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팀 선배가 내 보고서를 회의에서 자기 이름으로 발표한 적이 있다. 다들 아는 자리였다. 내가 쓴 거라는 걸. 그래도 아무도 말하지 않았고, 나도 말하지 않았다.
며칠 뒤 선배가 말했다. "그때 미안했어. 상황이 그렇게 됐어." 나는 "아, 네. 괜찮습니다"라고 했다. 실제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사과를 받았으니까.
근데 괜찮지 않았다.
다음 보고서를 쓸 때 이상하게 힘이 안 들어갔다. 열심히 쓸 이유가 희미해졌다. 회의 때마다 그 장면이 떠올랐다. 선배가 내 자료를 넘기면서 아무렇지 않게 설명하던 모습. 괜찮다고 했는데 괜찮지 않았고,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끝나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했더니 돌아온 말은 한결같았다.
"걔가 사과했잖아."
"그러면 됐지, 뭘."
됐잖아. 그 말이 이상하게 무거웠다. 사과를 받았으니 끝난 거라는 뜻이었다. 아직 안 끝난 나는 어디에 놓아야 하는 건지 몰랐다. 사과를 받고도 풀리지 않는 내가 속이 좁은 건가. 집요한 건가. 괜히 미련을 못 버리는 건가.
한동안 그렇게 생각했다. 나한테 문제가 있다고.
지금은 좀 다르게 본다. 사과는 하는 사람의 몫이고, 감정이 풀리는 건 받는 사람의 몫이다. 그건 별개의 일이다. "미안해"를 들었다고 해서 감정이 자동으로 리셋되는 게 아니다. 그건 기계가 아니니까 당연한 거다.
근데 우리는 그걸 잘 모른다. 사과하면 풀려야 한다고 배워왔다. 사과를 받았는데 안 풀리면 그건 받은 쪽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됐잖아"라는 말 안에는 "이제 네가 풀어줘야 할 차례야"라는 압박이 들어 있다. 그게 은근히 무겁다.
풀리지 않으면 안 풀리는 거다. 시간이 걸리면 걸리는 거다. 그건 속이 좁은 게 아니다.
나는 그 선배와 지금도 같은 회사에 다닌다. 잘 지낸다. 밥도 먹는다. 풀렸냐고 물으면 — 풀린 게 아니라 묻은 거다. 그 둘은 다르다는 걸 이제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