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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story]시대가 바뀌어도 역사가 되풀이 되는가?

by 매드본

로봇이 병사를 대신하는 시대다. 데이터는 초 단위로 축적되고 인간의 지식과 능력은 과거의 수십 배 속도로 확장된다. 그런데도 뉴스 헤드라인을 보면 낯익다. 부동산 거품, 금융 위기, 정치적 극단화, 전쟁과 혐오, 그리고 세대 갈등까지. 수천 년을 돌아도 우리는 같은 문제를 비슷한 방식으로 겪고 있다.

도대체 왜 그런가? 기술과 환경은 급변하고 있는데 왜 인간 사회는 '역사 반복'이라는 말을 되풀이하게 되는 걸까? 이는 단순한 우연이나 피상적 유사성의 문제가 아니다. 반복되는 역사 속에는 인간의 본성과 사회 구조, 권력과 시스템의 고질적 패턴이 깊숙이 박혀 있다. 우리는 이 글에서 그 원인을 구조적으로 파헤치고 반복을 피할 수 있는 실마리가 무엇인지 모색해보려 한다.


첫째, 인간은 본질적으로 감정의 동물이다. 공포, 탐욕, 분노, 기대 등은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17세기 튤립 버블이나 2008년 금융 위기 모두 "남들도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심리가 핵심이었다. 지금의 가상화폐 투자 열풍도 다르지 않다. 인간은 합리적인 선택보다 주변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과거의 실패를 이성적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뇌는 변화보다 반복에 익숙한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권력은 늘 스스로를 유지하려는 속성이 있다. 어떤 형태의 권력이든 그것을 둘러싼 제도와 계급은 자신에게 유리한 질서를 반복적으로 재생산한다. 로마 제국이든 조선 왕조든 현대의 기업 권력이나 행정 관료제든 마찬가지다. 새로운 권력이 등장해도 그 내부 구조는 종종 기존 체제를 모방하거나 재활용한다. 혁명 이후에 등장한 정권이 구체제보다 더 폐쇄적이 되는 역설은 바로 이 복제 메커니즘 때문이다.


셋째, 세대가 바뀌면서 과거의 실수와 교훈은 종종 왜곡되거나 잊힌다. 교육 시스템은 반복적으로 '국가 정체성'이나 '이념' 중심의 서사를 강화하는 경향이 있고, 비판적 역사 교육은 주변화된다. 따라서 중요한 실패의 경험은 실체보다 이미지로 소비되고 역사적 경고는 박물관 속 전시물처럼 간접화된다. 사람들은 다시금 비슷한 선택을 하게 된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도록 배운다.


넷째, 기술은 빠르게 진보하지만 그것을 담아낼 제도와 규범은 느리게 변화한다. 예컨대 SNS와 인공지능은 이미 우리의 정치, 경제, 문화 전반을 바꿔놓았지만 선거제도, 노동법, 정보윤리 기준은 여전히 전통적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다. 이 격차는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고 기존 질서의 충돌과 갈등을 반복하게 만든다. 제도가 기술을 따라가지 못할 때 역사는 퇴행적 경로를 따라간다.


다섯째, 역사에서 가장 자주 반복되는 테마는 '불평등'이다. 빈부 격차, 교육 기회의 차이, 젠더와 인종의 위계, 지역 간 격차 등은 기술이 아무리 진보해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기술은 기존 불평등을 새로운 방식으로 심화시킨다. 예컨대 디지털 격차는 교육 격차로 이어지고 자동화는 저소득 노동자의 일자리를 먼저 위협한다. 이처럼 불평등 구조가 반복되면 그에 따른 저항과 충돌 역시 주기적으로 되풀이된다.


역사는 우연하게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그 반복을 인식하고 멈출 책임이 있는 주체들이 그 역할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반복은 구조화되는 것이다. 그 주체는 누구일까?


정책 결정자와 제도 설계자는 기술 변화에 맞는 제도를 설계하고 사회적 불균형을 시정할 권한을 가진 이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종종 기존 권력구조를 유지하는 데 급급하다. 학자, 언론인, 작가, 교사 등 지식 생산자와 사회 비판자 역시 반복되는 패턴을 드러내고 경고해야 할 책임이 있다. 하지만 때로는 무관심하거나 기득권에 포섭되어 침묵한다. 그리고 시민과 대중 역시 구조를 묵인하거나 외면함으로써 반복에 일정 부분 동조한다. 이 모두가 동시에 작동하지 않을 때 반복은 예외가 아니라 일상이 된다. 특히 깨어 있지 않은 권력 즉, 권력자가 문제를 인식하지 않거나 알면서도 외면하는 순간 역사는 거의 기계적으로 되풀이된다. 그것이 전쟁이든 경제 위기든, 독재든 분열이든 반복은 깨어 있지 않은 권력 아래에서 강화된다.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고 그 안에 반복되기 쉬운 '패턴'이 있다. 인간의 심리, 권력의 자기 재생산, 느린 제도 변화, 교육의 왜곡, 불평등의 고착화는 그 중심에 있다. 우리가 기술의 발전에만 집중하고 인간과 사회 구조에 대한 통찰을 놓칠 때 역사는 반복이라는 방식으로 우리를 되돌린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단순히 과거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구조를 인식하고 깨뜨릴 수 있는 능력이다. 이 능력은 권력자만의 책임이 아니다. 하지만 반복을 멈추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권력자가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 있는 권력이 구조를 바꾸고 깨어 있는 시민이 그것을 감시할 때 비로소 우리는 진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기술이 바뀌었는가? 그렇다. 그럼에도 우리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면 진짜 안 바뀐 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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