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옆집 성기 아저씨와 새카만 카미
초대한 적 없는 고양이가 어느새 가장 따뜻하고 밝은 창가에서 꼬리를 천천히 움직이며 앉아 있다.
어떻게 들어왔을까, 이미 자리를 잡은 고양이를 내치지는 않았다.
내가 말했다.
“대신 똥은 밖에서 싸
들어올 때가 있었다면 나가는 법도 알겠지?”
고양이가 낮게 울었다.
카미는 정말 밖에서 볼일을 보았다.
언제 어디로 나가는지 언제 어디로 들어오는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카미는 약속을 지켰다.
그리고 카미의 배설물은 여전히 벼를 닮은 그가 처리해 주고 있다.
물론 대문 단속은 잘 되고 있었으며 그는 그날 이후부터 초인종을 눌렀다.
늦게 알게 된 사실은 그는 대문이 아닌 길고 넓은 영산홍 울타리를 지나 들어왔다는 것, 카미가 길을 지나가는 것을 보고 개구멍이 아닌, 벼 구멍이란 것을 확실히 알았다.
난 그를 단순하게 옆집 아저씨라고 부른다.
흔하지 않은 그의 이름은 도저히 부를 수가 없었다.
그의 이름은 주성기, 성기 아저씨, 성기 씨, 성기님, 등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으나 도저히 내 입은 그의 이름을 담을 수 없었다.
며칠 전부터 아랫배의 통증이 몰려왔다.
마치 무언가 둥둥 떠다니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왼쪽으로 누우면 왼쪽으로 쏠리는 느낌이 들었고 반대쪽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엄청난 통증이 나를 괴롭혔다.
아세트아미노펜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 통증이다.
그 끔찍한 산부인과에 다시 발을 들였다.
벌써부터 독한 악취가 풍기는 것 같아 어질어질했다.
내 증상을 듣고 의사는 고개를 저으며 아랫배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내가 말했다.
“분명 뭔가 들어 있어요”
의사의 고개가 역시 다시 돌아간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인데...”
내가 말을 잘랐다.
“들여 다 보면 되겠죠”
의사가 나를 혐오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귀찮다는 어투로 답했다.
“검사해 보겠습니다”
의사는 내게 신경정신과라는 단어를 말하며 온갖 인상을 찌푸리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러니까 여욱씨가 지금 느끼는 이 통증은
어떤 검사에도 잡히지 않습니다
여욱씨 자궁은 아주 깨끗합니다
아니 그렇잖아요?
내가 수술을 했고, 뭔가 있다는 게 사실 좀 말이...
그러니까 이 통증은 아무래도...”
나는 작은 병에 담긴 링거 하나로 멀쩡하게 병원을 나왔다.
그리고 의사가 뱉은 정확하지 않을 말을 읊었다.
‘감정에서 느끼는 통증’
푹 꺼진 아랫배를 확인했다.
사람이 되지 못한 내 안의 작은 빛이 사라지고 난 후, 나는 아마도 의사보다 더 빠르게 그것을 느낄 수 있었고 인정했다. 감정에서 통증을 느끼고 있다는 건 깔끔한 내 정신 상태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난 부정했고 그 날밤 다시 독한 통증을 기다렸다.
내 정신 상태가 의사가 말한 정상이 아닌 상태인지 꼭 알아야 했다.
자정이 지나고, 새벽이 다가왔다.
“젠장, 뭘 기다리는 거야 대체”
통증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새까만 것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아 형광등만 내내 바라보았다.
이러다간 시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출했던 카미가 어느새 걸어오고 있었다.
녀석의 등 위로 하얀 눈이 소복하게 내려앉았다.
난 눈치를 챘다. 녀석은 몸을 털어낼 것이다.
“안돼엣”
내 날카로운 목소리에 카미를 등을 곧게 세우고 하악질을 했다.
그리고 한 번 더 몸을 털어냈다.
나는 벌떡 일어나 굳게 닫힌 초록 커튼을 열어 해친다.
어두웠던 그곳이 온통 밝게 빛나고 있었다.
새하얀 눈이 곳곳에 소복하게 쌓였고 볕이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위에서 아래로 하얀 입김이 퍼져나갔다.
옆집 아저씨다.
분명 또 영산홍 벼구멍으로 들어온 게 뻔했다.
마녀나 탈 법한 기다란 빗자루를 비스듬히 들어 눈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좀 과하다 싶을 정도의 저 관심은 대체 무엇이 시키는 걸까? 여태 생각해 보지 못했던 의문이 생겼다.
옆집 아저씨가 창문으로 눈덩이를 던졌다.
카미가 놀라 높은 곳으로 올라가더니 다시 하악질을 했다.
“뭐가 저렇게 신이 난거지?”
옆집 아저씨는 다시 나를 향해 눈덩이를 던졌다.
난 뻑뻑한 커다란 창문을 밀어 열었다.
그리고 가만히 아저씨를 보았다.
“이거 몰라요? 눈싸움요!”
이번에 던진 눈덩이는 아주 제대로 내 얼굴을 가격했다.
“아악”
난 단 한 번도 눈을 모아서 동그랗게 만들어 본 적이 없다.
보육원에서 눈이 올 때마다 하는 놀이에도 끼지 않았다. 그때처럼 다시 손이 꽁꽁 얼고 볼이 꽁꽁 얼어 버린다면 아마도 엄마에 대한 희망이 다시 부풀어 오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옆집 아저씨는 지금 그것을 나와하고 싶다는 게 아닌가.
나는 맨발로 베란다로 뚜벅뚜벅 나아갔다.
옆집 아저씨는 동그란 눈덩이를 세 개째 만들어 놓고 있었다.
옆집 아저씨가 말했다.
“시작하면 하는 겁니다?”
밟은 눈이 내 발목을 감쌌다.
나는 아저씨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아저씨가 멀뚱멀뚱 나를 보았다.
“이렇게 가까이서 하는 게...”
난 아저씨가 만들어 놓은 눈덩이를 아저씨의 얼굴로 던졌다.
아주 세게 온 체중을 실어 던졌다. 그리고 한 번 더 눈덩이를 집어던졌다.
양심상 하나 남은 눈덩이를 주워 아저씨에게 내밀었다.
“자요”
“아, 아니 이렇게 하면 반칙이죠”
“구멍으로 들어오는 것부터 반칙”
아저씨는 하하거리며 내 등 뒤로 아예 쌓인 눈을 마구마구 퍼부었다.
발가락이 얼기 시작했고 손가락 끝이 벌게지고 있었다.
난 아저씨가 퍼붓는 눈을 향해 그대로 누워버렸다.
“하아”
아저씨가 놀라 다가와 물었다.
“괜찮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고 아주 밝은 해를 올려 보았다.
지금 내 시선 안에 어둠은 사라졌다.
한 번 더 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아”
아저씨가 내 옆에 풀썩, 쌓인 눈이 소리가 나도록 앉았다.
그리고 헉헉거렸다.
“안 추워요?”
“추워요”
“감기 걸리겠어요”
“걸려도 돼요”
“동상도 오겠어요, 맨발이잖아요?”
“그것도요”
아저씨가 다시 하하거렸다.
어떤 통로를 선택하여 나왔는지 모를 카미가 어느새 눈 위를 폴짝거렸다.
암울에 던져 준 이 집이 갑자기 빛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내 배시시 한 입술이, 올라간 한쪽 눈썹이 의심스러워 꽁꽁 얼어붙은 손가락으로 얼굴에 갖다 댔다.
내 입술과 눈썹이 정말 배시시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