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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봉 Nov 25. 2024

초록바람

5. 텅


초록 잔디를 얻기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옆집 아저씨는 왜 자꾸 내 집 정원에 신경을 쓰는지 모를 일이다. 벼 구멍으로 언제 들어왔는지 이번엔 잔디를 손질하고 있다. 흙을 고르고 네모 바른 잔디를 끼워 넣는 모습이 참 전문가 같아 보였다.

난 그런 옆집 아저씨를 빤히 보고 또 보는 중이다.


며칠 전 새벽녘 극한의 통증이 또 밀려와 데굴데굴 구르다, 거실 바닥을 기어 베란다 창을 열고 소리쳤다. 

목숨을 연장하고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처음 아저씨의 이름을 불렀다.     


“아저씨이 아저씨

주성기 주성기”     


아저씨는 맨발로 구멍을 쓱, 빠져나와 내 앞에 섰다. 

난 아저씨의 얼굴을 본 후 기절을 한 모양이다. 그렇게 난 아저씨에게 갚지 못할 신세를 지고 말았다. 


병원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운전대를 잡은 아저씨가 분노하며 말했다.     


“그 새끼 돌팔이네요”     


난 그 산부인과 의사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웃음이 나왔다. 

의사는 내게 정신병적인 감정적 통증을 운운했었다. 그리고 자신의 뛰어난 직업적 능력을 의심하지 말라는 식으로 내게 경고하듯 말했다. 한데 정말 그 산부인과 의사는 돌팔이가 맞았다.


내 자궁은 깨끗하지 않았으며 성이 나 있었고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듯, 혹으로 가득했다. 

그럴 일이 일어나지도 않겠지만 난 다시는 빛을 자궁 안에 담지 못할 것이다. 

난 엄청난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과연 내 작은 빛이 스스로 빛을 잃은 것인가, 그 반대인가에 대해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저씨에게 말했다.     


“그 새끼 때문에 사라진 걸까요?”     


아저씨가 오른발이 놀라 차가 꿀렁, 했다. 

그리고 아저씨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차가 밀리네요, 눈 좀 붙여요”     


그새 초록빛 잔디가 좁은 정원을 가득 채웠다. 

점점 봄 냄새가 나는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카미가 막 심어 놓은 잔디 위에 대자로 누워 볕을 쐬고 있다. 

녀석도 좋은 모양이다.

앗, 카미가 놈이었던가, 좀 더 관찰해야겠다.     


암울에 내 던진 집이 자꾸만 빛이 났다. 

난 결단을 내려야 하지만 옆집 아저씨가 자꾸 나를 흔들어 놓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아저씨, 이 집에 살래요?”     


아저씨는 카미의 배를 쓰다듬었다. 

그때 난 카미의 성을 확인했다. 카미는 자궁을 갖고 있는 녀석이었다.     


“아직도 연락 없어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저씨, 여기 이 집 좋아하죠?”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아저씨가 이 집에 살아요”    

 

잠시 침묵하던 아저씨가 내게 다가왔다.     


“옆에 앉아도 돼요?”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여욱씨는 어디로 갈 거죠?”     


볕이 정면으로 들이찼다. 

나는 아저씨의 왼쪽 어깨에 기댔다. 

내 얼굴은 겨우 아저씨의 어깨가 아닌 팔뚝에 자리 잡았다.     


“가고 싶다고 갈 수 있을까요?

난 정말 가고 싶은데...

그러니까, 엄마 자궁 속으로”     


아저씨의 얼굴을 보려 했으나 마치 하늘과 닿아 있는 것 같아 참 멀다. 

우린 한참 동안 볕을 쐬고 앉아 있었다. 


며칠 후 난 수술대 위에 올랐다. 

빛을 잃고 화가 잔뜩 나 있는 내 자궁은 나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엔 날 먹어 치우려 들 것이다.

이제 나의 그곳은 그럴지도 모른다는 희망의 싹마저 사라지게 된다. 빛으로부터 해방이 되는 거다.

처음부터 빛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마취에서 풀린 후, 움직일 때마다 느껴지는 통증을 밀어내고 아랫배를 툭툭, 건드려 보았다. 

정말 텅, 비어 텅텅,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한번 두드렸다.

다시 또 텅텅.

난 이제 자유롭다. 아마 날 수도 있을 것이다.         

 

퇴원 후 오랜만에 봄 햇살을 맞았다. 

아마도 봄의 끝자락인 듯하다. 집 안에 작고 꼬물거리는 것들이 상자 안에 옹기종기 붙어있었다. 

카미가 자궁 속에 이들을 품고 있었던 모양이다. 

오랜 바깥 생활에도 불구하고 카미는 그것을 지켜냈다.

그리고 더욱 단단하고 안전한 안식처를 찾아 이곳으로 들어왔던 거다. 

카미는 진짜 엄마였다. 

아저씨가 작게 꼬물거리는 것들을 보며 말했다.    

 

“녀석이 첫날에는 가까이 갈 때마다 하악질을 하더니

이젠 경계를 푼 모양입니다”     


아저씨가 주둥이가 카미처럼 새카만 새끼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자, 봐요”    

 

나는 소리쳤다.  

   

“악, 그만, 내려놔요”    

 

난 작은 새끼들이 걱정되었다. 

카미 곁이 가장 안전하다.    

 

“괜찮아요, 만져봐요”     


카미가 눈을 깜박하며 나를 올려본다. 

난 카미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안전하지 않아...”     


난 그들이 안전해질 때까지 그들을 보지도 만지지도 않았다. 

카미의 걸음 속도가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고 늘어진 젖꼭지가 분홍색을 띠고 바닥에 닿을 것처럼 걸었다. 

매우 지쳐 보였다. 


내 일상은 조금 달라졌다. 

매일 닭을 삶고 죽을 끓였다. 

카미는 가끔 새끼들을 뒤로하고 다시 쥐도 새도 모르게 밖을 나가기 시작했다. 

난 두려웠다. 혹시나 카미가 들어오지 않으면 어쩌지, 저것들을 버리면 어쩌지, 란 생각에 숨죽이고 그녀를 기다렸다. 하지만 카미는 내 생각처럼 새끼들을 버리지 않았다. 

난 그런 카미에게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닭고기를 선물한다. 

카미는 정말 새끼들을 안전하게 잘 키우는 안전한 엄마였다. 


새끼들이 안전해질 때까지 아저씨와 난 만나지 않았다. 

하지 않던 문단속도 철저하게 했다. 

아주 가끔 정원을 정리하러 온 아저씨는 커튼으로 닫힌 창문 너머를 아주 오랫동안 지키다 돌아가곤 한다. 

완벽하게 더운 여름이 시작되었다.     


카미의 외출을 점점 더 잦아졌고 새끼들은 비좁은 상자에서 나와 제멋대로 기어 다녔다. 

카미가 외출을 하면 난 불안했다. 그리고 다시 아저씨를 불렀다. 

어느새 난 아저씨의 이름을 아무렇지 않게 성도 붙이지 않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아주 자연스러웠다.  

   

“성기 아저씨”     


아저씨는 수염이 덥수룩해져 있었고 머리카락은 마치 폭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정리되어 있지 않았다. 

아저씨의 두 손에는 짐이 잔뜩 있었다.      


“자, 이제 이것들이 필요할 때죠”     


여러 개의 개집과 방석 같은 무엇, 그리고 사료 봉투, 바닷가에나 있을 법한 모래. 이것들이 새끼에게 필요하다고 긴 이야기를 하는 아저씨가 신기했다. 


나는 말했다.     


“이것 봐요, 아저씨 이 집은 아저씨가 필요해요”   

  

새끼들이 아저씨의 품을 파고든다. 

아저씨가 갑자기 거실 바닥에 대, 자로 누웠다. 

머리카락이 후드득, 떨어졌고 새끼들이 그의 머리카락을 비비적거리며 울었다. 

마치 카미에게 어리광을 부리는 모습처럼 같았다. 

난 아저씨가 궁금했다.      


“아저씨 질문이요”     


감고 있던 두 눈을 뜨고 나무처럼 서 있는 나를 올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티가 나요?”     


아저씨의 눈썹이 올라간다.     


“아, 그러니까 내 자궁이 없는 게 티가 나요?”     


하루에도 수없이 홍조를 띠고 있는 요즘 지금은 아예 늙은 호박처럼 얼굴이 누렇게 뜨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상한 수치심이 들었다. 아저씨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한참을 거실 바닥을 뚫어져라 보더니 나처럼 나무가 되어 우뚝 내 앞에 섰다. 

그리고 두 팔을 벌리며 아랫배를 내밀며 말했다.     


“자, 봐요, 나는요?

티가 나요?”     


“네?”     


“나 또한 그래요

완벽하게 차단했어요

자 다시 봐요, 티가 나요?”     


아저씨가 검지 손가락으로 꼬물거리는 모양을 만들며 웃었다. 

난 아저씨의 사타구니를 내려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어쩌면요”     


아저씨가 당황한 듯 긴 머리카락을 벅벅 긁으며 말했다.     


“뭐라고요? 하하”     


“아저씨 얼굴이 빨개졌으니까요”     


그리고 내내 달아오르고 있는 내 볼을 가리켰다.

다시 내가 말했다.     


“우린 하나씩 없는, 모자란 인간들이네요

텅, 비었어요 아주 텅”     


우린 거실 바닥에 뿌리를 내린 것처럼 마주 서서 아주 오랫동안 하하, 거리며 웃었다. 

새끼 고양이들이 나와 아저씨의 발밑을 탐색하며 돌아다녔다. 

어느새 카미가 외출 후 돌아와 가장 높은 곳에서 우리를 내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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