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가 좋으면 됐지

by 욕가이버

프로젝트 마감이 일주일 남았을 때, 후배한테 말했다. "이번 주는 좀 빡셀 거야." 후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택지가 없다는 걸 둘 다 알고 있었다. 그 주에 후배는 매일 열한 시에 퇴근했다. 나는 아홉 시쯤 나갔다. 내가 방향을 잡고, 후배가 채우는 구조였으니까.


결과는 잘 나왔다. 클라이언트도 만족했고, 팀장도 좋아했다. 나는 후배한테 말했다. "수고했어. 덕분이야." 후배는 웃으면서 "아닙니다"라고 했다. 나는 그 웃음을 보고 안심했다. 괜찮구나, 하고.


며칠 뒤 점심을 같이 먹는데 후배가 멍하니 있었다. "괜찮아?" "네, 괜찮습니다." 짧게 웃었다.


그 웃음이 며칠 전이랑 같았다. "아닙니다"할 때의 그 웃음. 그때는 몰랐는데, 돌이켜보니까 둘 다 같은 얼굴이었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하는 얼굴.


나는 그 얼굴을 안다. 내가 팀장한테 자주 짓는 얼굴이니까.


위에서 방향을 바꿔놓으면 내가 밤새 수습했다. 결과가 나오면 팀장이 말했다. "역시 우리 팀이야." 나는 웃었다. "아닙니다." 속으로는 생각했다. 과정은 안 보면서. 결과만 가져가면서. 나는 저렇게 안 해야지.


근데 하고 있었다. 똑같이. 후배한테.


그게 좀 무거웠다. 당하는 쪽에 있을 때는 선명하게 보이는 것들이, 하는 쪽이 되면 안 보인다. 결과가 잘 나오면 과정이 보이지 않는다. 후배가 열한 시까지 뭘 느꼈는지, 억울한 건 없었는지,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은 없었는지. 결과가 그 모든 걸 덮어버린다.


나는 후배한테 고맙다고 했지, 미안하다고는 안 했다. 미안한 줄도 몰랐다. 결과가 좋았으니까. 좋은 결과가 나쁜 과정을 지워버렸으니까.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마감이 오면 또 그렇게 될 거다. 후배한테 "이번 주 빡셀 거야"라고 말하고, 결과가 나오면 "수고했어"로 끝낼 거다. 달라진 게 있다면 — 이제는 그 "수고했어" 뒤에 뭔가 빠져 있다는 걸 안다는 것 정도.


아는 것과 바꾸는 것은 다르다. 나는 아직 아는 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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