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틀리네."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아니, 한번쯤이 아니라 매일 듣는다. 회의에서, 식사 자리에서, 카톡에서. 너무 자연스러워서 이상한 줄도 모른다.
그런데 한 번만 생각해 보자.
"나랑 틀리네"와 "나랑 다르네"는 같은 말인가.
다르다는 둘 다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너는 짜장, 나는 짬뽕. 틀린 사람 없다.
틀렸다는 하나만 맞고 나머지는 없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1 더하기 1은 2다. 3이라고 하면 틀린 거다.
그러면 "틀렸다"는 어디까지 쓸 수 있는가.
답이 정해진 곳까지다. 수학, 시험, 신호등. 인간이 합의해서 답을 정해 놓은 체계 안에서만 맞고 틀림이 존재한다. 출제자가 있고, 정답이 있고, 그 외는 오답이다. 여기까지는 "틀렸다"가 맞다.
문제는 그 바깥이다.
중소기업에 다니면 틀린 건가. 대학을 안 가면 틀린 건가. 남들 다 가는 길을 안 가면 틀린 건가.
답이 없다. 정해진 게 없다. 출제자가 없다. 그러면 전부 "다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걸 "틀린 것"이라고 말한다. "그건 좀 틀리지 않아?" 이 한마디에 상대방의 선택이 오답이 된다.
회의에서 "그건 좀 다른 것 같은데요"라고 하면 대화가 이어진다. "그건 틀린 것 같은데요"라고 하면 대화가 끝난다. 단어 하나 차이다. 그런데 그 단어 하나가 토론과 심판을 가른다.
조직에서 윗사람이 "그건 틀려"라고 하면 아랫사람은 입을 닫는다. 다른 의견이 아니라 틀린 의견이 되었으니까. 틀린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고치거나 침묵하는 것뿐이다. 다른 사람은 존재할 수 있지만, 틀린 사람은 존재하면 안 되니까.
그래서 줄이 생긴다.
다름이 사라지면 기준이 하나로 줄어든다. 기준이 하나면 순서가 생기고, 순서가 생기면 위아래가 만들어진다. 줄세우기. 등급. 요즘 말로는 티어.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게 있다. 기준을 누가 만드는가. 그리고 그 기준을 만든 사람은 무엇을 얻는가.
줄을 세우려면 잣대가 필요하다. 그 잣대를 쥔 사람이 줄의 바깥에 선다. 학교에서는 출제자가 정답을 정한다. 회사에서는 평가자가 고과 기준을 정한다. 사회에서는 이미 올라간 사람이 올라가는 방법을 정한다. 자기가 올라온 방식을 유일한 정답으로 만드는 것. "나처럼 해야 맞는 거야." 그러면 다른 방식으로 올라오려는 사람은 자동으로 틀린 사람이 된다.
이것이 기득권이 얻는 첫 번째 이득이다. 경쟁을 제거하는 것. 잣대가 하나면 그 잣대 위에 있는 사람의 자리는 흔들리지 않는다. 다른 기준이 인정되는 순간 다른 줄이 생기고, 다른 줄에서는 자기가 아래일 수도 있다. 성적으로 올라간 사람에게 성적 말고 다른 기준이 인정되면 위협이다. 연봉으로 줄을 세운 사람에게 연봉 말고 다른 가치가 인정되면 구조가 흔들린다. 기준이 하나여야 자리가 보장된다.
두 번째 이득이 있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 "다르다"를 인정하면 왜 다른지, 어떻게 다른지를 들어야 한다. 시간이 들고, 에너지가 들고, 때로는 자기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야 한다. "틀렸다"로 끝내면 그럴 필요가 없다. 대화가 필요 없고, 설득이 필요 없고, 상대를 이해할 필요가 없다. 한마디면 끝난다. 효율적이다. 위에 있는 사람일수록 효율을 좋아한다.
세 번째 이득이 가장 크다. 순종을 만드는 것. 틀린 사람은 저항하지 않는다. 고치려고 하거나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다. "나는 다를 뿐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은 위험하다. 자기 자리를 내놓지 않으니까. 그런데 "나는 틀렸나 봐"라고 말하는 사람은 안전하다. 스스로 고개를 숙이니까. 다름을 틀림으로 바꾸는 건 저항의 언어를 빼앗는 것이다. 틀린 사람에게는 목소리가 없다.
기득권은 이 세 가지를 한꺼번에 얻는다. 경쟁이 사라지고, 설명이 필요 없고, 아래가 순종한다. 그 모든 것이 단어 하나에서 시작된다. "다르다"를 "틀렸다"로 바꾸는 것. 이보다 효율적인 지배 구조가 있을까.
티어라는 단어가 여기서 다시 보인다. 원래 게임에서 캐릭터 성능을 S, A, B, C로 나누는 용어였다. 지금은 사람한테 쓴다. "그 사람은 S티어야." 사람을 성능으로 분류하고 있다. 성능이 낮으면 쓸모없다는 뜻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기준은 하나, 줄은 하나, 그 줄에서 내 위치가 곧 내 가치. 여러 기준이 공존하던 세상을 하나의 등급표로 압축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등급표 바깥에 있는 사람은 등급 자체를 받지 못한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돌아가서 생각해 보자.
"다르다"가 살아 있으면 여러 기준이 공존한다. 짜장도 맞고 짬뽕도 맞는 세상이다. 기준이 여러 개면 줄이 하나가 아니고, 줄이 하나가 아니면 위에 있던 사람이 영원히 위에 있을 수 없다. 다른 줄에서는 아래일 수도 있으니까.
"틀렸다"가 지배하면 기준이 하나로 줄어든다. 짜장만 맞고 짬뽕은 틀린 세상이다. 줄이 하나면 위아래가 고정되고, 위에 있는 사람은 내려올 일이 없다.
시험에는 정답이 있다. 인생에는 없다. 그런데 시험으로 20년을 훈련받은 사람은 인생에도 정답이 있다고 믿게 된다. 대학, 취업, 결혼, 집. 정해진 순서가 있고, 그 순서에서 벗어나면 "틀린 인생"이 된다. 출제자도 없는 시험에서 오답을 받는 것이다.
다음에 누군가의 선택을 보고 입이 열릴 때, 한 번만 멈춰 보자.
지금 내가 하려는 말은 "틀렸다"인가, "다르다"인가.
그리고 한 가지만 더.
틀린 건 누가 정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