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모텔 해중(海中)
바닷속에서 헤엄을 친다는 건, 숨이 끊어지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인간의 삶을 영위해 나가고픈 본능의 질척거림은 죽음을 시도해 보지 않은 사람은 느끼지 못할 일이다.
아주 오랜만에 바다를 앞에 두고 숨을 쉬었다.
폐를 파고드는 그 슬픔 냄새가 사라진 내 자궁의 텅, 속에 맴돌다 스며들었다.
신음할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느껴졌고 두 발은 젖은 모래와 아릿한 바닷물을 원했다.
나는 깊이 더 깊이 들어갔고 두 팔로 원을 그리며 나아갔다.
발가락 사이에 모래가 들어차지 않을 무렵 나의 몸이 둥실, 하고 뜨기 시작했다.
한번 죽어 보자,라고 속삭였다. 그리고 누워 하늘을 보았다.
거세진 파도가 나를 계속 잡아끌었다. 죽어 보자, 라 다시 속삭였다.
인간의 본능에 팔이 진동하듯, 다리가 경련하듯 나의 온몸이 삶을 향해 버둥거렸다.
그때 나는 다시 속삭였다.
“살자”
한밤의 이 짓거리는 남은 삶에 대한 당당한 행위였으리라.
숙소 주인이 젖은 나를 보며 혼비백산 서둘러 나와 발을 동동 눈은 커다래지며 말했다.
“아니, 무슨 일이에요?”
나는 짝눈으로 배시시 웃었다.
“죽을 뻔했어요, 그래서...”
숙소 주인이 다급하게 휴대전화를 들었다.
“뭐? 뭐라고요? 이런, 신고할게요”
나는 고개를 저었고, 주인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
“괜찮아요, 다시 살았잖아요
감사합니다”
나는 뒤돌아 계단을 올랐다.
숙소 주인이 수건을 어깨에 둘러주며 내 등 뒤에 대고 말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여기 아니면 먹고살기 힘들어요
그렇잖아요?
매정하게 들리겠지만...
별일 없는 거 맞죠?
사는 거 다 비슷해요
그래도 살아야지 어쩌겠어요?”
나는 그녀를 곁눈질하며 낮게 속삭이듯 말했다.
“절대 죽지 않아요”
숙소 주인의 긴 한숨 소리가 들렸다.
“휴...
올라가 있어요
내가 따뜻한 차 올려 줄게요”
“감사합니다”
나는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몸을 쑥, 밀어 넣었다.
그리고 휴대전화의 전화번호 목록을 들여 보았다.
성제
성기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웃고 또 웃었다.
아저씨는 발신음이 울리자마자 말했다.
“어디예요?”
“와줄래요?”
아저씨는 말이 없었고 분명 보이지 않은 그곳, 카미가 있는 그곳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성기 아저씨는 이제 카미와 그 새끼들, 그리고 여름 내내 밖을 돌아다니다 어느 날 카미와 동행한 다른 카미와 함께 지낸다. 그리고 이제 그 집은 암울의 집이 아닌 초록 바람이 나풀거리는 집으로 변해 있을 것이다.
그 이후, 나는 정처 없이 이곳저곳을 누볐다.
전날 마신 술 덕에 깨지 않은 정신을 붙잡고 있을 무렵 휴대전화가 울렸다.
발신지는 그곳을 가리켰고 설마, 그 희망의 끈이 아직 살아있었을까,라는 생각에 순간 난 턱이 빠질 정도로 놀랐다.
“여보.. 세요”
아주 어려 보이는 예쁜 여자 목소리다.
“안녕하세요, 혹시 강여욱씨 되십니까?”
“네”
잠시 침묵이 흘렀고 예쁜 목소리를 가진 여자가 내 심장을 태워버릴 것처럼 놀랄 말들을 계속 이어갔다.
“그러니까, 누가 날 찾는다는 거죠?”
“강여욱씨 어머님의 따님이세요
그러니까 동생분이십니다”
나는 거의 발작하듯 말했다.
“기막혀”
“네?”
나는 마치 아무것도 보고 들은 게 없는 사람처럼 말했다.
“어머니? 그럴 리 없어요, 살았을 리가 없어요”
예쁜 목소리의 여자는 더 이상 할 말을 잃은 듯 침묵을 지켰다.
나의 자극적인 도발을 유발하는 그 근원의 냄새, 그 슬픈 냄새를 가진 사람이 나를 반짝이는 형광등 밑에 버려두고 입을 닫게 했던 그 사람이 나처럼 계속 살아있었다.
내가 당신의 그 속에서 유영했던 것처럼 내 속에서 유영했던 그 빛을 잃고 모든 것을 암울에 던져 놓았던 그때에도 당신은 아주 잘 살아있었던 것이다.
그래, 아주 잘, 살아가고 있었던 걸까?
대체 난,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할 때까지 당신에게 어떤 것을 바라고 있었던 걸까, 난 모든 것을 기억에서 지워 버리려 애썼던 모양이다. 그리고 당신의 삶이 계속 영위되고 있다는 것 또한 감히 생각해 보지 못했다.
추위에 온몸이 얼어 불어 터져도 섞은 돼지기름을 바르며 버티고 또 버텼던 사람이 나를 버리고 어찌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그저 나를 버림과 동시에 당신은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랬을 거라며 당신의 죽음을 생각하고 분노하고 슬퍼하고 또 슬퍼했었다.
그리고 기도했다. 따뜻한 곳에 묻혔기를 바랐다.
한데 당신은 살아있다. 나를 버려놓고 삶을 살고 있었던 거다. 버젓이.
채 떨어지지 않은 숙취와 당신의 그곳에서 유영했던 나의 몸을 생각하며 모든 것을 쏟아냈다.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모든 것을 게워 냈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고 생각할 무렵 나는 그대로 누워 물속에 잠겼다.
음식 냄새가 났다. 아주 오랜만에 맡아보는 냄새였다.
‘이게 뭐더라’
아저씨의 긴 등이 보였다.
두 팔을 바쁘게 무언가를 들고 움직이고 있었고 가끔 들리는 앗, 엇, 하는 소리가 재밌다.
“아저씨 이 냄새는..."
아저씨가 소리 없이 뒤돌아보며 한숨을 쉬었다.
“하아, 자꾸 놀라게 할 겁니까?”
얼음처럼 차가웠던 몸이 따뜻해져 있었다.
몸이 담요에 칭칭 감겨있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그, 된장찌개다, 그죠?”
아저씨가 애써 미간을 풀어내며 내게 다가왔다.
“움직이지 말아요, 아직
몸이 얼어붙었잖아요 좀 더 누워 있어요”
“바다 수영을 했어요
날씨가 이제 좀 추워지고 있어요”
털어 넣은 약 덕분에 나는 욕조에서 곤히 잠들었던 모양이다.
내 몸을 모두 봐 버린 성기 아저씨에게 물었다.
“난 창피하지 않아요
그저 감사합니다”
아저씨의 미간이 이번에는 찌푸려졌다.
“쉿, 조금만 더 자요”
수면 속에서 숙소 여주인이 아저씨에게 한 말이 기억났다.
“무슨 사연인지는 몰라도
그래도 기댈 사람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잘 다독여 주세요
뭔가 대차게 놀란 듯한데...”
나는 중얼거렸다.
“기댈 사람, 기댈 사람...”
밖이 어두웠다. 어느 조명 하나 켜지 있지 않은 채, 캄캄하다.
나는 눈을 비비며 찾았다. 그리고 코를 킁킁거리며 상상했던 된장찌개 냄새를 찾았다.
“이상하다, 꿈인가”
문밖에서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네 감사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아저씨 뒤로 여주인의 얼굴이 비쳤다.
얼굴을 이리저리 옮기며 나의 생사를 확인하려는 듯했다.
“아저씨?”
드디어 방 안이 환해졌다.
“어때요? 잘 잤어요?
춥지는 않아요? 배고프죠?”
아저씨가 은쟁반에 든 것들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여긴 취사가 금지예요
아주머니에게 부탁했어요
덕분에 따뜻하게 먹을 수 있겠어요”
난 생각했다.
이 사람은 왜 내게 아무 조건 없이 또는 이유 없이 내어주는 것인가.
그리고 난 왜 이 사람에게 연락했을까. 갑자기 자신이 뻔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도와줄게요
일어나 봐요”
아저씨가 담요에 돌돌 말린 나의 어깨와 등을 안아 올렸다.
나의 척추와 견갑골이 그의 손가락을 느꼈다.
모든 관절의 움직임과 그의 손가락은 밀접해 있었다.
그의 손가락은 키처럼 길고 넓었다.
난 그를 안았다. 갑자기 하고 싶던 행동이었다.
이 남자의 사라진 빛에 대한 암울의 감정을 안아주고 싶었다.
그때 그가 말했다.
“지금은 없습니다”
난 그것을 애써 모른척해 왔다.
여주인의 말처럼 그에게 내가 기댈 사람이라면 그가 기댈 사람은 내가 되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꼭 사랑의 관계에서만 이것이 성립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린 똑같이 빛을 잃지 않았는가.
그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를 받치고 있는 그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잠시만 있어요, 잠시만”
여주인이 데워준 된장찌개 냄새가 진동했다.
그의 상기된 뺨에 내 뺨을 갖다 댔다.
아주 오랫동안 우린 침묵의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다시 꼭 끌어안았다.
단 한 번도 따뜻한 포옹을 해 보지 못한 사람처럼 우린 오랫동안 그렇게 멈춰있었다.
내가 말했다.
“아저씨”
그가 내 두 눈을 마주했다.
“식기 전에 먹을까요?”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였고 매끈해진 미간을 보이며 벼처럼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나를 번쩍 들어 올려 칭칭 감은 담요 채 의자에 앉혔다.
잘 차려진 밥상에 내 눈은 휘둥그레지며 숟가락을 들었다.
“자, 먹어요”
사실 난, 아주 오랫동안 밥을 먹지 않았다.
과연 내 위가 이것을 받아 줄까, 란 생각에 의심을 하기도 했지만 난 이날 정말 오랜만에 쌀밥의 진득함과 된장찌개의 쿰쿰하고 고소한 맛을 느꼈다. 식사를 마친 후, 난 내 허벅지에 붙은 살을 늘려 보았다.
뼈와 절대 떨어지지 않으려 애쓰던 내 살이 과연 늘어날 희망이 있을까, 라며 아저씨에게 말했다.
“내가 홀로 남았던 그때 말이에요
나 없이는 살 수 없다, 생각했어요
근데 그 사람이 살고 있었어요
지금 나처럼 이렇게 밥을 먹고 된장찌개도 먹었겠죠
세상에... 믿겨요?”
아저씨가 애매한 말을 뱉었다.
“운명은 자신이 정할 수 없어요
죽고 싶어도, 살고 싶어도...”
난 바닷속에서 유영하다 죽을 각오로 세찬 파도를 더 불러냈다.
생각 없던 나의 본능이 팔과 다리가 삶을 향해 도망치게 했다.
순식간에 내 운명이 바뀌었던 거다.
아저씨의 말처럼.
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살아야겠어요, 나도
그리고 먹을 거예요, 채워 넣을 거예요
텅, 소리가 나지 않게"
그날 밤, 우리의 목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마치 어려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처럼 끊임없는 이야기를 했다.
누군가의 이야기에 눈을 깜박이지 않고, 그의 안을 뚫어보고 싶은 생각에 경청해 본 적은 없었다.
우린 벽에 기대어 어슴푸레한 창밖의 새벽달을 보았다.
난 그의 높은 어깨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왜 지금 우리가 만났을까요”
아저씨가 말했다.
“모든 건 이유가 있죠”
한참 후, 그가 다시 말했다.
“아침에도 된장찌개를 먹어야 하는 것처럼요"
난 그의 뾰족하고 먼 턱을 올려보며 배시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