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가리는 기술 - 단어

by 욕가이버

정시에 퇴근하면 "칼퇴근"이라고 한다.


칼같이 나간다. 차갑다. 조직에 관심 없다. 그런 느낌이 따라온다. 그런데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나가는 건 계약대로 한 것이다. 정시퇴근이다. "칼퇴근"이라는 단어가 붙는 순간 미안해진다. 야근하는 사람 옆에서 가방을 싸는 게 눈치가 보인다.


초과근무도 마찬가지다. 계약 시간을 넘겨서 일하는 것이다. 그런데 초과근무라고 부르지 않는다. "야근"이라고 부른다. 밤에도 일한다 — 열정, 책임감, 프로. 단어가 바뀌니까 초과가 헌신이 된다. 정시퇴근은 미안한 일이 되고, 초과근무는 자랑스러운 일이 된다.


단어 두 개가 감정을 만든 것이다. 미안함과 자부심. 6시에 가방을 못 싸고, 7시까지 남아 있는 게 당연해진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그렇게 움직인다.


직장에서 이 구조는 매일 작동한다.


윗사람이 고집을 부리면 "소신"이고 아랫사람이 고집을 부리면 "불복종"이다. 윗사람이 화내면 "카리스마"이고 아랫사람이 화내면 "감정 조절 못함"이다. 윗사람이 실수하면 "판단 착오"이고 아랫사람이 실수하면 "업무 미숙"이다.


같은 행위에 다른 단어가 붙는다. 단어가 다르면 인식이 달라진다. 인식이 달라지면 한쪽은 보호받고 한쪽은 처벌받는다.


자기에게 유리한 단어를 쓰는 사람이 있다면, 그 단어가 가리고 있는 것이 그 사람의 진짜 의도다.


이건 직장만의 일이 아니다.


있는 사람이 세금을 안 내면 "절세"다. 없는 사람이 세금을 안 내면 "탈세"다.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주인데, 대주주를 "오너"라고 부른다. 오너라고 하면 원래부터 그 사람 것인 것 같다.


사람을 자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위에서는 "구조조정"이라고 부른다. 경영 판단이 된다. 아래에서는 "권고사직", "희망퇴직", "명예퇴직"이라고 부른다. 잘린 건데 표현이 전부 예쁘다. "권고"니까 강제가 아닌 것 같고, "희망"이니까 본인이 원한 것 같고, "명예"니까 자랑스러운 것 같다. 단어 하나가 바뀔 때마다 실체가 한 겹씩 가려진다. 가려질수록 분노가 줄고, 분노가 줄면 저항이 사라진다. 저항이 사라지면 그것이 정상이 된다.


반대쪽은 어떤가. "도덕적 해이", "먹튀", "무책임". 없는 쪽의 행위에는 거친 표현이 붙는다. 거친 표현은 분노를 만들고, 분노는 처벌을 부르고, 처벌은 본보기가 된다. 부드러운 단어는 위를 보호하고, 거친 단어는 아래를 길들인다.


언론이 이 구조를 완성한다.


국가가 기업에 돈을 쓰면 "지원", "활성화"라고 부른다. 같은 국가가 사람에게 돈을 쓰면 "세금 낭비", "포퓰리즘"이라고 부른다. 같은 돈이다. 같은 국가 예산이다. 그런데 단어가 다르다. 기업에 쓰면 투자고, 사람에게 쓰면 낭비다. 이 단어를 선택하는 건 누구인가. 그리고 그 단어로 이득을 보는 건 누구인가.


보호하고 싶은 쪽에는 부드러운 표현을 쓰고, 공격하고 싶은 쪽에는 거친 표현을 쓴다. 그리고 없애고 싶은 일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보도하지 않으면 없는 일이 된다. 단어가 인식을 만들고, 인식이 여론을 만들고, 여론이 현실을 만든다.


칼퇴근이라는 단어 하나가 미안함을 만들었다. 미안함이 눈치를 만들고, 눈치가 야근을 만들고, 야근이 문화가 되었다. 절세라는 단어가 분노를 지웠고, 지원이라는 단어가 낭비를 투자로 바꿨다.


단어가 인식을 바꾸고, 인식이 감정을 만들고, 감정이 행동을 바꾸고, 행동이 문화가 된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느끼는 것들 중에 단어가 만들어낸 것이 얼마나 될까.


누군가 자기에게 유리한 단어를 쓰고 있다면, 그 단어를 걷어내 보자.


그 아래에 그 사람의 진짜 속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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