속 웃고만 있다.

입을 벙긋하며 말하지만

코하네의 귓속으로 파고들지 않는다.


꺄르륵 거리는 소리만 선명하다.

코하네는 다시 눈을 비비며 바라보았다.

후미코가 입고 있던 누더기가

아주 깨끗한 옷으로 변해 있었다.

이렇게 변한 모습으로 나타나다니,

꿈인 줄 인지하지 못하고 코하네는 기뻤다.

잠시 잠에서 깬 료카가

입술에 미소를 머금고 있는 그녀를 보며

엄마,라고 작은 소리를 내더니

다시 그녀를 꼭 끌어안고 잠이 들었다.


여름 장마가 시작되는 소리다.

커다란 창문을 내리는 비가 후드득 떨어진다.

회색 하늘 덕에 그들은 늦잠에 들었다.

코하네보다 먼저 료카카 눈을 뜬 후,

후다닥 거실을 가로질러

잠긴 문을 점프하며 어렵게 열었다.


“하양아, 하양아,

어딨어어? 하양아.”


제법 커진 나무 밑에서 하양이가

젖은 털을 털며 아이에게 다가왔다.

코하네도 놀라 눈이 다 떠지지도 않은 채

문 앞에 서 있었다.


“이런 젖어 버렸네.”


하즈키는 날씨가 궂을 때마다

하양이를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오려는 료카를

단호히 안된다는 말로 거절했다.

그렇게 하양이는 그럴 때마다

창고 안 신세였다.

아이는 젖은 하양이 덕분에

자신의 옷이 젖은 줄도 모르고

코하네를 빤히 올려 보았다.


그녀 역시 고개를 저었다.


“으음, 안돼 료카.”


“하양이도 엄마처럼

아프면 어떻게 해요?”


코하네는 생각나는 말이 없었다.

잠시 생각하는 듯 말했다.


“잠깐 기다려 료카도 젖었어.”


급히 마른 수건으로 료카를 닦고

하양이를 수건으로 감싸 안았다.


“료카,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이야,

알았지? 들어가자.”


아이가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신나게 웃었다.


“우선 저번처럼 하양이를 씻기자,

따뜻한 물로! 알고 있지?”


“네.”


“하양이를 씻기고

아침을 먹는 거야, 괜찮겠지?”


“네에, 힛 근데

엄만 이제 안 아파요?”


“으응, 그럼.”


아이는 스스로 욕조 안에

하양이를 넣어 두고 적당한 물의 온도를 찾았다.

물을 극도로 싫어하는 고양이 같지 않게

하양이는 늘 아이의 손을 신뢰하고 따랐다.

거품의 색깔이 아주 짙은 회색의

흙탕물을 일으켰다.

그것도 뭐가 그리 우스운지

연신 아이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자 이제 헹구는 건

엄마가 좀 도와줄게.”


“응, 고맙습니다.”


하양이의 젖은 털이 따뜻한 공기로

바싹 말려지자 하얀 털에 윤기가 흘렀다.

저도 기분이 좋았는지

료카에게 다가가 다시 몸을 비비기 시작했다.

코하네는 아침을 준비하며

하양이와 뛰어다니는 아이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료카, 침대 위는 안돼 알았지?”


“네 알고 있어요.”


집 안으로 들어온 하양이도

이곳이 무척 마음에 드는 모양새다.

하양이는 캔 하나를 모두 먹어 치웠다.

마치 그릇을 닦아 놓기라도 한 것처럼

접시가 깨끗했다.

아이는 그것을 보더니

자신의 밥그릇에 붙어 있는 쌀알을

모두 끌어모아 입안에 넣으며

코하네에게 빈 그릇을 들어 보였다.


코하네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아이를 칭찬한다.


일기예보는 웬일인지 아주 정확했다.

그렇다면 일주일 내내

비가 계속 내릴 것이다.

다시 몸이 덜덜 떨렸다.

오한은 근육 통증 보다 더

참기가 힘든 것이다.

긴 팔을 꺼내 입고 목 위로

손수건을 둘렀다.


아이는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하양이와 잘도 지낸다.

일요일에 방문할 수 있는 병원은

찾기 힘든 일이다.

그렇다고 아이를 두고 응급실을

갈 수는 없었다.

인심 좋은 옆집 아주머니에게

부탁해도 되겠지만 다시 한번

카페인이 가득 들어 있는

물약을 믿어 볼 생각이다.


한국 사람은 대게 비상시로

이 약을 집에 비치해 둔다고 했다.

옆집 아주머니의 그 말에

얼떨결에 약을 사다 놓은 게

이렇게 도움이 되고 있으니,

정말 한국 사람이 다 된 기분이다.

달콤하다가 꿀꺽하고 삼키는 순간

쓴맛이 올라오는 이 약은

참 신비의 만병통치약이다.


코하네는 다시 이불을 칭칭 감고

소파에 앉았다.

빗소리가 좋아 모든 소리를 꺼 놓는다.

료카는 하양이가 잠들자 심심했는지

유토에게 편지를 쓴다고 끄적거리는 중이다.


“료카, 과일 먹을래?”


“아니요 괜찮아요, 이따 가요.”


“응 그래, 말하렴.”


“네에.”


일요일 저녁 하즈키에게 전화가 왔다.

반갑지 않은 내용이다.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한다.

회사에서도 특별한 경우의

입장으로 처리하여

무급으로 휴가를 쓸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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