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빛을 따라 걸어
빛을 따라 걸어
가을이 시작된 한국의 모습은
그야말로 축제의 열기로 뜨거웠다.
최초로 열린 올림픽이란 단어에
모두가 두 손 모아 열광했고 응원했다.
특히, 일본인 선수로 상대가 진행되는 종목이라면
눈에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모두가
두 손을 모으고 침을 꼴깍, 거리며 응원했다.
귀한 시간이 가는 줄도,
서로의 목소리에서 쇳소리가 나오는 것도 모르고 소리를 질렀다.
폐막의 시간이 다다랐을 때,
네모난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감동에
사람들의 눈 속에 눈물이 어려 있었다.
각국의 사람들이 손을 맞잡고 둥근 원을 그리며
노래하는 모습은 정말 감동 그 자체다.
그 모습은 코하네와 료카의 눈 속에도 같은 모습이다.
옆집 아주머니 부부와 자녀는
노래까지 따라 부르며 올림픽에 대한 아쉬움을 남겼다.
이곳 사람들은 자신의 나라에 대한 자존감이
굉장히 강했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또한 대단하다.
한번 그들이 뭉칠 땐 그 힘은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했고
그 힘은 늘 옳은 것을 향해 결론에 도달했다.
코하네가 살았던 곳과는 참 많이 다른 모습이다.
그녀는 나라가 하는 일 또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거의 모든 이들이 나라가 하는 일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서로 토론을 한다.
가끔 토론이 과열되면 가벼운 말싸움도 일어난다.
코하네는 의아하다.
이런 사람들이 있는 나라가 왜, 강국의 침략을 받고,
전쟁을 치르고 그 많은 사람들에게
아픈 역사를 남겨 주었는지 말이다.
코하네는 요즘 너무 과하다 싶을 만큼
한국에 관한 공부를 이어갔다.
아마도 요즘 들어 부쩍 관심을 보이는
료카 때문이기도 했지만 후미코가 살았던
그때의 이야기를 더 많이 알고 싶었다.
그때의 참혹함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었고
일본에 있을 때 그 정보는 지금의 것과는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다.
그 역사는 거의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처음 한국에 와서 집이라는 곳에 정착하려 했을 때,
이곳 사람들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일본에서 왔다는 얘기가 나오자마자
그들의 미간은 동시에 찌푸려져
하즈키와 코하네를 당황스럽게 했었다.
그녀는 어느 정도의 짐작은
빠른 눈치로 그들의 미간을 풀게 만들 수 있었다.
“제 어머니, 아버지가 한국 사람이에요.”
굳이 코하네는 꼭 그렇게 얘기해야만 했다.
“나의 어머니는 그 시대의 똑같은 피해자입니다.”
그 후, 그들은 깊은 사정을 듣지 않고도
그녀 보다 더 하즈키에게 나라를 포기하고 온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라며 그를 위로라도 하는 듯 등을 토닥거렸다.
그들은 그렇게 이웃 사람들과 늘 소통하고 빠르게 물들어 갔다.
이곳의 생활은 비밀스러운 일을 만들기가 힘든 곳이다.
시간이 지남에도 하즈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코하네의 모습은 야위어 갔다.
당연히 그들의 관심사나 걱정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녀는 하즈키의 일로 다시 한번
료카가 상처받을 것이 걱정되었다.
다행히 몇 되지 않는 이웃 사람들은
그녀의 당부대로 료카의 앞에서 하즈키
이름을 말하지도 아빠,라는 단어도 쓰지 않았다.
코하네의 사정을 듣고 난 후
옆집 아주머니는 말했다.
“아이고, 여기서 생각할 땐
거기가 천하의 나쁜 것들이
사는 나라지만 말이 여,
나는 애 아빠를 이해혀,
자기 나라잖여, 안 그려?
언젠가는 지들 잘못을 반성하고
진짜 평화가 올 때가 있을 거여,
너무 걱정 말어.”
사투리가 심한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있으면
심각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웃음이 픽, 하고
나올 것 같았지만 그녀는 애써 참으며
고개를 끄덕거리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 해 료카는 학교 입학할 준비에 바빴다.
글은 일찍이 배웠기 때문에 어렵지 않았다.
이곳의 아이들은 구구단이란 것을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모두 외운다고 한다.
코하네는 굳이 아이를 오직 교육만 고집하는
방법으로 가르치고 싶진 않았지만,
옆집 아주머니의 충고대로 구구단 먼저 익히도록 했다.
료카는 숫자를 꽤 어려워했지만 료카 답게 잘 따라와 주었다.
코하네는 아이가 입학도 전에
학교에 대한 이미지를 좋지 않게 생각할까,
걱정이 앞선다.
또 한 가지 그녀는 큰 고민에 빠졌다.
아이들은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의 학원을 간다.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그 아이 중 한 명이 료카다.
옆집 아이들은 국민(초등) 학교 5년,
중1, 중2, 이렇게 셋이다.
이 아이들은 모두 학원이란 곳을 다니고 있었고
큰 아이는 두 가지 이상의 학원에 다녔다.
그녀가 물었다.
“학원비를 대체 어떻게 감당하세요?”
아주머니는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빚을 내서라도 보내야 뎌,
무슨 소리여?”
코하네는 이해할 수가 없다.
“빚이요?”
“그려, 빚, 몰라? 빚 말 이여,
남에게 빌리는 거.”
코하네가 고개를 도리질한다.
“아, 전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요,
공부도 중요하지만.”
아주머니가 말을 잘라 말했다.
“아니여, 공부를 잘해야 잘 되는 거여
그게 우선이라고.”
“전 아이에게 물어보고 정할게요.”
아주머니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빠르게 포기한다.
이곳의 추위는 빠르게 찾아오고 있었다.
낙엽이 채 모두 떨어지지 않았지만,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에 온 집안이 냉기로 가득했다.
시작한 난방은 집에 온기가
돌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즈키가 스치듯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날이 추워지면
온풍기를 미리 틀어야 해.”
코하네는 창고로 급히 뛰어갔다.
이리저리 시선을 옮기며
부직포로 씌어 놓은 물건을 찾았다.
새것처럼 보이는 온풍기를
그는 언제 들여놓았을까,라는 궁금증이 일었다.
그녀는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며
밀려오는 분노를 삭여야만 했다.
온풍기를 보니 마치 그는 자신이
이곳에 없을 줄 알고 미리 준비해 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쉽게 얼굴이 붉어지고 치민 화는
가라앉기까지 시간이 꽤 필요했다.
하즈키의 말처럼 집 안은
온풍기 하나로 빠르게 온기가 퍼져 나갔다.
하즈키가 없는 시간 동안 료카는
큰 빈자리에 적응해 갔다.
물론 아이의 성격상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도 있지만 코하네는 고마울 뿐이다.
애쓰지 않아도 아이는
오히려 코하네의 감정을 토닥거린다.
결국, 코하네는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학원이란 곳에 료카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아이의 입에서 먼저 학원, 이란 단어가 나왔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코하네와 함께 라디오를 들으며
듣는 음악 덕분인지 아이는 피아노 학원을 희망했다.
이제 코하네는 료카와 함께 보내는
하루의 시간 중 두 시간이나 학원이란 곳에
빼앗겨 버린 셈이다.
아이가 유치원을 다녀와 학원을 마치면
오후 세 시가 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그녀는 한국에서 자신이 일이란 것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물론 그때는 하즈키가 곁에 있을 때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단계는 아니지만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수단이란 생각을 했다.
우선 옆집 아주머니를 통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건 아이가 하교하는 시간과
같아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런 일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단순해 보이는 일들은 모두 근무시간이
오후 여섯 시를 넘겨야 끝이 났다.
그녀는 아키라 할아버지의 구둣방에 머물 때처럼
조금씩 일을 해 나갔다.
꾸준하지는 않았지만 별 무리 없이 일을 해냈다.
아주 추운 겨울을 제외하고
우유나 신문 배달도 서슴지 않았다.
새벽에 하는 일은 료카와 함께 있는 시간을
빼앗아 가진 않는다.
다만 혼자 잠든 아이를 두고 나오는 마음은
그때마다 아프고 아팠다.
코하네는 틈틈이 한국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지금도 보통의 대화와 책들을 무리 없이
읽어 내려가지만 전문적 지식이 필요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료카 또한
그녀처럼 관심사가 같아지기 시작했고
특히 한국사에 관한 책은
늘 아이의 머리 밭에 놓여 있었다.
다음 해 료카는 국민(초등) 학교에 입학했다.
다른 아이들보다 성장이 빠른 덕에
어디에서도 쉽게 눈에 띄는 아이다.
새하얀 피부는 코하네의 것과 같았고
짙고 깊은 커다란 눈동자로 늘 이목을 끌던 하즈키처럼
아이의 눈은 점점 더 그의 것과 같이 변해 갔다.
료카는 학급에서도 꽤 인기가 많다.
가끔 짓궂은 아이들이 장난으로 특이한 료카의 이름을
괴상한 발음으로 불러 놀림을 당하기도 했지만
료카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당하지 않았다.
항상 료카의 이름으로 장난하던 동급생은
결국 그것을 단숨에 멈췄다.
“료카? 요까 욕까 욕까아.”
“이름을 왜 그렇게 불러?”
“왜 요까요까, 너 이름 맞잖아?
욕까욖까.”
“그만해 지금 그만하지 않으면
나도 가만있지 않을 거야.”
“그럼 어쩔 건데? 욕까?”
료카는 순간 옆에 있던 플라스틱 필통을
남자아이에게 집어던졌고 아이의 이마를 맞춘 필통은
바닥에 내용물과 함께 널브러졌다.
료카는 아직도 분이 삭히지 않았는지
어깨를 들썩이며 씩씩거렸고,
남자아이는 소리를 지르며
바닥에 앉아 울음을 터트렸다.
그 순간을 본 선생은 마치 귀찮은 일이 생겼다는 듯,
느릿느릿한 속도로 아이들을 챙겼다.
연락을 받은 코하네는 학교를 향해 급히 뛰어갔다.
정말 상대 아이가 많이 다친 줄 알고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뛰었다.
하지만 선생의 말과 아이의 상태는 참 많이 달랐다.
어쨌든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그녀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왜 과정보다 결론,
즉 다친 아이에게만 관심을 보이는 것과
다친 것으로 모든 잘못은 료카에게 있다는
이상한 셈법이었다.
물론, 필통을 집어던져 아이를 다치게 했다는 건,
정말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료카는 마치 모든 잘못을
뒤집어쓴 죄인처럼 취급했다.
코하네는 그대로 물러설 수 없었다.
상대방 아이의 치료 부분에 있어서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말을 먼저 꺼내 놓고,
다시 상황에 대해 말을 늘어놓았다.
차분한 성격의 그녀 말투는
상대방을 압도하기에 아주 적합하다.
“우선 사과부터 드리겠습니다
료카, 친구를 다치게 한 부분에 대해
사과할 거지?”
“네.”
료카는 남자 동급생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다치게 한 거, 미안해.”
남자아이는 자기 부모 눈치를 보며 쭈뼛거렸다.
하지만 료카의 손이 허공에
오랫동안 홀로 머물렀다.
코하네가 다시 말했다.
“저도 아이의 엄마로서
주의 주지 못한 점,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료카 친구에게 할 말이 있습니다.”
상대방 아이의 엄마는 눈을 흘긋하며
고개를 옆으로 돌린다.
“동환이라고 했니?”
아이가 코하네의 눈을 바라보았다.
“동환아, 미안해 많이 아팠지?
그런데 동환아, 친구의 이름은 료카야,
너도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야,
그런데 료카의 이름을
계속 나쁘게 부른다면
동환이가 다친 것처럼
료카도 마음이 아플 거야,
다치진 않았지만 아픈 건 똑같은 거지
이해하지?
동급생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코하네는 다시 말했다.
“동환이가 먼저 실수를 했으니까,
물론 료카에게 사과해 주겠니?
그래야 하는 거란다.”
그 시간 동안 격앙된 소리로
자신의 아이가 다친 것에 대해 쉼 없이 얘기하던
동환이의 엄마는 볼과 귀까지 붉어지면서
어찌할 바를 몰라
아이의 등을 툭, 하고 밀친다.
“이 동 환, 뭐 해?”
그때 료카는 쭈뼛하는 동환의 앞으로 다가가
다시 손을 내밀었다.
료카의 행동으로 교무실에 있던
어른들의 눈은 모두 휘둥그레졌고,
담임선생은 그제야 어깨를 움츠리며
아이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그래 그래 친구끼리 사과해야 하는 거야,
그렇지 얘들아?”
동환의 엄마는 멀뚱 거리는 아이의 등을
다시 한번 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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