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재회
태양이 바다 위를 오르는 시간이 더욱 빨라졌다.
창으로 스미는 빛이 따뜻하다.
마호는 어차피 잠이 오지 않는 밤,
감을 수 없는 눈을 포기하고 책을 읽는다.
빠르게 준비를 마치고 태양이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마호는 창밖의 태양을 보고 말했다.
“반갑다.”
그는 천천히 몇 개 되지 않은 계단을 조용히 내려왔다.
배낭을 메고 밤에 적어 둔,
그들을 위한 편지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주방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침잠이 많은 미쿠가 벌써 일어났을 리 없다.
이런 미쿠 목소리다.
“마호?”
“아, 어머니.”
미쿠가 종이봉투를 건네며 말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어떻게 일어나지 않을 수가 있겠니?
잠을 못 잔 거지?
삶은 달걀, 주먹밥이야
버스에 오르면 먹으렴.”
마호가 종이봉투를 배낭 안에 넣으며 말했다.
“네 걱정하지 마시고 좀 더 쉬세요.”
미쿠가 고개를 끄덕이며 고민하던 말을 뱉는다.
“저기, 마호.”
“네 말씀하세요.”
“이곳 반대편까지 갔다 온 너니까
엄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거지?”
마호가 피식, 웃으며 대답한다.
“그럼요.”
“그래, 그럴 게 그래도 혹시
더 멀리 갈 생각이거든
그전에 섬에 오는 거지?”
“네 그럼요.”
“그래 알았다.
날이 따뜻하니
걱정은 덜었구나 다녀오너라.”
“네, 다녀오겠습니다,
겐타 아저씨께 인사 전해주세요.”
“응.”
미쿠는 그가 기다란 나무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곳을 응시했다.
봄날이 서서히 지나고 있음을 느꼈다.
도시가 뿜어내는 열기는 계절을 더 앞당기는 중이다.
마호는 걸친 두꺼운 카디건을 벗어 허리춤에 묶었다.
잠시 쉬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아주 오랜만에 그곳을 찾았다.
마사토가 눈이 휘둥그레지며 마호를 맞는다.
마사토의 표정은
여전히 남이 오해할 만한 부루퉁한 표정이다.
하지만 마사토가 정말 자신을 반가워한다는 것을
긴 세월을 통해 알 수 있다.
“안녕하세요.”
“이야, 이게 누구야?
정말 오랜만이군
아주 멋진 사나이가 되었는데?
섬 생활이 적성에 맞는 거야?”
거친 악수를 마친 마호가 웃으며 응대했다.
마사토가 마호가 들어온 길을 기웃거리며 물었다.
“아니 왜 혼자 야? 리리는?”
마호가 자리를 찾아 앉으며 말했다.
“오늘은 혼자예요,
시원한 커피 주시겠어요?”
“응, 그러지 잠시 기다려줘.”
“진하게요.”
“오케이.”
마호는 배낭을 내려놓으며
이르게 찾아온 땀을 닦는다.
머리에서 흘러내린 땀이
가슴을 타고 내려가지 않게 목에 손수건을 매어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스스로 한 잔 더 가져온 물을
온전히 마시며 밖을 내다보았다.
코하네가 앉아 건널목에서 걸어오던
자신을 바라보며 당황하던 그 자리,
지금은 마호가 그 자리에 머물러 밖을 본다.
생각해야만 했다.
마호가 하즈키를 만나야만 하는
분명한 이유가 필요했다.
무작정 길을 나서긴 했지만
미쿠의 말처럼 자신이 관여할 문제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코하네를 위해
아주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한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마호는
정말 솔직히 하즈키가 걱정되는 마음이 더 컸다.
창밖으로 위험한 속도로
지나가는 트럭을 보면서 중얼거린다.
“몹쓸 트럭.”
하즈키를 찾아간다는 건 온전히 하즈키를 위함이다.
그건 속일 수 없는 감정이고
코하네가 우위에 서지도 않은 감정이다.
마사토는 초콜릿과 함께 커피를 내려놓았다.
마호가 초콜릿을 힐끔거리며
마사토를 올려 보며 말했다.
“먹어도 되는 거죠?”
마사토가 크게 웃는다.
“하하하 그럼 그럼,
그 반응은 여전하군 그래.”
“하하, 고맙습니다.”
“리리도 아니면 어디를 가려고?”
마호가 어깨를 으쓱거린다.
“친구를 만나러 가요.”
“음 그렇군 커피가 더 필요하면 말하게나.”
마호가 눈을 찡긋거린다.
마사토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느낌을 경력이 많은 카페 주인장으로서
빠르게 눈치채며 자리로 돌아간다.
마호는 손바닥 크기의 수첩에 적어 놓은
병원 주소를 다시 확인했다.
도쿄 안에 있지만 지하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거리였다.
지하철 노선을 확인한 후
달콤한 초콜릿을 입안에 넣었다.
그가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마호를 마주할 하즈키의 상태다.
마호를 담담히 받아들이거나 반대의 모습이거나.
하지만 나오코가 마호에게 소식을 알렸다는 건
아마도 하즈키의 생각이나
바람이 담기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오래전 하즈키가 나오코 집의
베란다에서 그에게 했던 말이 기억났다.
“혹시라도 류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리고 내가 없다면
우선은 당신이 된다는 것을 알아요,
물론 난 그게 서운하지 않아요,
모르겠어요 왜 난 당신이란 남자가
믿음이 가는지요
당연한 것이라 생각도 들고…
안심도 되고.”
마호는 그때 하즈키가 조금은
넓은 마음을 갖고 있는 사나이처럼 보이려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떤 일이 생겨도 하즈키가 말한 것처럼
물론 자신은 그럴 것이라고 아마도 믿어줘서
고맙소,라는 말을 했을 것이다.
하즈키는 그렇게 마호가 꼭 걸어가야 할 길을
인도해 주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예언가라도 되는 것처럼.
병원 외곽은 햇살이 가득했다.
설립된 지 얼마 안 된 것처럼
흰색 페인트 부분은 아주 깨끗하다.
아직 키가 작은 나무들 사이로
즐비한 의자가 앙증맞아 보인다.
병원 안에 들어서자 나지막하게 들리는
음악 소리가 긴장을 조금 풀어주는 듯했다.
평범한 환자들이 오가기엔
값이 꽤 나가 보이는 곳이다.
하즈키가 있는 층은 병실이
열 개도 채 보이지 않았다.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안내 데스크는
정문에 들어설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병실 바로 앞에 제법 큰 체격의 여자가
마호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미소 짓고 있었다.
그도 덩달아 미소 지으며
하즈키의 병실 위치를 부탁했다.
여자는 아주 친절하게 손가락으로
그가 있는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의 복도 끝 아주 큰 창문으로
공원이 훤히 내다보이는 위치이다.
“저기 보이시죠?
오늘은 참 기분이 좋으세요,
물론 식사도 하셨어요,
어제 가족분들이 방문을 했거든요.”
아주 긴 이야기를 더 나열할까, 하는
눈빛이었으나 마호가 이내 말을 끊었다.
“아, 네 감사합니다.”
눈앞에 있는 곳을 향해 걷는 길이 참 길다.
약간 열린 문틈은 마호가 보려 하지 않아도
볼 수밖에 없는 병실 안의 그림이 보였다.
그는 휠체어에 앉아 있었고, 책을 읽는 중이다.
마호의 눈엔 하즈키는 여전히 멋진 사람이었다.
마호는 아주 잠깐 고민하다 문을 두드렸다.
“똑똑.”
마호는 순간 문틈에서 몸을 숨겼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호는 다시 문을 두드린다.
“똑똑, 똑.”
엉덩이가 큰 간호사는 노크하지 않는다.
꼭, 목소리를 내어 하즈키를 부르곤 했다.
방문할 일이 없다는 생각에 대답했다.
“네.”
하즈키의 말은 물음도 답도 아닌 억양이 없는
네,라는 말 그 자체다.
마호가 문 뒤에서 입을 열었다.
“실례합니다, 마… 호입니다.”
순간 정적과 함께 병원 내에서
울리는 음악 소리와 링거를 달고
질질 끄는 보조기의 드르륵, 소리만 들렸다.
하즈키는 꽤 놀란 얼굴이었으나
아주 빠르게 부드러운 표정으로 바뀌었다.
마치 이제야 왔군, 이란 말이
튀어나올 정도의 표정이었다.
하즈키는 진심으로 그를 기다린 것이 분명했고
언제나 그랬듯 나오코는 하즈키의 생각을
꿰뚫고 있다는 게 증명되는 순간이다.
“들어오시죠.”
마호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하즈키는 휠체어를 돌려 정면으로 그를 맞이했다.
보지 않으려 해도 얇은 담요를 덮어 놓은
그의 다리 부분에 시선이 먼저 간다.
마호의 입에서 탄식의 소리가 짧게 들렸다.
“아아, 하즈키.”
하즈키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보다니,
참 민망합니다, 기다리긴 했지만…”
마호는 솔직한 심경을 말했다.
“미리 소식을 들었지만
당황했고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소식을 전해 들었다는 말에
나오코의 얼굴을 빠르게 떠올리며
미간을 조금 찌푸린다.
물론 나오코가 그렇게 해주 길,
아니 그렇게 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랬다.
“왜 아닐까요? 잘 압니다.”
마호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당신의 고통이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마호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하즈키의 손을 잡았다.
“잘 왔습니다, 고맙습니다”
하즈키는 소파 쪽을 가리키며
마호가 앉길 권했다.
“커피?”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들은 작정이라도 한 듯,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하즈키의 끔찍했던 사고의 순간들을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하즈키는 처음, 겐토에게 하지 않은
고통의 터널 속 이야기도 거짓 없이 털어놓았다.
그것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사탕처럼 생긴 알약이 없다면
견뎌 내지 못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나를 이해합니까?”
이야기의 전후 없이 대뜸 하즈키가 물었다.
물론 마호는 그 뜻을 아주 잘 이해했다.
심정은 정말 이해하고도 남는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료카와 코하네의 얼굴이 떠올라
내심 미안해진다.
“당신의 일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을 겁니다.”
“난 그 사람이 나를
이해하지 않길 바랍니다,
그래야 그 사람이 살 수 있을 테니까...”
“혹, 시간이 지난다면
돌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하즈키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시간이 지나면 물론 걸을 수 있겠지,
네 발로.”
말이 끝난 후, 하즈키는
산속에서 방금 내려온 사람처럼 웃었다.
마호의 긴 수염 또한 더욱 그래 보였다.
“그 사람에게 그런
추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습니다,
물론 이것 또한 내 이기심이란 거 모르지 않지...
한데 내가 이기적이지 못한다면
죽어야 할 수밖에 없지 않나?”
그들의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졌다.
서로를 알게 된 순간부터 운명적으로
지금의 날이 올 거라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간호사가 엉덩이를 뒤뚱거리며 걸어와
저녁 식사 이야기를 꺼내려 하자
하즈키가 빠르게 거절하며
오늘은 필요 없다고 짧게 말했다.
쉴 새 없이 말을 놓지 않는 간호사는
할 말이 없자 눈을 굴리며
생각났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잘 알아요,
병원 정문으로 나가서 걷다 보면
건널목이 나와요,
참 혹시 가봤어요?
거긴 아주 맛있는 국수를 팔아요
저녁 시간 때가 많이 붐비니까,
좀 이른 지금 시간대가 아주 좋겠어요.”
하즈키는 쩌렁쩌렁한
간호사의 목소리만 들으면 두통이 밀려왔다.
“알겠어요, 알겠어.”
간호사는 외출증을 끊고 다녀오라고
짧게 말하면 되는 것을 그녀는 늘
친절이 항상 과하다.
그들은 간호사의 말대로
병원 밖을 나와 그곳으로 천천히 향했다.
해가 뉘엿뉘엿 지자 시원한 바람이
건물 사이에서 불어왔다.
마호는 휠체어를 끄는 그의 속도를 맞추기 위해
천천히, 또는 빠르게 걸었다.
마호가 농담과 웃음을 섞어 말했다.
“당신은 환자도 아니에요,
술을 마시러 나오다니…”
하즈키가 오랜만에
진심으로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낸다.
“하하하하 그러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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