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는 말은 산업화 시대의 윤리였다. 그러나 지금은 물음표가 붙는다. 기술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고, 자본의 수익률이 임금보다 빠르게 오르며, 기본소득이 사회적 실험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AI, 자동화, 플랫폼 경제는 기존의 '일'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 그렇다면 10년 후, 우리는 정말로 일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을까? 아니, 일하지 않고 사는 것이 사회적으로 가능해지는 시대가 올까?
오늘날 노동은 소득의 수단이면서 동시에 정체성의 기반이었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고용에서 배제되고 있다. 제조업 자동화, AI 기반 사무직 대체, 플랫폼을 통한 노동 단절은 "일자리 없는 성장"을 현실로 만든다. 기술은 생산성을 높이지만, 그 혜택이 모든 이에게 골고루 분배되지는 않는다. 결국 자산이 있는 자와 없는 자, 자동화가 가능한 업무와 그렇지 못한 업무 간의 격차가 커진다.
여기서 기본소득(Basic Income)은 하나의 대안으로 떠오른다. 이는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조건 없이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제도다. 핀란드, 스페인, 미국의 일부 지역 등에서 실험이 진행되었고, 팬데믹 기간 동안 일시적인 현금 지원이 유사한 효과를 입증했다. 기본소득은 일자리 감소 시대에 사회적 안전망이자, 개인의 자유를 지키는 제도적 장치로 주목받는다. 하지만 재정적 지속 가능성, 노동 의욕 저하, 보편성의 정의 등에서 여전히 뜨거운 논쟁 중이다.
한편, 자본소득의 증대는 또 다른 길을 보여준다. 부동산, 주식, 배당금, 임대료, 디지털 자산 등은 더 이상 부유층만의 것이 아니다. 리츠, ETF, 분산투자 플랫폼, P2P 금융 등은 자본 접근성을 넓히고 있다. 즉, 노동이 아닌 자산 운용으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구조가 점점 대중화되고 있다. 문제는 진입장벽과 정보 비대칭이다. 일하지 않고 사는 삶이 가능하려면 자산소득 기반을 넓히는 교육과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
또한, 일의 '정의 자체'도 바뀌고 있다. 과거의 '직장'은 점점 사라지고, '과업 기반 소득', '자기 주도형 생산', '취미와 일이 결합된 창작 활동' 등으로 전환되고 있다. 유튜브, 블로그, 크리에이터, 커뮤니티 운영, 심지어 게임까지도 수익 수단이 된다. 이 새로운 일은 고용의 형태는 아니지만, 경제적 생존과 사회적 소속을 동시에 가능하게 만든다. 이는 특히 젊은 세대와 고령자에게 현실적인 대안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첫째, 자산소득의 기초 체력을 길러야 한다. 단순히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를 하라는 것이 아니다. 복리의 원리를 이해하고, 리스크 분산의 중요성을 알고, ETF, 리츠, P2P, 크라우드펀딩 같은 금융 구조를 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학교가 가르쳐주지 않기에, 스스로 학습하고, 경험을 축적하는 방식이 될 수밖에 없다.
둘째, 디지털 기반의 자기 생산성을 키워야 한다. 유튜브 채널 운영, 온라인 교육 콘텐츠 제작, 소규모 뉴스레터 발행, 자동화 도구 활용 등은 단순한 부업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의 '생산 수단'이다. 노동의 형식은 바뀌더라도, 콘텐츠, 지식, 커뮤니티 운영 능력은 갈수록 중요해진다.
셋째, 기본소득과 사회안전망에 대한 감시자이자 수혜자 되기. 제도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기본소득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와 정치적 압력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시민 개개인의 이해와 목소리가 결정적이다. 정책 감시와 제도 이해, 참여와 실험이 동시에 필요하다.
넷째, 일과 의미의 분리를 연습하라. 우리는 너무 오래 '일을 해야만 가치 있는 존재'라는 신화를 믿어왔다. 하지만 미래에는 '일하지 않아도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술, 취미, 봉사, 공동체 활동 등은 경제적 생존과는 별개로 삶의 품질을 결정짓는다. 이 두 가지 축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어야 '노동에서 자유로운 삶'도 지속 가능해진다.
10년 후, 일부는 정말로 일하지 않고도 먹고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무위도식의 결과가 아니라, 기술, 자본, 제도, 학습이 만들어낸 새로운 구조 위에 가능해지는 삶이다. 일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선택 가능해질 것이다. 우리가 지금 준비해야 할 것은 '게으름의 권리'가 아니라, '자유로운 선택의 기반'이다. 노동 없는 생존은 사회가 보장할 수 있지만, 의미 있는 삶은 여전히 개인의 몫이다. 그리고 그 둘 사이를 잇는 다리를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