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에게 혼났다.
왜 혼났는지 모르겠다.
회의가 끝나고 자리에 앉아서 되짚어 본다. 내가 뭘 잘못했지. 보고서가 문제였나. 말투가 거슬렸나. 타이밍이 안 좋았나. 머릿속에서 한 시간 전을 되감기한다. 아무리 돌려봐도 모르겠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의 행동을 먼저 돌아본다. 내가 뭔가 잘못한 게 있겠지.
오해하지 말자. 잘못해서 혼나는 건 당연하다.
보고서에 숫자가 틀렸으면 고쳐야 하고, 기한을 넘겼으면 반성해야 한다. 이유가 분명한 질책은 약이다. 듣기 싫어도 납득이 된다. 납득이 되면 고칠 수 있고, 고치면 성장한다. 이런 혼남은 필요하다.
문제는 납득이 안 되는 상황이다.
아무리 되짚어도 이유를 모르겠는 것. 어제까지 괜찮았던 일이 오늘 갑자기 문제가 되는 것. 같은 일을 해도 어떤 날은 칭찬이고 어떤 날은 질책인 것. 기준이 없다. 기준이 없는데 혼난다.
그런데도 이유를 찾는다. 팀장이 혼냈으니까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말에는 근거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 팀장이니까. 나보다 직급이 높으니까. 경험이 많으니까.
이건 본능이 아니다. 강요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강요받았다. 시험에는 정답이 있었다. 정답을 맞히면 칭찬받고, 틀리면 혼났다. 12년 동안 반복하면 뇌에 회로가 깔린다. 혼나면 내가 틀린 거다. 부모님에게 혼나면 이유를 찾았다. 선생님에게 혼나면 반성문을 썼다. 정답은 항상 위에 있었고, 아래는 그 정답에 맞추는 것이 공부였다. 위에서 내려오는 말은 맞고,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감정은 틀리다고 배웠다.
의심은 배운 적이 없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서도 팀장이 혼내면 자동으로 이유를 찾는다. 20년 넘게 반복된 강요다. 의심 없이 작동한다.
이유를 찾는 건 단순하다. 다시 혼나지 않으려고. 그리고 인정받고 싶으니까. 이유를 찾아서 고치면 다음에는 괜찮을 거라고 믿는다. 고쳐서 잘하면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그래서 더 열심히 찾는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내가 뭘 고쳐야 하는지.
그런데 한 번만 생각해 보자.
진짜 이유가 있었는가.
기분이 나빴거나, 다른 데서 스트레스를 받았거나, 원래 그런 사람이거나. 이유가 나에게 없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내가 뭘 고치든 달라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원인이 나에게 없으니까.
더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혼난 사람이 혼낸 사람의 사정을 헤아리기 시작한다.
"요즘 위에서 압박이 심한가 보다." "원래 성격이 저런 건 아닐 거야." "내가 그때 다르게 했으면 괜찮았을 텐데."
상대의 행동에 이유를 붙여주고 있다. 이유가 붙는 순간, 혼낸 사람은 "사정이 있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혼난 사람은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된다.
혼난 사람이 혼낸 사람을 변호하고 있다.
나르시시스트라는 말이 요즘 많이 쓰인다. 정확한 의미를 아는 사람은 적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 유형의 사람에게는 답이 없다.
자기가 문제라는 걸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모든 원인이 상대에게 있다고 믿는다. 진심으로 믿는다. 연기가 아니다. 그래서 상대가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맞춰주려 해도,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피해자는 계속 이유를 찾는다. "내가 이렇게 하면 달라지지 않을까." "저 사람의 상처를 내가 치유해줄 수 있지 않을까." 변할 생각이 없는 사람을 변하게 하려는 노력. 그 노력이 피해자의 시간을, 감정을, 자존감을 전부 빨아먹는다.
답이 없는 문제에 답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검열이 시작된다.
"내가 예민한 건가." "이 정도는 참아야 하나." "다른 사람들은 괜찮은 것 같은데." "내가 너무 화를 내는 건가."
자기 감정을 자기가 심판하고 있다. 화가 나는데 화내면 안 될 것 같고, 싫은데 싫다고 하면 나쁜 사람이 될 것 같다. 그래서 참는다.
참으면 상대는 그렇게 대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저항이 없으니까. 저항이 없으면 더 거칠어진다. 그리고 참는 쪽은 감정을 검열하다가 어느 순간 그 상황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원래 이런 사람이니까." "어디든 이런 사람은 있으니까." 부당함이 일상이 되는 것이다.
"너무 화내지 마." "그럴 수도 있지." "참을 만하잖아." 이 말들이 전부 자기검열의 언어다. 바깥에서 올 때도 있고, 자기 안에서 올 때도 있다. 어디서 오든 효과는 같다. 내 감정을 틀린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화가 나면 화가 나는 거다. 싫으면 싫은 거다. 그건 틀린 감정이 아니라 나의 감정이다. 검열할 대상이 아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잘못해서 혼나는 건 당연하다. 이유가 분명하면 받아들이면 된다. 고치면 된다. 그건 성장이다.
그런데 아무리 돌아봐도 납득이 안 되면, 모르는 게 맞다. 없으니까.
이유를 찾는 순간 내 탓이 시작된다. 내 탓이 시작되면 자기검열이 시작된다. 자기검열이 시작되면 감정이 죽는다. 감정이 죽으면 저항이 사라진다. 저항이 사라지면 부당함이 일상이 된다.
끊어야 할 건 그 사람과의 관계가 아니라, 이유를 찾으려는 습관이다.
당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 가지만 기억하자.
납득이 되면 고치면 된다.
납득이 안 되면 찾지 마라. 없다.
그건 당신 탓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