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높은 자리가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자리가 실제로 어떤 자리인지는 잘 모른다.
조선의 왕들을 보자. 태종은 형제를 죽였다. 세조는 조카를 죽였다. 단종은 열두 살에 왕이 되어 열일곱에 쫓겨나 죽었다. 연산군은 어머니의 죽음을 알고 무너졌다. 이것만이 아니다. 왕위를 둘러싼 피는 한 시대의 일이 아니라 왕조 내내 반복된 구조였다.
역사를 배우면서 우리는 이것을 잔인하다고 했다. 권력욕에 눈이 멀었다고 했다.
그런데 한 번만 뒤집어 보자. 형제를 죽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 자리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왕위라는 자리는 앉는 순간 지켜야 하고, 지키려면 위협을 없애야 하고, 가장 큰 위협은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왕이 잔인한 게 아니라 왕의 자리가 잔인한 것이다.
영화 내부자들을 보면 정치인, 언론, 재벌이 서로 물고 물린다. 약점을 잡고, 뒷거래를 하고, 필요 없어지면 버린다. 많은 사람들이 이걸 보면서 "영화니까"라고 한다.
나는 좀 다르게 본다. 오히려 현실이 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백억을 지키는 사람의 하루를 상상해 봐라. 세무조사가 언제 나올지 모른다. 파트너가 언제 돌아설지 모른다. 경쟁자가 언제 치고 들어올지 모른다. 가족도 믿기 어렵다. 재산 앞에서 사람이 변하는 걸 누구보다 많이 봤을 테니까.
화려해 보이는 그 삶의 이면에는 아무도 믿지 못하는 밤이 있다.
그리고 올라갈수록 옆자리가 비어 간다. 아래에 있을 때는 같은 처지의 동료가 있다. 같이 불만을 나누고, 같이 술 한잔 하고, 같이 욕할 수 있다. 올라가면 그게 없어진다. 속내를 보이면 약점이 되고, 가까이하면 편 가르기가 되고, 진심을 말하면 뒷말이 된다. 사람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말할 곳이 사라지는 것이다.
사실 이건 먼 이야기가 아니다.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안다. 팀장 자리 하나에 사람이 변하는 걸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제까지 같이 밥 먹던 동료가 승진 시즌이 오면 달라진다. 줄을 서고, 공을 가져가고, 남의 실수를 슬쩍 드러낸다.
그게 겨우 팀장이다.
임원이 되면 더하다. 올라갈수록 지켜야 할 것이 늘어나고, 지켜야 할 것이 늘어나면 사라지는 것도 늘어난다. 자리가 사람을 바꾸는 게 아니라, 자리가 사람에게 비용을 청구하는 것이다.
왕은 왕위를 지키기 위해 피를 흘렸다. 지금의 부자들은 부를 지키기 위해 내 피를 흘려야 한다. 다가오는 사람의 속을 읽어야 하고, 가까운 사람의 변화를 경계해야 한다. 그걸 반복하면 습관이 된다.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살아서는 지키느라 쉬지 못하고, 죽어서도 마음대로 가지 못한다. 겉에서 보면 가진 자다. 안에서 보면 지키는 자다. 그리고 지키는 삶은 가지는 삶보다 무겁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건 그 사람이 가진 것이다. 그 사람이 지키고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만약 내가 그 자리에 간다면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팀장 자리 하나에도 흔들리는 사람을 봤다. 수백억 앞에서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가족이 돌아서도, 파트너가 배신해도, 밤마다 지켜야 할 것들의 목록이 늘어나도 — 그래도 그 자리에 앉겠는가.
있다면, 도전하면 된다. 그건 그 사람의 선택이다.
다만 한 가지는 알고 가야 한다. 그 자리는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짊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한 번 짊어지면 내려놓는 법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