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섬집 아기 엄마
창문 밖으로 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
11월의 첫눈이다.
꽤 숱 많은 백발의 짧은 머리카락이 민들레 홀씨처럼 둥그렇다.
창문 너머의 세상을 보고 있는 걸까?
마치 다른 세상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사람처럼 창문 너머의 풍경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눈의 몇 번의 깜박임, 움직이지 않는 고개, 나는 문득 겁이 났다.
“죽은 걸까”
나는 다시 병실 문에 적힌 이름을 확인했다.
[이꽃년 환자]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이름 석 자다.
세상에 나와 꽃처럼 예쁘게 살기를 원했던 부모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떠올려 볼 수 있다.
아진의 중얼거림이 생각났다.
“꽃년이면 뭐 해
개똥보다 못한 삶인데...”
연두색 카디건을 걸치고 하얀 슬리퍼를 신은 여자가 말했다.
“보호자라고 하셨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고 여자의 뒤에서 머뭇거렸다.
“왜 못 들어오고 있어요?
면회 신청하신 것 아닌가요?”
그제야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여자의 한숨 소리에 온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여자의 손길은 너무나 거칠었다.
엄마의 움직이지 않는 고개를 마치 억지로 뽑아 올릴 것처럼 반대 방향으로 휙, 하고 돌렸다.
내 입에서 신음이 나왔다.
“엇어”
비틀린 어깨를 다시 한번 휙, 하고 돌리더니 여자가 나를 보았다.
마치 잘못을 알면서 반성하는 듯한 긍정적 억지 말투였다.
그리곤 숨을 크게 내쉬며 말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돼요
보호자들은 대개 우리가 무슨 죄라도 저지를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고 불만을 말하지만
보호자도 안된다는 걸 아니깐
여기 이렇게 맡겨 두고 간 거겠죠
치매 앓는 노인들은 힘이 얼마나 센지...
휴우...”
여자는 다시 몸을 반대 방향으로 휙, 틀어 고정시켰다.
난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엄마의 눈은 이제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눈동자는 나의 뒤통수를 꿰뚫어 보는 것처럼 내 얼굴을 통과하고 있었다. 우린 오랫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여자가 말했다.
“이것, 보이죠?
나오실 때 한 번 눌러주세요”
여자는 자신의 두 팔을 툭툭 털어내며 슬리퍼를 질질 끌며 나갔다. 싸늘한 바람이 느껴졌다.
나는 대체 어떤 장르의 영화를 바라고 있었을까?
내게 섬 집 아이를 불러주며 여욱아,라고 불러 주던 엄마를 바랐을까?
가루로 남아 어딘가에 머물고 있을 엄마를 바랐던 걸까?
책임이 묶인 굴레의 핏줄을 무책임으로 정당화하길 바랐을까?
그녀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아니 자신 앞에 어떤 무언가가 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콧속을 타고 올라가는 투명한 줄이 버거워 보였다.
좀 더 용기가 필요했다.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녀의 눈동자가 나를 향해 움직였다.
나는 조금 더 몸을 움직였다. 이번에는 눈동자가 아주 명확하게 나를 따라왔다.
어떤 감정이, 그 무엇이 시켰을까?
내 입에서 소리가 났다.
“엄... 마”
잘 살아가고 있었다면 나는 과연 배신감을 느꼈을까?
잘 살아가지 못해 배신감은 사라지고 슬픔과 연민이 남은 것일까?
40년 만에 보는 시들어버린 민들레 같은 얼굴에 내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그녀의 가슴으로 더,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뚫고 들어가고 싶은 충동에 숨이 가빠졌고 아랫배가 간질거렸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엄... 마"
뒤에서 아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허구헛날 하는 말이
벼락에 쳐 맞아 죽을 년, 이라 했어요
비만 오면 벼락 맞아 죽겠다고 바닷가를 돌아다니고...
잡아 놓으면 또 나가고...
결국 여기까지 온 거예요”
난 콧줄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것 빼면 죽는 건가?”
아진이 끄덕거렸다.
나는 중얼거렸다.
“지금도 죽은 거군”
아진은 나로 인해 엄마가 꽤 괴로웠다, 그리고 잊지 않았다, 는 것을 계속 말하고 싶어 했다.
“두 달 전만 해도 나를
여욱이라고 불렀어요 늘”
내 웃음은 아진의 눈이 불이 켜지도록 만들었다.
난 계속 웃었다.
“대체 모르겠어, 나도...
이런 걸 바란 건 아닌데
또다시 생각하면 또 바랐던 것 같기도 하고...
답이 내려지지 않아"
난 병실 밖을 나왔다.
별아가 의자에 쭈그리고 있었다.
“별아 안녕”
내 눈이 맘에 들어할 두꺼운 옷을 입고 앉아있는 별아가 맘에 들었다.
내가 다시 말했다.
“춥지 않아 다행이네?
밥 먹었니?”
별아가 아진의 눈치를 보더니 티 나지 않게 고개를 살짝 저었다.
“밥, 먹으러 가자”
갑자기 나의 식욕이 아주 오랜만에 끓어올랐다.
아이의 거친 손은 건조해 미끄러져 내릴 것 같이 내 손안에 잡혔다.
내가 낯설어 밀어내기만 했던 어제의 별아와 너무 다른 행동이다.
아이는 내게 찰싹 붙어 따라왔다.
아진이 소리친다.
“어디 가요?”
아진의 물음이 계속 반복되는 것을 모른척하며 별아와 난 계속 뛰었다.
별아의 웃음소리가 맑다. 뛰다가 아진을 확인하고 또 뛰며 갸르륵, 거렸다.
별아가 손으로 가리킨 곳으로 더 빠르게 뛰었다.
아진이 숨을 헐떡거리며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나를 노려본 후, 별아를 노려보았다.
눈치 빠른 별아가 말했다.
“이모가 배고프다고...”
난 놀라 별아를 보고 말했다.
“너 이모라고 했니?”
“그럼 뭐예요?
엄마가 이모라고 했어요”
아진의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별아가 집어 든 돈가스 안이 뽀얗고 고왔다.
그것을 지나 별아의 거뭇한 손끝이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려 발을 뗄 수 없었다.
난 다시 별아에게 잘 있어, 란 인사를 하지 못하고 안녕, 이라는 말로 등을 보였다.
별아가 소리쳤다.
“이모 또 놀러 와요”
아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약속 지킬 거죠? 기다릴게요”
난 그 먼 길을 다시 걸었다.
한기와 땀이 만났을 무렵 해중(海中) 앞에 다다랐다.
캄캄한 밤 내 그림자만 보고도 여주인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입을 벌리고 있었다.
마치 죽었던 사람이 살아 돌아온 것 마냥.
“안녕하세요”
“아, 아니 또 어떻게”
“그렇게 되었어요
같은 방으로 주시겠어요?”
여주인은 아예 몸을 끌어 내 앞으로 다가와 열쇠를 쥐어 주며 말했다.
“별일... 없는 거지?
아니 왜 안 돌아가고 다시 왔어요?”
난 짝눈을 보이며 배시시 웃으며 등을 돌렸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불안한 여주인은 자꾸만 하려 했다.
꼭 괜찮은지 확인하고 말겠다는 의지의 말투다.
“저, 저기 따뜻한 것 갖다 줄게요
응? 알았죠?”
“감사합니다”
비가 내렸다.
차가운 겨울비다.
물질 후 돌아올 때 비가 내리면 엄마는 늘 울었다.
“바닷속에서도 젖어 서러운데
또 젖고 또 젖고 또 젖어"
엄마는 가는 길이 젖어 서러워 오늘도 울까, 난 엄마가 담긴 작은 항아리를 수건으로 돌돌 말고 또 말았다.
난 엄마의 연명치료를 하지 않았다.
코에 박힌 줄, 팔에 박힌 여러 줄, 뚜뚜, 하는 심장이 멎길 확인하는 소리, 그렇게 둘 수가 없었다.
더 이상 무의식의 세계에 그녀를 젖은 채, 두고 싶지 않았다.
밝고 축축하지 않은 곳으로 꺼내주고 싶었다.
아진은 이제껏 흘리지 않은 눈물을 모두 흘렸다고 했다.
단 한 번을 엄마로 인해 눈물을 흘려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런 아진은 엄마의 몸속에서 모든 것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할 때부터 가루가 될 때까지 쉼 없이 울었다.
아진은 불길 속에 던져진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다음 생엔 사람으로 태어나지 마
불행하지 않게”
아진과 나는 작은 항아리를 몇 시간째 바라보기만 했다.
아진은 항아리를 납골당으로 옮기길 바랐고 난 보내주기를 바랐다.
우린 말 없는 싸움을 계속했다.
별아가 좁은 방 안에서 우리를 지켜보다 잠이 들었다.
난 잊고 있던 별아를 확인한 후 말했다.
“약속했으니까
내가 할게”
내내 고집으로 입을 닫고 있던 아진이 말했다.
“아빠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
엄마가 말했어
넌 내 딸이야 아진아,라고...”
난 항아리를 들고 일어서며 말했다.
“별아 잘 키워
네가 엄마의 딸이었듯
별아는 네 딸이잖아”
아진의 눈에 3일 내내 보았던 시커먼 눈물이 또 고였다.
“갈게”
“어디로 가?”
“우린 만났어야 하는 운명이었지만
이젠 그러지 않아도 돼
잘, 살아봐 이젠”
두 걸음을 내딛을 때 아진이 등에 대고 말했다.
“좋았어, 언니가 있다는 거
꿈에도 모를 언니가 있다는 게 좋았어”
난 준비해 둔 봉투를 들마루 위에 놓았다.
“정말 간다”
난 다시 또 걷기 시작했다.
금세 멀어진 아진의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언니”
다시 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난 겉옷을 벗어 항아리를 감쌌다.
섬집 아기 엄마는 모질게 추웠고 모질게 가난했고 모질게 젖은 인생이었다.
나오지 않던 눈물이 이제야 흘렀다.
꽁꽁 얼어붙은 눈물은 다시 나오지 않을 줄만 알았다.
[여욱아, 여욱아
내 배 아파 낳은 내 자식 여욱아
용서해 다오]
요양원에서 엄마의 물건을 정리하다 꼬깃꼬깃한 수첩을 발견했다.
글을 배우지 못했던 엄마는 몇 글자를 쓰기 위해 애를 쓴 모양이다.
내 이름 석 자가 수첩에 빼곡했다.
아무래도 난, 당신을 몹시 사랑했던 모양이다.
다시 돌아갈 순 없을까, 엄마의 뱃속으로.
온몸이 젖고 항아리까지 비가 스며들 것 같아 겁이 났다. 공포스러움에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뛰어야만 했다. 처음 보육원에서 도망친 후 섬 집을 찾아 뛰었던 것처럼, 미친 듯이 뛰었다.
저기, 미역 줄기처럼 젖은 머리카락을 축, 늘어뜨린 체, 비어 있는 포대기를 끌며 느릿느릿 그녀가 걷고 있다. 그새 파란 실타래가 그녀를 집어삼켰다.
생각보다 사막은 뜨겁지 않았다.
지독한 모래바람이 말썽이다.
난 항아리 뚜껑을 열었다. 목이 말랐지만 생수 뚜껑을 열고 싶지 않았다.
조금의 물방울도 용납할 수가 없다.
오렌지빛 모래알에 손을 비벼 닦은 후, 항아리 안에 손을 넣었다.
섬집 아기를 불러주던 엄마의 뽀얀 젖가슴 같았다.
손안에 가득 담은 뼛가루를 바람에 조금씩 날려 보냈다.
마치 오로라처럼 하늘을 향해 날았다.
“훨훨 날아
뜨거운 곳으로 훨훨
이제 춥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