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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봉 Nov 13. 2024

초록바람

3. 그녀를 만난 늘 푸른 오월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색 하늘이 바다 같았다. 

한여름 엄마와 내가 본 색과 같아 한참을 올려보았다. 

이곳이 우리가 살았던, 섬 집 아이가 살았던 그 어디쯤일까?


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사방에 생선들이 뿜어져 나오는 물을 맞으며 누워있었다. 

그때 엄마가 고무 다라이에 생선을 가득 담아 멀리서 걸어오던 모습이 떠올랐다. 

수녀님이 내 손을 낚아챘다.     


“욱아, 한참 찾았잖니?

잃어버리면 어쩌려고 그래? 응?”     


나는 수녀님의 손을 뿌리치고 생선이 잔뜩 담긴 고무 다라이 앞에 앉은 아주머니에게 달려갔다.      


“욱아”     


난 아주머니에게 무작정 안겼다. 그리고 얼굴을 파묻고 엄마 냄새, 바다 냄새를 찾았다. 

미친 듯이 킁킁거렸다. 당황한 아주머니는 나를 내치지 않았고 나를 품에 오랫동안 꼭 안아주었다. 

달려오는 수녀님에게 괜찮다며 말 대신 손짓했다.

아주머니가 내 등을 토닥거렸다.     


“에휴, 어미가 얼마나 생각났으면

딱하지 원...”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참을성 없는 수녀님이 다시 내 팔을 당겼다.     


“가자 욱아”     


내 입은 형광등을 처음 봤을 때부터 붙어있었다. 

간혹 깨진 유리에 손을 베도 입은 떨어지지 않았고 몸을 사리지도 않았다. 

그때마다 수녀님은 내게 말했다.  

   

“뭐가 너를 이렇게 모질게 만든 거니...”    

 

아주머니 허리를 똑 붙들고 나를 채가려는 수녀님의 손길을 느끼자, 나의 입이 떨어졌다.   

  

“싫어 싫어 싫어”     


수녀님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욱아, 너 지금 말한 거야?

다시 말해봐 응? 응?”     


내 목소리에 지레 놀란 나는 다시 아주머니를 끌어안았다.     

 

“욱아, 너 지금 말했잖아? 세상에 입이 떠졌네”    

 

아주머니가 말했다.     


“말을 못 했어요?”     


수녀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보육원에 오자마자부터 입을 닫았어요

지도 모진 세월이 있었겠죠”     


아주머니가 천천히 수녀님에게 손짓했다. 그리고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이 아이 해지기 전까지 제가 데리고 있을게요

억지로 떼어냈다가 다시 입을 닫으면...

다시 입이 열려야 살아갈 수가 있으니... 말 좀 섞어 볼게요”     


수녀님은 잠시 망설이더니 주머니에서 천 원짜리 두 장을 꺼냈다.    

 

“너무 죄송해서 원...

여기 점심 값이라도... 감사합니다

오후에 데리러 올게요, 너무 감사합니다”     


그렇게 난 2년 동안 열 수 없었던 입을 열게 되었고 바다 냄새를 다시 맡을 수 있었다. 

엄마라는 희망이 내 곁에 다시 자리 잡았다. 

엄마는 나를 참 사랑했다. 엄마의 의붓아들 둘 보다 나를 더 아꼈고 보듬었다. 

보육원에서 나와 나도 엄마처럼 점점 손이 트기 시작했고 엄마처럼 얼굴이 까맣게 타기 시작했다. 

우린 새까만 밤이 되기 전 서로 같아진 얼굴을 보며 웃으며 잠들었다. 

엄마는 그때 거친 고사리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잠이 들 때까지 중얼거렸다.     


“미안하다, 미안해”     


나는 조용히 바다 냄새 엄마를 꼭 끌어안았다.     


       



팀장에게 메일이 왔다.

     

여욱씨, 내 입장이 참 곤란해

물론 난 여욱씨 입장을 최우선으로 생각해

하지만 계속 기다릴 수 없으니까

연락 부탁해     

p.s 기회는 많아, 여욱씨 힘내     


희망을 딛고 일어서는 게 뭔지 모르는 사람이 바로 나다. 

왜냐면 희망 같은 건 내게 없는 단어였기 때문이다. 

다시 찾은 희망 앞에서도 내 노력은 여지없이 쓸모없는 것들이었다.

모든 암울은 한꺼번에 일어난다. 

나는 그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엄마 곁에서 손이 얼고 볼이 얼고 발가락에 감각이 없어서 참을 수 있었던 건 엄마가 곁에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하지만 암울이 찾아온 순간 난 그때 모든 것을 잃었다. 

한꺼번에 모조리, 몽땅.


내가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그 암울은 절대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도 그 암울은 내 곁을 떠나지 않은 게 분명하다. 

또한 회사 생활을 이대로 이어나가지 못하리라는 것쯤 잘 안다. 

암울은 몽땅, 차지해 버리는 것을 좋아한다. 

난 속으로 읊조렸다.     


"다 가져가 싹 다, 모조리 몽땅 "

 

난 이제 십 년 동안 다닌 회사 생활도 끝을 냈다. 

아, 또 뭐가 남았더라? 몽땅, 이란 자리에 또 무엇을 집어넣어야 할지 생각해야 했다. 

그렇게 난 빛과 함께 머물고 싶었던 초록 바람이 불고 꽃잎이 나부끼는 그 집을 암울이라는 것에 몽땅, 먹이로 던져 넣었다. 이제 나 하나 남은 것이다.

엄마를 잃고 바다를 잃었던 그때처럼 난 다시 암울이 되어 남았다.      


다시 추운 계절이다. 

한기를 느끼던 그때가 다시 온 것 같아 뼛속이 아렸다. 

고통의 조각들은 눈에 보이지 않게 잘도 스며들었다. 뱉어내면 다시, 또 뱉어내면 또다시 스며든다.

두꺼운 카디건을 걸치고 나무 의자에 앉아 밝은 것을 찾았다. 

구름 속에 갇힌 해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 작정이다. 

초록 바람이 불던 눈앞의 시야가 어둑해지기 시작하고부터 두통이 밀려왔다. 

오늘은 꼭 해를 기다릴 작정이다.


며칠 전부터 개의 것인지 고양이의 것인지 모를 배설물이 군데군데 구멍 난 죽은 잔디 위에 잔뜩 쌓이기 시작했다. 의아했다. 흔적이 사라진 것이다.

그사이 해가 빼꼼 얼굴을 내밀었고 난 그것도 느끼지 못한 채 배설물을 찾았다.    

  

"대체..."


급히 내놓은 집은 역시 내가 쉽게 사들였던 것과 다르게 그 누구의 선택이나 질문도 없었다. 

곧 봄이 오고 오월이 오기 전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강박이 사라지질 않았다.

짐을 싸기 위해 할애한 시간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이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암울에 던져 놓은 이곳을 벗어나기만 하면 끝난다고 생각한 내 불찰이다.

집을 팔아야만 한다.


그때 울타리 사이로 누군가의 그림자가 보였다. 

입이 바싹 말랐다. 인기척은 내가 있다는 인기척을 느꼈을 것이다. 

흘러내린 카디건을 다시 추켜올리며 무심한 척, 그제야 해를 올려보았다. 

어둑하기만 한 시야가 환하게 빛났다. 

인기척이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     


난 대문 쪽으로 고개를 비틀었다. 

울타리 사이로 보이는 얼굴은 중년의 남자다. 손에는 무언가 바스락거리는 물건을 쥐고 있었다. 

그가 다시 말했다.     


"안녕하세요, 실례합니다"


나는 대답했다.     


"문 열려 있어요"

   

"아, 아, 그렇군요"     


그는 마치 문이 열려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는 듯 아, 아,라는 소리를 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그가 대문을 열고 들어올 때도 나는 해를 놓칠 수 없었다. 

밝고 따뜻했다.      


"이 시간이 가장 따뜻한 시간이죠"    


그의 손에는 은빛의 기다란 집게가 들려있었고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말했다.     


"혹시 여기 있던 똥이요..."   


그가 나의 말을 잘랐다.   

  

“아, 미안합니다

대문은 항상 열려 있고 사람은 없고

이 골칫덩이는 사방에 널려있고

허락 없이 들어와 버렸네요”    

 

그때 난 그의 얼굴을 아주 자세히 들여 볼 수 있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생김새는 그 누구를 닮았다 칭해도 과언이 아닌 얼굴이었다. 

아주 흐리멍덩한 눈 코 입에 비해 마치 숯으로 물들인 것 같은 새까만 머리카락, 고릴라처럼 긴 팔 지나치게 큰 키는 자신도 버거웠는지 벼가 숙인 것처럼 상체가 앞으로 밀려나 있었다.

말 없는 나를 난처해하며 그가 말했다.     


“아, 정말 죄송합니다”     


서둘러 나가는 그의 뒤에 배설물에 손을 가리키고 말했다.     


“저기, 저쪽이에요”     


그가 너털, 웃어버렸다. 

난 아예 나무 테이블에 턱을 괴고 똥을 줍는 그를 관찰했다. 

정말이지 벼가 바람에 나부끼며 고개를 숙이는 것처럼 모양이 같았다.     


"어제도 이만큼이었던 것 같은데

이 녀석들 오늘은 장소를 바꾼 모양입니다

하하"    


내가 말했다.     


“혹시 아이가 있어요?”     


구멍 난 잔디 위의 흙을 고르던 그가 놀라 나를 바라보았다. 

한참을 대답하지 못한 채 나를 그렇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기다렸다.

바스락거리는 비닐봉지의 끝을 여미며 그가 말했다.     


“지금은 없습니다”     


난 보았다. 내 시야를 내내 가려왔던 어둠이 그의 눈앞에도 있다는 것을. 

그가 갑자기 서둘렀다.     


“아, 그럼 실례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대문이 항상 열려 있던데 꼭 단속하셔야 합니다

여기가 외진 곳이라서요”     


“저도 지금은 없어요”     


그가 대문을 향해 급히 서둘렀던 걸음을 잠시 멈추었다. 

벼의 고개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다. 

이어 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철컹     


내가 선택한 엄마는 아이를 낳지 못했다. 

남편이 밖에서 낳아 온 자식을 귀하게 키웠지만 버림받았다. 

온갖 학대에도 남편과 의붓자식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물고 늘어졌다.    

  

“엄마, 그냥 우리 둘이 살면 되잖아요?”     


그때 처음 난 엄마에게 두들겨 맞았다. 그리고 그 후 엄마는 나를 버렸다. 

수녀님의 손을 잡고 다시 그 길을 나설 때까지 내 여린 손과 볼은 꽁꽁 얼어붙은 채 새까맣게 동상이 걸려 있었다. 엄마와 함께 똑같아진 손과 볼을 어루만지며 배시시 웃으며 잠들었던 꿈을 계속 꾸었다. 

꿈에서도 난 늘 그렇게 얼어붙어 터지길 바랐던 모양이다.     


난 벌떡 일어나 대문의 잠금장치를 걸었다. 

그리고 아직 새까만 손끝을 바라보며 다시 새까매진 시야에 입에서 억, 하는 소리가 나왔다.      

새카만 고양이가 나를 보고 있었다. 배설물의 범인인 모양이다. 

다시 고개를 들어 해를 보았다. 

밝고 따뜻한 것이 내 뼛속까지 스며들기를 바랐다.     

암울의 집은 푸른 오월이 될 때까지도 누구의 선택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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