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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봉 Oct 10. 2024

안녕, 나의 작은 사회

13. 반짝이는 햇살이 비추는 교실, 칠판 위 낙서  그리고 웃음소리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붉은 성에서 막내가 아니다. 


봉다리는 이제 완벽하게 인사만 하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봉다리는 내 추억 속에 고스란히 접어 두고 꺼내 볼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마음속 친구가 되었다. 물론 봉다리와 지나칠 때마다 아쉬움의 한숨이 후, 하고 나오긴 한다. 


우린 학년이 올라가면서 완벽하게 헤어졌고, 반이 달랐던 점도 있지만 여자아이들과 남자아이들은 전과 다르게 완벽하게 동성끼리 짝을 지으며 다녔다. 다른 성을 모른 척하거나 창피하거나, 뒤에서 다른 성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며 우린 그렇게 자연스럽게 갈라졌다. 

간혹 코밑이 검은 연탄을 바른 것처럼 보이는 녀석이 있다면 도망가기 일쑤였다.

더 이상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친구가 되어 우르르, 하고 함께 다니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간혹 그렇게 길을 걷거나 한다면 벌써 학교 안은 이상한 소문들로 소용돌이치며 그들을 마치 애인, 취급하며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이야기하며 키득거렸다. 참으로 유치함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은 것인가 보다. 우린 이제 더 이상 아이가 아니라는 그 시점에 놓인 것이다. 

모두가 그렇게 외적으로 내적으로 빠르게 변해갔다.


나의 중학교 2학년 시절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아주 기분 좋은 피아노 소리와 함께 웃음소리가 가득한 교실, 늘 반짝이는 햇살, 그리고 낙서가 펼쳐진 우리들의 커다란 칠판, 그리고 목소리가 시끄러워도 듣기 싫지 않았던 그때,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드디어 나는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 같았다. 

정말 내가 원하고 원하던 그런 나의 학교와 친구들, 그때의 같은 학급 아이들을 정말 모두 천사,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온 하루를 기쁨에 젖어 또는 만족감에 젖어 행복했다. 홀로 쓸쓸하게 뚜벅거리고, 홀로 화장실을 가고 홀로 밥을 먹는 건 이제 내게 없는 일이다. 

나의 작은 사회에 대한 적응력은 점점 자라나기 시작했다.


아주 자연스럽게 나는 그렇게 교실 속 아이들에게 스며들 수 있었다. 어떤 거부감도 어떤 반항심도 생기지 않았고 그저 아주 자연스러웠다. 지금 이 교실 안의 따뜻한 온기는 나의 기억 속, 공포와 쓸쓸함을 말끔히 지워 낼 수 있을 만큼 충분했다. 이것을 영원히 붙잡고 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있었다. 

어쨌든 나의 지금은 그렇다. 


나의 담임은 음악 선생님이다. 난 이분을 단 한 분의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싶다. 

나의 선생님은 우리 반 아이들의 이름을 모두 외우고 있었고, 하루에 꼭 한 번씩 우리의 이름을 각자 불러주었다. 단 한 명의 이름을 불리지 않은 낙오자는 아무도 없었다.


우재야, 우리 우재, 이렇게 말이다. 

그리고 내 선생님의 아름다운 입술은 너희들, 우리, 나의 반, 사랑하는, 이라는 단어로 우리를 똘똘 뭉치게 할 수 있는 마법의 언어들을 가장 많이 뱉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말했다.


“내게는 가장 먼저 너희들의 의견과 생각이 중요해 
 그러니까 이 부분에 관해서 말해주지 않을래?”


이렇게 우리의 선생님은 늘 우리의 생각을 대두로 모든 것을 해결하거나 모색해 나갔다. 

그렇게 우리는 단 한 명의 반항아 없이 반짝거렸다. 몽둥이를 들고 자신의 기분대로 날뛰는 미친개의 반과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붉은 성을 겪으며 팔 년 만에 정말 제대로 된 우리의 작은 사회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반 아이들이 모두 친할 수 있었던 사실은 아마도 선생님의 역할이 가장 클 것이다. 


우리가 어른이 되어 이때를 생각하면 미소가 절로 지어지고 따뜻했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고 우리는 모두 그럴 것이라고 확신했다. 또한 나의 담임 선생님도 그랬다.


나의 선생님은 절대 혼자 한 약속을 우리가 한 약속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늘 우리의 의견이 가장 먼저였고 그것을 대체로 수긍했기 때문에 우리는 간혹, 저지르는 실수에 대해서 잘못이라는 단어를 짝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아주 잘 수긍했다.

그리고 우리가 짝을 이루는 방법은, 아주 민주주의적인 방법, 투표라는 방법으로 토론했고 가장 많은 다수의 의견으로 정해진, 번호로 자리를 정하여 앉기, 가 되었다. 

정말이지 정당했다.

그렇게 난 아주 낯선 아이와 짝이 되었다. 

첫 번째 성에서도 두 번째 성에서도 보지 못했던 아이이다. 이 아인 대체로 몸이 말랐고 홀쭉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이 친구 또한 친구 만들기가 가장 난제였고 공포였다고 말했다. 


이 점은 늘 내가 비밀에 부쳤던 사실,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고 싶지 않던 나의 아킬레스건, 우린 이 점에 같은 점을 찍고 있었다. 하지만 난 초등학교 시절의 독단적인 만행과 내 영혼의 단짝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굉장히 낯설었던 이 아이는 나를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신기한 일이었다. 


알고 보니 우린 초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고, 늘 혼자였던 나는 당연히 이 친구를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때의 난 누구를 칭하며 친구를 말하던 때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 아이를 알 수 없었다. 

따지고 보면 난 항상 내가 불쌍한 피해자라고 생각해 왔다.


날 알고 있었다고 한 아이의 모습을 난 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었던 것을 보면 우린 모두가 작은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스스로 정해 놓은 피해자가 아니었나 싶다. 그렇게 우린 같은 점을 찍으며 그 점으로 인해 급격하게 친밀감을 쌓기 시작했다. 


이미 나를 알고 있었던 나의 짝, 나의 홀쭉한 친구의 이름은 수진이다. 수진이의 집은 붉은 벽돌로 지어진 단독 주택이었고 집 앞에는 아주 작은 정원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붉은 성과 같은 색과 모양이다. 

생각해 보면 이 붉은 벽돌이 그때 유행이었나 싶다. 


붉은 벽돌의 이층 다락방, 이층은 수진이와 수진의 언니들이 함께 쓰는 방이다. 

나이 차이가 많은 가장 큰 언니는 이미 성인이 되어 독립한 상태였고 늘 보기 힘들었던 둘째 언니는 내가 갈 때마다 집에 없었다.


나는 매일 아침 초인종을 누르며 말한다.


“수진아, 학교 가자”


어쩌다 마주치는 수진의 아빠, 나는 아저씨가 너무 무섭다. 

단 한 번도 밝게 웃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내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면 아저씨는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으,라고 했는지 어,라고 했는지 부정확한 말을 뱉고 출근하기 위해 발을 옮겼다.

그와 반대로 수진의 엄마는 굉장히 친절했다. 

늘 걱정 섞인 말투와 키가 큰 아주머니는 나의 이름을 아주 다정하게 불러주었다. 


수진이는 내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쿵쿵거리며 이층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그리고 우재야, 하며 미소를 지었다. 

난 그게 좋았다. 그렇게 우린 엄마에게 또는 아주머니에게 합창했다.


“다녀오겠습니다”


오늘 아침도 참, 날씨가 좋다. 

우린 뭐가 그렇게 웃겼을까, 지나가는 벌레를 봐도 웃었고, 눈만 마주쳐도 미친 듯 웃었다. 

너무 웃겨서 배가 아픈 지경이 몇 번이나 있었는지 셀 수도 없다. 


반 아이들은 모두가 함께 친했기 때문에 누구와 특정하며 다니지는 않았다. 

아, 내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날이 왔다니, 나 자신도 믿기 힘든 아주 기분 좋은 사실이다.

우리는 늘 우르르 많은 인원이 다 같이 몰려다녔고 가장 화목한 반이라는 칭찬을 나의 선생님은 아주 자주 들었다고 한다. 


그중에 수진이와 나는 유독 붙어 다녔다. 

우리의 일상을 자세히 말하자면 말이 안 되는 일투성이다. 학교에 등교를 하자마자 우린, 화장실로 달려가 모두가 보충수업 또는 자율학습을 하는 동안 도시락을 먹었다. 그 맛은 음, 정말 먹어 보지 못한 사람은 모를 것이다. 천국의 음식 맛도 이렇게 맛있지는 않을 것이다. 우린 근처 가까이 앉은 아이들과 더욱 친밀했는데, 나는 이때 조금 당황해하거나 갈피를 잡지 못할 때가 많았다.


이제 난, 친구란 존재에 관해 심각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희망을 품고 있을 때, 큰 난관에 부딪혔다. 

나를 난관에 부딪히게 만든 이 친구 또한 홀쭉이다.

50대 50 중간 가르마를 일정하게 탄 단발머리의 정희라는 친구이다. 

정희는 내가 예전 과외를 했던, 창영이가 사는 그 동네에 살았다. 


아참, 창영이에 대해 잊고 있었던 게 있다. 

창영이는 우리가 학년이 올라가자마자 이사를 했다. 

창영이는 내게 마지막 인사는 아니라며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내게 편지를 남겼다. 

그때의 새빨갛던 창영이의 얼굴이 아직도 어른거린다. 


창영이는 당연히 이사한 후, 놀러 오겠다던가, 잊지 않고 연락하겠다, 는 내용으로 구구절절 편지를 남겼다. 난 왜 그랬을까? 난 창영이게 답장을 쓰지 않았다. 

영주를 잃어버린 후로, 떠나는 친구의 말을 믿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닐까? 


나는 창영이의 말을 믿지 않았고, 조금씩 창영이에게 마음을 열며, 친구라는 의미로 수를 놓아 보려던 그때, 창영이가 건넨 인사는 정말 그렇게, 마지막 인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사실, 나는 그때 조금 상처를 받았던 것 같기도 하다.


역시 창영이는 이사하고 전학한 후, 영주처럼 존재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나는 벌써 어른들이 말하는 어린아이들의 그 시점에서 얻게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친구들을 몇씩 잃는 중이다.

볼 때마다 싱그러운 녹색 느낌의 창영이, 그래도 마지막 인사를 내게 건네고 간, 창영이가 나는 무척 고맙다. 조금은 쓸쓸했지만 말이다.


수진이와 내 집은 완벽하게 반대 방향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거리를 꽤 잘 걸어 다니며 왕래했다. 

정희의 얼굴은 굉장히 묵묵하고 조용한 성격일 것 같지만 약간의 뚱해 보이는 귀여움이 있는 아이다. 

그런데, 수진이와 정희는 자주 다투었다.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많이 다투었다. 


나는 중간에서 해결사가 되어야 했고, 당연히 서툰 나는, 해결사 노릇을 완벽하게 잘 해내질 못했다. 

나는 현명한 판사의 기질을 갖고 있는 아이도 아니었고 이 상황에서 늘 우유부단한 판결만 내리기 일쑤였다. 

갑자기 찾아온 나의 많은 친구 사이에서, 한번 도 경험하지 못한 이 끈끈하고 섬세한 관계라는 것 속에서 나는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 보면 역시 난, 아직도 영주에게 맡긴 내 영혼을 아직, 찾아올 생각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두 번째 붉은 성은 참 희한했다.

갑자기 2학기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과를 나누는 것이 아닌가, 안 그래도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닥치는 새로운 얼굴과 환경 때문에 난 너무 고달픈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나는 문학을 좋아했다. 

물론 늘 대놓고 동굴 같은 콧구멍을 쑤시는 문학 선생이 싫지만, 나는 문학 시간이 되면 집중력이 최고조로 달했다. 그래서 난 당연히 내가 문과에 지원할 생각이었고, 그때까지는 고민도 해 보지 않았다. 


정희가 물었다.


“우재 너 문과지?”


난 당연히 어,라고 대답했다. 


“와 그럼, 또 같은 반이 될 수 있어”


우리들의 이 아름다운 2학년 반 아이들과 갈라지다니, 나는 슬펐다. 

그렇게 난 정희와 같은 반이 되는 것, 그리고 다른 반이 되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수진이가 정희와 같은 말을 내게 물었다.


“너 어디 갈 거야?”


“응?”


“과 말이야”


난 물었다.


“너는?”


“나는 이과”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수진이는 내가 이과,라는 말을 하길 기다리는 게 분명하다. 

그리고 정희가 문과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내 머릿속이 하얘졌고 수진이가 내게 쓴 편지가 생각났다. 

난 너의 진정한 친구, 그리고 영원한 친구.


“으응 , 나도 이과지”


난 나의 대답에 어이가 없었다. 역시 난 흔들림이 많은 아이다.

난 수학의 수,라는 글자도 경멸했고 매점에서 컵라면을 살 때 돈을 내고 거스름돈을 받기 위해 계산하는 것도 싫었다. 사회라는 과목에서 알게 된 물물교환이란, 시대가 다시 오길 바라는 그럼 사람이다. 

그런데 이 과라니, 이게 무슨 터무니없는 대답인가, 분명 내 얼굴이 붉어졌을 것이다. 


수진이의 얼굴이 음료수, 아침 햇살처럼 밝아졌다.

난 보았다. 수진이가 끝도 없이 기뻐하는 모습을 말이다. 난 내가 책임질 수 없는 일이 들이닥칠 것 같아 하루하루가 불안했다. 공정함을 위해서는 단 하나의 방법뿐, 내가 학교를 그만두는 것이다. 

하지만 내 인생은 아직 어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시기였고, 참으로 호락호락하지 않은 어린아이의 삶을 살고 있다. 


난 정희에게 말했다. 

그리고 난 정희가 이해해 줄 거라 믿었다. 왜냐면 정희는 친구도 많았고 늘 어른스러웠고 수진이와 내가 갖고 있는 공통점을 겪지 않았으니, 당연히 이해해 줄 것이라 믿었다. 

나름 잘 포장된 핑계로 나는 결론을 내렸다고 생각했다. 

나의 사정을 들은 정희가 말했다.


“같은 이과라고 어떻게 반이 같아? 

 그럼 좋겠지만 어차피 이과 문과, 모두 두 반씩 갈라져”


난 정희의 그 대답을 들었을 때 정말 기뻤다. 

우선 정희는 나를 이해함과 동시에 더 빨리 앞을 내다본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힘들 바에야 난, 차라리 모두 다른 반이 되길 기도했다. 

정말 그랬다. 정말 뿔뿔이 흩어지길 바랐다.


며칠 후, 나의 바람대로 우리는 모두가 각자의 반, 모두가 각각 그렇게 보기 좋게 떨어졌다. 

우리 반 전체가 그렇게 너덜너덜하게 모두 떨어지고 만 것이다. 

우리 반은 그렇게 이별의 씁쓸함을 겪어야만 했다. 우리의 담임 선생님은 모두에게 편지를 썼다. 

이날 선생님과 우리들의 눈물이 교실을 가득 메워 잠겼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우린 그렇게 슬픔의 눈물을 흘렸다. 

수진이는 눈이 퉁퉁 부어오를 정도로 울었다. 

나는 말했다.


“수진아 울지 마, 바로 옆이잖아?
 한 시간 수업 끝날 때마다 만날 수 있어
 바로 옆 반이고 학교 올 때도 매일 같이 올 텐데 걱정할 것 없어”


수진이는 무섭다고 했다. 

난 그 무서움을 너무 잘 안다. 그리고 난 그 무서움에 그래도 단련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난 나보다 더 무서움에 단련이 되지 않은 수진이를 위로해야 했다.


수진이도 밤바다 두려움에 발이 떨어지지 않아 오줌을 쌌을까,라는 궁금증이 갑자기 휙, 스쳤다. 

우린 이별임을 알았고 같은 반 아이들은 미친 듯 서로에게 친절함과 웃음과 정을 나눴다.

남자아이들도 다를 것이 없었다. 


우리 반의 반장은 뚱뚱하고 얼굴도 살이 쪄서 네모처럼 보이는 아이이다. 

우린 다정한 할아버지 같은 반장을 정말 좋아했다. 친밀감을 섞은 놀림을 줘도 반장은 늘 우리를 친절히 대했다. 반장은 그렇게 우리를 정말 잘 이끌어 주었다. 


체육 대회라도 열리는 날에는 우리 반이 아무리 꼴찌를 하더라도 우린 꼭, 응원상 인기상 단합에 관한 상을 싹쓸이했고, 우린 모든 것을 거의 공유하며 지냈다. 그것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은 아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다리를 떠는 덜덜이나, 시끄러운 아이들을 싫어했던 것과 다르지 않게 그랬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래도 우린 대게 모든 것을 함께 나누고 공유하는 법과 그것에 의해 기쁨이 도달한다는 점도 배우게 되었다.

 

또다시 방학이 찾아왔다. 

방학 동안 보름 정도의 시간은 꼭 보충수업을 해야 했다. 

그래도 같은 반 아이들은 오전 시간이라도 서로를 마주할 수 있어서 기뻐했을 것이다. 

물론 나도 기뻤다. 그러는 중 수진이와 정희의 보이지 않은 싸움은 계속되었다. 

아주 슬픈 일이다. 

왜냐면, 이 싸움은 내가 사라지지 않은 한 사라지지 않을 일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난 은근히 우리가 뿔뿔이 흩어질 나의 이과 생활이, 2학기가 어서 빨리 오길 기다렸다.


참, 의아하지 않은가?

홀로라는 것이 쓸쓸해서 고독을 씹으며 눈물을 삼킬 때가 언제였냐는 듯, 나는 이제 홀로,라는 쓸쓸함을 다시 찾고 있다. 대체 이런 관계의 일은 왜 생길 수밖에 없고 겪어야만 하는지 난 고통스러웠다. 


언니 우정이는 공부를 잘했다. 

우정이를 칭찬하는 선생의 얼굴을 난, 보지 않았음에도 그 소리를 들어야 했다. 

공부와 거리가 먼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 같았다. 


우정이는 고등학교를 충현 오빠가 사는 동네로 갔다. 그것도 사립이다. 

어른들 말로는 돈이 꽤 들어간다고 한다. 하지만 언니 우정이에 관해 들어가는 돈이란 건 나의 엄마와 아빠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 내게 드디어 해방이 찾아온 것이다. 


우정이는 통학이 힘들어 친척 집에서 학교를 가야 했다. 

물론 학교를 가지 않을 때는 연립 아파트로 오긴 했지만, 난 거의 혼자서 방을 차지한 것과 같았다. 

조금 무섭긴 했지만, 그때 우리 집에서 키우던 복실이 덕에 난 무서움을 방관할 수 있었다. 


어느 날, 나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방을 혼자 차지했고 언니에게 가는 관심을 늘 나누어 받는 것을 뒤로하고, 이제 홀로 그 관심을 받을 것이라 내심 기대했다. 하지만 뭔가 크게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감지했다. 


우성이와 우정이는 나와 다르게 모두 도시의 생활을 하고 있다. 

왜 나의 엄마는 나를 그들과 똑같은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지 않았을까? 

이것을 어찌 차별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조금 모자란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였을까?


내 안에서만 잠재해 있다가 일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악마가 다시 내비치기 시작했다. 특징적인 어떤 상황 속에서 내 속의 악마가 반항심으로 씩, 하고 미소 짓고 있었다. 

준비, 땅, 하는 순간 일은 벌어질 것이다.

큰일이다.

난 이 울타리에서 진정 골칫덩어리인가? 너무 슬프고 또 슬펐다. 


내가 캄캄한 밤 달빛이 만들어 낸 그림자를 따라 집에 들어오면 나의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우정이가 집에 들어와야 거실에 있던 발을 끌며 안방을 차지하던 엄마의 모습은 이제 없다. 

우정이가 없었기 때문에 엄마의 관심을 끌 수 있다고 생각한 이 멍청한 생각을 했던 내가 한심했다. 

오히려 엄마의 빈자리가 티가 날 정도로 엄마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떻게 내가 학교에서 돌아왔는데도 내 얼굴을 확인하지 않을 수가 있지? 


내가 엄마의 뱃속에서 해방될 때 나를 모른 척한 가족들과 다름없는 엄마였다. 

그렇게 점점 깊게 슬픔으로만 들어갔다.

그렇게 나는 엄마의 곁 사정거리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방학이 시작되었고, 우정이는 남은 학교 수업 때문에 집으로 일찍 돌아올 수가 없었다. 

나는 그 틈을 타 정희와 수진이를 집에 데리고 왔다. 마침 집을 비운 엄마와 우성이 덕에 우린 라면을 삶아 먹을 생각이다. 라면 세 봉지를 껴안고, 우리가 좋아하는 비디오를 빌렸다.

이럴 수가, 우유 구멍에 열쇠가 없는 것이 아닌가, 뭐 엄마가 돌아왔을 수도 있다. 

나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아이들과 함께 집 안으로 들어섰다.


이런, 언니 우정이 눈을 아래위로 희번덕이며 우리를 훑어 내렸다. 

아주 오랜만에 마주한 우정이는 역시나 나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난 눈치를 확인하며 행동해야 했다. 

눈치 빠른 아이들 역시 우정이의 눈치를 살피는 중이다. 난 우리에게 행복을 안겨주는 라면과 비디오를 위해 불의에 맞서야 한다. 라면을 끓일 준비를 하며 아이들은 식탁에 앉아 재잘거렸다. 

갑자기 우정이가 말했다.


“야 니들 왜 왔어?
 볼일 봤음 가라”


정희는 특유의 귀여움으로 대답했다.


“에이 언니 왜 그래, 우리 금방 왔잖아, 비디오 함께 보자”


아니 이게 무슨 얘기람, 지 돈으로 산 집도 아니고 엄연히 엄마 아빠가 마련해 준 집이다. 

또한 나는 친구들을 데리고 올 수 있는 자격도 있다. 나도 이 집의 딸이 아니던가. 

지가 뭔데, 내 친구들을 내치는 거지?

이번이야말로 난 물러 수 없었다. 

난 정희에게 라면을 부탁하며 방 안으로 우정이를 유인하며 말했다.


“뭔데 가라 해?”


난 결코, 네가,라는 말을 쓸 수 없었단 말인가? 

용기 잃은 자여, 그렇게 하늘에서 용기를 뚝, 떨어뜨려 달라며 애원했건만 기도는 쓸모없었다.


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내가 방문을 닫기도 전에, 우정이는 나의 운동장 만한 이마를 손으로 밀쳤다. 

난 아주 보기 좋게 침대 위로 보기 좋게 관절의 굴곡 없이 아주 우스꽝스럽게 일자로 나동그라졌다. 

나는 열린 문틈으로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그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고, 눈물 많은 난, 당연히 소나기처럼 흘렸다. 

정희는 참 용기가 있는 아이다.


“아, 언니 진짜 왜 그래? 
 우재가 뭘 잘못했어? 와 언니 진짜 못됐다?”


“야, 너도 혼나기 싫으면 가만히 있어”


수진이도 백지장을 맞들기 시작했다.


“와, 언니 진짜 못됐다”


“뭐? 야 니들 조용히 하라 했지?”


우정이는 자신도 내 모습을 보고 조금 놀랐는지,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반박의 말을 늘어놓지 못했다. 

그리고 안방 문을 쾅, 하는 소리가 들리도록 닫고 나가 버렸다. 

그 행동은 더 이상 관여하지 않겠다, 뜻 아닌가. 불행 중에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이미 친구들 앞에서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졌고,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었다. 

정희가 끓는 물에 라면을 넣으며 말했다.


“오 분만 기다려, 우재도 너도 그만 울고, 응?”


정희는 역시 여섯 자매 사이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운 아이다웠다. 

언제 어디서나 자신만만했다.

수진이는 나의 볼을 닦으며 팔을 잡아끌어 식탁에 앉혔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는 보글거리며 끓는 라면의 냄새에 빠져 버렸다. 

역시 정희는 라면을 잘 끓인다. 정희는 갑자기 냉장고 문을 열어 파를 찾더니 숭덩숭덩 잘라 넣고 마치 자기 집인 것처럼 행동했다. 

우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라면 앞에서 다시 기쁨을 찾았다. 

그리고 현명한 정희는 잊지 않고 우정 언니를 불렀다.


“언니, 같이 먹자, 얼른 나와”


나올 리 없는 언니 우정이다. 

그래도 정희의 그 말 한마디에 나의 마음은 정말 가벼워졌다. 

우린 라면을 먹고 비디오를 설레는 마음으로 보았다. 

피겨 스케이트 선수로 활약하는 여자 주인공과 남자 주인공의 사랑을 그린 영화다. 

우린 영화가 끝나고 두 손을 모으며 각자의 꿈을 꾸며 날았다. 


이날 가장 최고로 히트 친 일은 우리가 집 밖으로 나간 후, 언니 우정이는 라면을 끓이고 내가 빌려 온 그 비디오를 열심히 시청했다는 것이다. 예전 같았다면 그 자존심으로 절대 행하지 않았을 일이다.

친구들을 바래다준 후, 집에 들어오자마자 나와 눈을 마주한 마녀, 내가 아마도 좀 더 늦게 들어올 줄 알았던 모양이다. 난 비웃음이 새어 나왔지만 조금이라도 티를 냈더라면 나의 넓은 이마의 한 부분은 또다시 우정이의 손바닥이 차치했을 것이다. 


지도 나름대로 영화가 끝나고 두 손을 모으며 자신만의 왕자님을 꿈꾸며 훨훨 날았을 것이 분명하다. 

누굴 생각하면서?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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