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성기의 빛
나는 신음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전 암울의 집은 아저씨의 세 식구가 살았던 집이다.
아저씨와 그녀는 내가 성제와 살았던 것처럼 살았다. 물론 2세에 대한 희망의 씨도 없었다.
그들은 그렇게 철저했다. 그때도 카미가 있었다고 했다. 카미는 벌써 임신을 두 번째 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날은 카미가 새끼를 낳고 열흘째 되는 날이었고 아저씨의 그녀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은 날이기도 했다.
그들은 서로 눈을 마주하고 경악했다.
텅 빈 아저씨의 몸이 뭔가 이상한 일을 만들었다니 불가능한 일이었다.
의사가 말했다.
“1프로의 가능성입니다”
아저씨는 1프로의 가능성이 빛을 만들었다는 생각에 2세에 대해 냉정했던 감정이 순간 격렬한 감정으로 싹트고 있었다. 빛에 대한 본능이었다.
그들의 10개월은 암울의 집에서 굉장히 너울거리는 빛을 만들어냈다.
마치 카미처럼 그녀는 엄청난 모성 본능을 보여주며 아이를 지키고 보듬고 안았다.
그녀가 말했다.
“누굴 닮은 거지?”
아저씨가 아이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한 번 본 후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흠, 아직 잘 모르겠어”
그녀가 버럭 화를 냈다.
“당신은 그게 문제야
그냥 누구든 닮았다고 하면 안 되는 거야?”
아저씨는 그녀가 화를 내는 이유를 알 수 없었고, 다시 말을 이었다.
“연아, 왜 또 그래?
아기는 원래 얼굴이 다 이래”
그녀는 아이를 안고 방문을 쾅, 소리 나게 닫았다.
그녀는 아이를 낳자마자 산후우울증으로 상담과 약물치료를 받았다.
아이의 돌이 지난 무렵, 까만 까미의 눈처럼 그녀가 매섭게 물었다.
“누굴 닮은 것 같아?”
그리고 그녀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고 눈은 경멸하듯 웃었다.
아저씨는 그 웃음의 의미도 찾지 않고 아주 오랜만에 입꼬리가 올라간 그녀를 보며 말했다.
“오늘 기분 좋아 보여
우리 윤희는 당신 닮았지
이렇게 웃는 입도 눈도”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윤희가 카미를 만지작거렸다.
늘 윤희에게 친절했던 카미가 갑자기 하악질 하며 등을 곧추세우며 이를 드러냈다.
그때 그녀는 벌떡 일어나 카미를 발로 세게 차버렸다.
카미의 늘어진 뱃살이 붕, 하늘로 올랐다, 바닥에 찰박, 하는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아저씨가 말했다.
“뭣 하는 짓이야?”
그녀가 말했다.
“모든 게 다 불결해
윤희는 나도 당신도 닮지 않았어
당신 알고 있잖아?
왜? 왜? 왜 모른척하는 거야?”
아저씨가 카미에게 다가갔다.
카미의 숨이 가빠지더니 쇠에 부딪힌 꺾인 머리에서 피가 흘렀다.
어떤 손도 쓸 수 없이 카미는 순식간에 숨을 쉬지 않고 점점 굳어갔다.
아저씨는 카미를 안고 뜰 깊숙한 곳에 묻었다.
간혹 어미를 찾아왔던 새끼들이 그곳의 냄새를 맡으며 아주 오랫동안 머물다 돌아가곤 했다.
늦은 밤, 아저씨는 집 안의 조명이 일층부터 이층까지 켜져 있는 것을 보고 의아했다.
누군가 찾아올 리 없는 그녀와 아저씨의 인간관계다.
문을 열자마자 우다다다 달려 올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윤아, 윤아”
“연아, 여보”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눈이 부실 정도로 형광등이 쨍하게 밝았다.
아저씨는 안방 문을 열자마자 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이의 모든 물건이 여기저기 널 부러 있었고, 가방 여러 개가 사라졌다.
함께 살았던 세월이 종이 한 장으로 묵사발되었다.
윤희는 아저씨의 1 프로의 가능성이 아니었다.
그녀의 발신 번호가 찍힌 휴대폰이 울렸다.
“그래...”
“그래?
당신은 여전히 담담하네
왜 묻지 않았어? 다 알고 있었잖아
내가 지옥에 떨어지는 게 보고 싶었지?
그렇게 날 괴롭히고 싶었겠지”
아저씨가 말했다.
“윤희는 괜찮은 거지?”
그녀의 울먹거리는 소리가 아저씨의 귀를 통해 심장을 베었다.
“찾지 마, 어차피 당신 자식도 아니잖아?
내일이면 우린 한국에 없어
당신이 원한 게 내 지옥이라면 난 끝까지 나쁜 년이 될 거야
그러니까, 윤이가 잘 살길 바란다면
잊고 살아, 당신을 위해서도 우리 모두를 위해서도”
아저씨는 마라톤 같았던 이야기를 끝내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나도 함께 아저씨의 호흡을 맞추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저씨의 숨에서는 고단한 단내가 풍겼다.
바닷가에서 엄마의 고단한 숨을 맡았던 그 슬픈 냄새와 같았다.
내가 물었다.
“다 알고 있었어요?”
“알았어도 몰랐어도
그들은 내 곁에 머물지 않았을 거예요
그게 내 운명이었으니까”
내가 말했다.
“아저씨는 처절했지만
윤희는 엄마 곁에 있잖아요”
아저씨가 나를 내려보며 아침 해처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쨍한 해가 창문을 비추고 있었다. 입김이 나올 것 같은 새벽의 색과 참 잘 어울린다.
나는 아저씨를 따라나설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아저씨는 승용차 앞 좌석을 열어 놓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내 말이 없던 아저씨가 말했다.
“그럼 같이 가요”
“아니요, 안 돼요”
“왜 안 돼요?”
“이것도 운명이에요”
아저씨가 피식거렸다.
“도울 수 있어요”
내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저씨가 내게 다가와 나를 안았다. 그리고 내 두 손을 자신의 두 손으로 감싸며 입김을 불어넣었다.
또 고단한 단내가 풍겼다.
“약속 하나만 해요
더 추워지기 전에 카미를 보러 와요”
내가 고개를 끄덕였고, 그도 고개를 끄덕였다.
승용차가 가는 길을 따라 낙엽이 바람에 흩날렸다.
숙소 여주인이 걸어 나왔다.
“아니, 같이 안 가요?”
“아주머니, 여기 동사무소가 어디예요?”
“버스를 타긴 해야 하는데...”
“감사합니다”
나는 구름을 타듯 길에서 미끄러지며 빠르게 뛰었다.
나뭇가지 같은 뼈 부딪히는 소리가 온몸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텅 빈 배 속에 가득 차 있던 빛을 떠올렸다. 내 근원의 자리를 찾아 뛰었다. 원래 있었던 나의 그곳으로.
수화기로 들려오던 여자의 목소리와 직면했다.
어린 목소리에 비해 동사무소 직원은 중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이 오른 예쁜 모습에 여자가 하는 말에 집중할 수 없을 정도로 난 그 모습을 빤히 들여 보았다.
내가 물었다.
“실례지만 살찌우는 방법이 따로 있나요?”
바쁘게 뭔가를 찾던 여자의 손가락이 멈춘 채, 살에 둘러싼 잘 보이지 않은 눈을 내게 추켜올렸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또 다른 여자의 코에서 소리가 났다.
“크읍”
중년의 여자가 나를 자세히 훑어보며 말했다.
“진심으로 보여서 말해 주는 거예요
난, 그냥 물만 먹어도 찝니다”
옆자리 여자는 아예 코로 방귀를 뀌며 웃었다.
중년의 여자가 몇 장의 서류를 내게 넘기며 말했다.
“자, 이건 현재 주소와 연락처예요
이건 가족 증명서
그리고 입원하고 계신 사회복지시설 연락처예요
원래 개인 정보를 주진 않지만, 동생분의 요청이 있었고
가족을 찾았으니까 큰 힘이 된 셈이죠”
난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기저기 찍힌 도장, 그리고 낯익은 이름과 글씨, 그리고 숫자가 모두 뒤틀려 보였다. 중년의 여자가 다시 말했다.
“저기 휴게실 가서 천천히 살펴봐요
아, 그리고 끼니는 풍족하게 챙겨야죠
살 찌우기를 바라면서 먹지 않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꼭 희망을 이루시길, 그리고 가족을 찾아서 축하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옆자리 여자가 또다시 웃었다.
이게 웃을 일인가, 나는 한참 생각하다 중년 여자 말대로 휴게실을 찾았다.
가족을 찾는 일이 축하할 일인지 여자 말을 몇 번을 다시 곱씹었다.
내게 나를 찾는 가족이 있었다는 건 정말 기쁜 일인가, 답이 내려지지 않았다.
다시 버스를 탔다. 가는 내내 보이는 잔잔한 바다의 물결이 마치 감아 놓은 파란색 실타래처럼 보인다.
절대 끊어지지 않는 저 수평선 끝까지 연결되어 있을 것만 같은 파란색 실타래.
주소를 다시 확인한 후, 난 그 초록 대문을 멀찌감치 떨어져 나의 짝눈처럼 짝다리를 잡고 바라보았다.
초록 대문의 용도가 보이지 않는다.
문 한쪽은 비스듬히 나사가 풀린 채 겨우 달려있었고, 문보다 낮은 회색 울타리는 집안이 훤히 보이도록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거센 바닷바람이 내 뺨을 후려쳤다. 매서운 추위에 겉옷도 걸치지 않고 새카만 얼굴에 콧물이 하얗게 말라붙은 작은 아이가 내 옆에 다가오며 말했다.
“누구세요?”
손안에 잡힐 만큼 아이는 약해 보였고 작았지만 목소리가 카랑카랑하다.
작은 아이가 대답 없는 나를 다시 올려보며 화난 듯한 눈으로 다시 물었다.
“누군데 우리 집을 보는 거예요?”
순간 내 머릿속이 가족 증명서를 보던 때처럼 복잡해졌다.
빠르게 종이를 꺼내 읽었다.
“아, 너 별이?”
아이의 고개가 갸우뚱, 한쪽 눈이 치켜 올라갔다.
“난 별아에요, 김별아”
“그래? 응 그게 맞네”
나는 놀랐다. 별아의 눈은 마치 나의 눈을 갖다 붙인 것처럼 같았다.
심한 짝눈은 어딜 가도 난 금세 알아보았다.
기가 찼다.
“근데 아줌마는 누구예요?
왜 자꾸 대답을 안 해요?”
“아, 난... 그러니까
난, 강여욱이야”
별아의 놀란 짝눈이 더 도드라졌다.
그때 다시 거센 바닷바람이 몰아쳤다.
별아의 몸이 휘청거렸고 내 반사 행동은 별아를 감쌌다.
“앗, 이거 놔요오오오”
“어 미안, 근데 너 추울 텐데?”
별아가 꽉 막혀 나오지도 않을 것 같은 코를 훌쩍거리며 손가락으로 마른 콧물을 훑었다.
별아의 손가락 끝이 모두 벌게져서 거뭇했다.
누군가 내 자궁을 화살로 맞춘 것처럼 통증이 올라왔다.
“아악”
숨이 막혔고 난, 사라진 자궁을 부여잡고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아줌마? 왜 그래요?”
호흡을 조절하고 하악거렸다.
눈앞에 별아가 눈물을 머금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난 별아를 세게 꽉 끌어안았다.
버둥거리던 별아가 온몸에 힘을 풀며 오랜 시간을 버티다 말했다.
“이제 괜찮아요?
그럼, 이것 좀 놔요”
별아는 나를,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
내가 엄마의 자매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난 집을 다시 보자마자 가난의 뼈저림이 별아의 손가락에 맺혀 있는 것을 한 번에 알아차렸다.
내가 아픔을 느끼는 건 대체 어디서 오는 감정일까, 혼란스러웠다.
“엄마가 곧 올 거예요
엄마를 보러 온 거죠?”
난 고개를 끄덕였다.
“낯선 사람을 데리고 오면 큰일 나요
근데 아줌마는 꼭 데리고 들어와야 한다고 했어요”
난 별아를 따라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수돗가의 고무 다라이 속 얼어붙은 물, 얇은 알루미늄으로 된 문을 밀어내면 실내가 보였다.
한눈에 봐도 지저분한 그곳을 별아는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별아가 뒤를 보며 들어오라며 손짓했다.
“아니야 난 그냥 여기 있을게”
“왜요? 안 추워요?”
“난 괜찮아”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작은 히터를 내게 내밀었다.
“고마워”
별아가 낮은 의자를 밟고 올라서더니 개수대에서 설거지한다.
발개진 손끝으로 또 얼어붙을 것을 알면서 별아는 얼음물을 이겨내려 애쓴다.
“따뜻한 물이 안 나와?”
별아는 답이 없다.
얼음물을 맞는 고사리손, 아이의 입에서 아, 아, 하는 소리를 나는 참아 줄 수가 없었다.
“내가 할게”
“안 돼요 왜요?”
“넌 히터에 손 좀 녹여”
“엄마한테 혼나기 싫어요
저리 가라 구요”
별아는 나를 온 힘을 다해 밀었다.
“보일러가 안 되는 거야?”
별아는 조금 부루퉁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기는 돼요”
난 서류를 다시 꺼내 확인했다.
별아는 이제 막 여섯 살이 된 모양이다.
내 자매라고 하는 여자의 나이는 나와 열 살이나 차이가 났다.
스물여섯에 별아를 품고 스물일곱에 낳았다는 것이다.
별아가 보온병에서 뭔가를 따라내며 건넸다.
손가락이 붉다.
“보리차예요 드세요”
“너 손 먼저 녹여”
“자, 마셔요, 엄마가 꼭 이렇게 해야 한다고 했어요”
나는 보리차를 입에 댔다.
식어 빠졌지만, 냉기에 하얗게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하... 이제 됐지?
너도 이제 손 녹여”
그제야 작은 입에서 하, 하는 소리를 내며 히터에 손가락을 비벼 댄다.
발간 히터 불빛이 나를 고통의 시간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여욱아, 여욱아, 하며 원통하게 나를 부르던 엄마의 목소리가 울렸다.
나를 보낸 건 당신이었다.
한데 나를 보내고 성당 앞에서 주저앉아 내 이름을 목 놓아 불렀다.
양심도 없이, 슬픔을 비춘 당신.
여욱아, 여욱아 아이고 여욱아 내 아가.
내 입에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을 때 난, 그때 엄마의 목에서 피가 나와 흘러야 했고 목소리를 나와 함께 잃었어야 했다. 한데 엄마는 나를 두고 목 놓아 울다가 내가 아닌 다른 아이를 자궁에 품고 낳았다.
나를 두고 버젓이.
결국, 엄마가 잃은 건 아무것도 없다.
나란 아이를, 그냥 버려두고 간 것일 뿐, 잃은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