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수업

교수님 건강하세요

by 희힣




1학년 2학기 수강신청 정정기간이었다.

금공강을 즐기는 동기들과 선배들이 부러웠던 나는 무슨 요일이든 상관없으니 제발 공강을 갖고 싶다며 수강신청 애플리케이션을 들락날락했고, 결국 금요일 오전 9시부터 11시 45분, 12시부터 2시 45분까지 이어지는 교양 2개를 잡고 목요일 공강을 얻어냈다.



공강이 너무 달콤했던 것일까, 금요일 수업 내내 졸고 있는 내 모습을 확인하며 매주 자괴감이 들었다.



나는 학교를 다니며 자의든 타의든 수업시간에 졸아본 적이 손에 꼽는다. 수업의 내용이 흥미롭건 지루하건, 발표자의 강의력이 뛰어나든 뛰어나지 않든, 강의라는 무대 앞에 선 사람의 공연을 집중해서 지켜보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기에 항상 모든 수업을 경청했었다.



2학기부터 대외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수요일에는 현장 실습, 목요일에는 출근하여 아침부터 오후까지 근무한 후, 동아리에 가서 새벽에 기숙사에 돌아온다. 이 내용은 나중에 설명하기로 하겠다.



어쨌든,

평상시에 하지 않던 일을 하니 체력은 바닥이 났고 금요일 수업은 겨우 일어나 씻지도 못한 채 모자를 푹 눌러쓰고, 편의점에서 산 빵을 씹으며 허기를 달래며 교수님께서 수업을 하시든 말든 멍하니 노트북 속 빈 화면만을 바라보는 학생이 되었다.



첫 수업은 다행히도 고등학교 때 배웠던 내용들과 일부 겹쳐 나중에 따로 공부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그래서 더 졸았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두 번째 수업이었다. 강의 제목에 '감정 이입'과 '의인화'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평소 뇌과학과 심리학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이런 수업이 왜 자리가 남았지?라는 의문을 품으며 공강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흥미로운 수업도 듣고, 목요일 공강도 만들 수 있는 일석이조의 기회라며 수강신청을 하였다.



첫날 마주하게 된 교수님은, 첫 시간부터 오티를 건너뛰시고 본격적인 수업을 하셨다. 대학생으로서 어떤 태도와 마음가짐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하는지 이야기하셨다. 아니, 꾸짖으셨다. 마이크를 들고 조곤조곤 이야기하셨지만 모든 말은 가시 돋쳐있었고, 무언가 시니컬하고 차가운 교수님이 어려웠던 나는 첫날에 앉았던 앞자리에서 점점 벗어나 맨 뒷자리에 앉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도 수업은 흥미로웠고 나름 가슴에 울림을 주셨기에 3시간 중 한 시간 정도는 집중하며 컴퓨터 메모장에 열심히 기록도 했다. 나머지 시간엔 멍을 때리며 인터넷을 돌아다니곤 했다. 밀린 연락들에 답장도 하며. 밀린 연락이 많진 않았다. 사실 날씨 탓을 하며, 추억 팔이를 하며,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교수님께서 지나가시는 말로 '지난주에 수업 끝나고 쓰러져 응급실에 갔다 왔다'라고 하셨다. 교단에 선 교수님은 연세가 꽤 있으셨는데(하나뿐인 아드님이 다가오는 주에 결혼 예정이시다) 건강이 좋지 않으신 모습을 보니 걱정이 되었다.



서포터즈 활동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교수님께서 몸이 좋지 않아 내일이 마지막 수업이 될 것 같다는 소식을 다른 교양 교수님을 통해 전해 들었다. 얼마나 몸이 안 좋으시면 마지막 수업일까 싶어 걱정돼 하루종일 불안했다. 금요일이 너무 피곤하고 몸도 아파 일교시 수업은 가지 않았는데, 오늘이 아니면 더 이상 교수님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 번째 수업을 들으러 지친 몸을 이끌고 강의실로 갔다.



교수님께선 수업 진도를 변경하셨다며, 그 이유는 수업이 끝날 때 이야기 해주신다고 하셨다. 항상 말씀이 날카로우셨지만 그날따라 유독 따스한 충고의 말을 많이 전해주신 교수님께서는, 학생 한 명 한 명을 바라보며 눈을 떼지 않으셨고, 지친 기색 하나 없이 두 시간 동안 수업을 이어나가셨다.



건강이 매우 좋지 않으시다며 수업을 한 학기 동안 끝까지 이끌어나가고 싶으셨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고 미안하다는 말씀을 전하시며, 아들도, 부모님도 걱정되지 않지만 내가 없으면 슬퍼할 동거인(아내분)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 입원해 치료를 받아보기로 결정하셨다는 교수님의 말씀에 겉으론 울지 않았지만 속으론 열 번도 넘게 울었다. 첫사랑과 결혼하셨다며 우스갯소리로 여러분도 사랑이라는 시간 낭비를 많이 하라고 하신 교수님이 모습이 스쳐 지나가며 교수님께 사랑은 무엇일까 잠시 궁금해졌다.



마지막 강의록은 다음과 같다.



인간계에서 만들어진 괴물은 어디에서 어떻게 온 것인가?

자연계에 존재하는 정상성을 벗어났다고 생각되는 괴물들은 모두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책 < 국가에 저항하는 사회>를 참고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의 질문: 시간 순서대로 네 다리, 두 다리, 세 다리로 걷는 것은? 을 어떻게 알아들었을까? 이는 오이디푸스가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괴물)를 만나도 '너'로 인식하고 피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스핑크스(괴물)를 '그것'으로 인식하고 피하기 급급했다.


의식-무의식

의미-무의미

질서-무질서

의식, 사고-마음


우리는 집중화한 대상에 대해서만 인식하지만, 눈은 집중하지 않은 대상도 인식하며, 이는 무의식에 쌓이며 무의식은 무질서하다.


"편견으로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색안경을 끼길 바라는 권력이 있음을 알고

그런 권력으로부터 벗어나 가운데의 세상을 보려고 노력하는 오이디푸스 같은 사람이 되어라. 소수자가 있음을 알고, 그런 소수자로서 소수자와 함께 연대하며 자신의 주장과 사고를 펼치며 살아있음을 자각하는 사람이 되어라"



한 달여 시간 동안 교수님께선 어른으로서 내게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주셨다.

말씀이 여러 워 딴짓을 하기도 하고, 피곤해 졸기도 했지만, 내게 진정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려주신 감사하신 분이다.



마지막 말씀을 끝으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해며 새로 오시는 강사님과 좋은 수업 이어나가면 좋겠다는 교수님의 말씀에 학생들은 큰 박수로 화답했다. 교실을 나가시는 교수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교수님께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꼭 건강하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꼭 전해드리고 싶었는데 용기가 없어 전하지 못했다. 수업시간 내내 조는 학생으로 비쳤을 나를 생각하니 내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나 싶었다.



나는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람들 중 어떤 사람에 속할까? 오이디푸스 같은 생각을 하고, 굳이 고르자면 소수자의 의견에 가깝지만 스스로 그렇게까지 나서야 하나 싶은 우매한 마음이 있었기에 멀리서 관조하는 태도를 지녔던 것 같다. 항상 오이디푸스 같은 삶을 동경해 왔고 그렇게 되려고 매일 노력했으나 작심삼일이 되기 일쑤였고 소극적으로 타고난 나의 본성을 바꾸는 것은 너무 힘들었다.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성을 무엇이라고 한 단어로 정의하기 너무 힘들었었다.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는데, 앞으로는 '오이디푸스'와 '소수자'리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항상 비주류의 편을 들고 싶었던 것도 이 때문일까.



수업이 끝나면 짐을 싸들고 나와 기숙사에 돌아가 잠에 들기 급급했는데 유난히 가방에 짐을 하나씩 담을 때마다 이제 정말 끝이구나 싶어 강의실을 떠나기 힘들었다.



교수님의 수업은 내가 꿈꿔왔던 눈이 반짝거리는 교양 수업과는 거리가 멀었지만(그리고 아직 그런 수업은 만나지 못했다), 나에게 가슴 깊은 울림을 주셨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삶의 지표를 제시해 주었다. 나는 이런 수업을 ‘진짜 교양 수업’이라고 명명하기로 맘먹었고, 교수님은 내 마음속 진정한 '교수님'으로, '스승'으로 자리 잡으셨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선 교수님께서 이미 입원해 치료를 받고 계실 것이다.

교수님께 메일을 써 보아야지. 그리고 마지막이 될 교수님의 강의평에 감사 인사를 올릴 예정이다.



지나고 보니 내가 피곤해 졸며 보냈던 시간이 너무나도 귀하고 소중한 수업 시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 다시 교수님의 수업을 들을 수 있을진 모르겠다. 내가 졸업하기 전 회복하신 모습으로 다시 교단에 돌아오시길 간절히 바란다. 돌아오시면 계절학기를 듣는 한이 있더라도 교수님의 수업을 다시 듣고 싶다. 그때는 졸지 않고, 앞자리에서 열심히 나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신랄한 비판을 받고 싶다.



교수님께서 건강하시길, 동거인분과 오랫동안 행복하시길, 건강하신 모습으로 대학에 다시 돌아오시길, 기도하며 오이디푸스라는 이상향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기다려야겠다.



마지막 수업 2024.10. 11.

작성 - 2024.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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