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금봉 Dec 11. 2024

초록바람

8. 말린 생선과 소주, 그리고 아진



꾸역꾸역 넘어가는 해를 등지고 은색 양동이가 눈에 들어왔다. 

어두워진 시간에도 불구하고 양동이의 빛이 강렬하게 남았다. 

아이의 엄마 아진은 멀리서도 나를 확인하며 시선을 떨구지 않고 걸었다. 

뛰어가는 별아를 본체만체, 고개만 끄덕, 하더니 반갑다고 손을 잡아끄는 별아의 얼어붙은 고사리를 찰싹, 소리가 나도록 때렸다.


내 한쪽 눈이 올라가며 눈 밑이 잠시 부들거렸다. 

아진의 얼굴은 추위에 얼어붙어 타버린 새카만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치 섬 집 엄마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듯해 이 상황을 외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난 시선을 피해 본다. 


발갛게 달아오른 히터 앞에서 온기를 품고 있는 내 몸이 민망했다. 

아진이 내 앞에 서서 나처럼 짝다리를 짚었다.

아진이 말했다.     


“원망, 뭐 그런 거 갖고 왔다면

다시 돌아가요, 내 삶도 보다시피 편하지 않으니까”     


아진이 태어나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자매라는 고리를 갖고 있는 언니인 나를 보고 한 첫마디였다. 

나는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아진을 보며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을 뱉었다.     


“보리차, 잘 마셨어”     


아진과 나의 눈은 아주 오랫동안 마주했다. 

꼭 닮은 곳을 찾으려는 듯, 그녀는 내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아진의 눈은 오히려 나를 원망하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아진은 마법을 부리는 사람 같다. 따뜻한 공간 대신 좁은 마당에 불을 피웠다.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금방 활활 타올랐다. 순식간에 별아의 볼이 붉게 물들었다. 

아이의 발간 얼굴을 보니 나의 긴장도 조금 수그러들고 있었다. 


별아의 말대로 아직 멀쩡한 전기가 군데군데 어둠을 밝혔다. 

아진은 빨랫줄에 걸어 놓은 말린 생선 중 가장 커다란 생선을 휙, 채더니 활활 타오르는 불 위에 얹어 앞뒤로 굽기 시작했다. 

다시 아진이 말했다.     


“차라리 그 삶이 더 나았을 테니...”


아진은 김이 모락모락 퍼지는 밥 위에 달걀 프라이를 얹어 별아에게 건넸다. 

별아는 아주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받아 들며 말했다.     


“엄마 잘 먹을게”     


아진이 말했다.     


“이 애 팔자도 그려지지 않아요?”     


아진의 빠른 움직임은 소주병을 딴 순간부터 낮은 의자에서 멈췄다. 

그녀가 내민 밥상은 어릴 적 엄마와 마주 앉아 먹었던 것과 같았다. 

아진이 내게 얼어붙은 수저를 내밀며 말했다.

     

“먹어요, 쌀죽도 먹지 못하고 다니는 사람처럼 앉아있지 말고...”     


아진이 내게 소주를 건넸다. 

그녀는 소주를 맥주 컵에 따라 벌컥거리며 마셨다. 

별아가 그 모습을 불안하게 바라보았다. 빈 잔은 다시 채워졌다.

나는 천천히 말했다.     


“왜 찾았어? 나를...”     


아진이 한참 동안 나를 노려보았다. 

젓가락을 탁, 하는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으며 다시 소주를 벌컥거리며 말했다.   

  

“왜요? 원망 같은 건가?

그럼, 왜 먼저 찾았어요?

먼저 찾았잖아?”     


나는 바로 답했다.     


“엄마의 죽음을 찾았던 거야

어디에 묻혔을까, 어디에 뿌려졌을까..”     


아진은 바닥에 고개를 떨구고 말했다.     


“이런 엿 같은, 젖은 팔자”   

  

“넌 그렇게 살았니?”     


아진의 눈에 화산이 폭발한 것처럼 보였다. 

금방이라도 내게 달려들 것 같았다.   

   

“버려진 게 아니야 당신은

선택한 거지, 고마운 줄 알아

내 삶이 잘 보일 텐데?”     


내 눈에도 이때 뭔가 폭발했을 것이다. 

내가 말했다.     


“그래서 저 고사리 같은 손이 

저리 되었지..."


참, 이상했다. 이 기괴하고 낯선 느낌, 여동생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불과 며칠 전이다. 

한데 아진과 나는 오랜 세월 함께 살았던 것처럼, 모든 것을 꿰뚫고 서로의 가장 약한 부분을 건드렸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사실이었다. 


아진이 벌떡 일어나 미친 듯이 소리를 객객, 거리며 왔다 갔다 안절부절했다. 

별아가 늘 있었던 일인 듯, 두 눈을 반짝거리며 거뭇한 손가락으로 두 귀를 막았다. 

별아의 코 밑은 어느새 새카만 재가 묻어 거뭇했다. 

난 아진의 분노인지 슬픔인지 모를 그 감정이 가라앉을 때를 기다렸다. 

아진은 쉽사리 진정하지 못했고 이젠 짐승 소리를 내며 꺼억거렸다. 

별아가 그녀에게 달려들어 허리를 끌어안으며 함께 꺼억거렸다. 

내가 말했다.     


“많이 억울했구나..."


난 진심으로 아진을 이해했다. 

지나친 가난은 인간을 바닥까지 끌어내려 악마적 본능을 드러내게 한다. 

지나친 가난에 자신만 구덩이에 들어간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별아의 눈가에 가난의 구슬이 맺혀 반짝거리다 흘러내렸다. 

지금 흐르고 있는 이 시간은 어떤 시간인가, 너와 내가 만난 지금 시간은 어떤 운명을 정해야 하는 시간인가, 난 생각 해야만 했다. 


아진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미라처럼 잠든 별아를 내가 안아 올렸다. 

인정하고 싶지 않을 만큼의 가벼움 때문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어지러운 방구석에 아이를 눕히고 귀밑까지 이불을 끌어올렸다.    

  

“별아 안녕”     


난, 별아에게 잘 자,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아진이 숫자를 나열하듯 말했다.     


“엄마는 오랫동안 치매를 앓았어요

다른 인간들은 어쩌다 정신이 돌아올 때도 있다는데...

아주 꾸준하게 나를 못 알아봐

아비가 누군지도 모르고 나를 낳아서 그런 건지

당신 이름만 불러데, 여욱아 여욱아

모르지, 진짜 여욱을 보면 정신이 돌아올지...

엄마는 장애가 있어요,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엄마 팔자도 참...

구정물 같지, 젖은 팔자"


아진은 소주 세 병을 빠르게 빈 깡통으로 만들었다. 

눈알은 희번덕 거리며 발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녀의 가난하고 고된 삶을 하루에도 몇 번씩 끝, 죽음, 이라는 단어로 칠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진이 점점 불씨가 꺼져가는 화로에 장작을 넣었다. 

연기에 눈이 시렸는지, 고단함에 시렸는지 반짝이는 게 맺혔다, 사라졌다.     


“엄마...

얼마 안 남았어요

의사들이 하는 말이 대게 그렇지만

준비해야 하니까”     


아진은 마지막으로 나를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난 옷에 묻은 재를 털어 내며 일어났다.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젖은 소금 냄새가 옷 사이사이마다 스며들었다.     


“준비, 그래 준비말이야

내가 할 게, 그럴게”     


아진이 이전과 다른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그리고 다시 새 소주병을 들었다. 

나는 소주병을 보며 말했다.      

    

“잠깐, 나 가면 마셔

그만 가볼게”     


아진이 놀란 눈을 하며 따라 일어섰다.      


“이 밤에?

버스 없어요, 택시도 없어”     


내가 말했다.     


“여기서 잘 순 없어”     


아진의 표정은 좀 기막혀하는 모양이다.    

 

“헛, 나라도 그렇지...

그렇지만 이 시간은 무리잖아요”     


“난 꽤 잘 걸어

그럼 갈 게”     


아진은 별아가 잠든 방문을 잠그더니 내 뒤를 조용히 따랐다. 

참 아무것도 없는 동네다. 아무리 짙은 밤이라 하지만 눈앞에 거치는 것 하나 없이 적막하다. 

난 이 정도면 네 배려의 감정도 내게 왔으니 됐다, 싶어 뒤돌아 말했다.     


“이제 들어가”     


아진이 멈춰 나를 빤히 보았다.      


“보리, 내가 덖었어요"


난 아진을 향해 어둠 속에서 미소를 전했다. 

아진은 마치 자신 앞의 어려운 모든 것들이 단번에 해결이라도 된 듯, 밝은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별아, 그쪽이랑 참 많이 닮았어요 “     


난 그 말에 또 한 번 기가 찬다. 

난 아진을 다시 보지 않고 빠르게 걸었다. 

공포스러운 흑백 영화 같은 그곳에서 나를 놓아주지 않을 것 같아 미친 듯이 뛰었다.  

    

‘아 이 죽일 놈의 젖은 소금 냄새’     


오랫동안 걸은 탓에 목이 타들어 갔다. 

지친 발을 내려보니 정말이지 흑백 영화에 발만 담근 것처럼 회색빛이 만연하다. 

다시는 제 색깔로 물들지 못할 것 같아 불안했다.


요양 병동 앞에서 나는 머뭇거리다 환하게 켜진 불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물을 마시고 싶었다. 아주 깨끗한 무미무취의 물을.

그 사람의 존재 유, 무는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더위를 느끼는 것과 동시에 한기가 몰려왔다. 

드디어 목구멍에 물기를 가득 채워 넣은 후 현실감에 어깨가 짓눌렸다. 

텅 빈 곳에서 그 누구의 발자국 소리도 들리지 않은 시간이었다. 

나는 몸을 쭈그려 말아 잠이 들었다.     


비 오는 날의 젖은 흑백 영화는 시작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