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벌어지는 거리, 더 좁아지는 기회
한국 사회는 지금 ‘더 나아지는 사람’과 ‘더 어려워지는 사람’이 공존하는 시대다. 통계는 말한다. 상위 10%는 자산과 소득, 교육, 건강, 안정된 일자리까지 모든 지표에서 더 멀리 나아간다. 반면 하위 40%는 제자리이거나 후퇴 중이다. 양극화라는 말은 익숙하지만, 이 단어가 지시하는 현실은 점점 더 날카롭고 체감 가능해지고 있다. 질문은 분명하다. 한국 사회의 양극화는 더 심화될 것인가? 그렇다면, 왜 양극화는 심화되는가? 그리고 그것은 우리 일상에 어떤 방식으로 스며들 것인가?
양극화는 단순한 소득 격차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경제 구조, 자산 축적 방식, 교육 기회, 노동시장 분절, 디지털 접근성까지 포함하는 다층적 현상이다. 특히 한국에서 양극화가 유난히 심화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자산 중심 경제 구조 때문이다. 한국은 GDP 대비 자산 비중이 높고, 가계자산 중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율이 70%를 넘는다. 이 구조에서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 자산 보유 여부가 곧 계층 구분선이 된다. 일해서 버는 소득보다 자산이 불어나면서 격차는 자연스럽게 확대된다.
둘째, 상속과 증여의 조기화·일상화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가족 자산 이전’이 이루어지는 나라 중 하나다. 이는 자산 형성의 기회가 개인 노력보다는 ‘출발점’에 따라 결정된다는 인식을 강화시키며, 계층 고착을 촉진한다.
셋째,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및 복지 차이가 심각하게 벌어져 있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단지 소득이 아니라 사회 안전망 접근성까지 갈라놓는다. 누군가는 연금과 보험, 퇴직금이 보장되고 누군가는 아무것도 받지 못한다.
넷째, 교육 경쟁과 사교육 격차다. 부모의 경제력이 교육 기회의 질을 좌우하면서, 상위 계층은 더 좋은 교육 환경에서 자녀를 키우고, 하위 계층은 교육이 계층 이동 수단이 아니라 비용의 덫이 되는 상황에 직면한다.
이러한 요인들은 서로 연결되며 양극화를 가속화시킨다. 경제, 노동, 교육, 자산의 각 경로에서 한 번 벌어진 격차는 복구되지 않고 다음 세대로 전가된다. 이 때문에 한국의 양극화는 ‘세대 단위’로 이어지는 구조적 불균형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양극화는 정치 이념에 따라 자동적으로 해결되거나 심화되지 않는다. 진보 정권은 분배 강화와 사회안전망 확대를, 보수 정권은 성장과 시장 효율성을 강조하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어느 쪽이든 양극화를 실질적으로 줄이지 못한 사례가 많다. 진보 정권하에서는 표면적으로 복지 의지가 있었지만 정책 집행력과 부동산 시장의 통제가 부족했고, 보수 정권하에서는 자산 보유층에 유리한 구조를 강화하면서 격차가 확대됐다.
즉, 정권의 이념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정책을 실행했는가’이며, 그 정책이 불균형을 실질적으로 완화하려는 감수성과 행정 능력을 갖추었는지 여부다. 정권이 좌파든 우파든 상관없이, ‘주거 정책 실패’, ‘노동의 유연화’, ‘자산 편중’이 방치된다면 양극화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양극화는 이렇게 눈에 보이는 숫자뿐 아니라, 일상 속 감정과 경험에도 깊이 스며든다. 예컨대 “내려갈 계단은 있지만 올라갈 사다리는 없다”는 인식은 사회적 무기력감을 확산시킨다. 경쟁이 일상화된 교육, 비용이 올라가는 주거, 소득보다 빠르게 상승하는 물가와 자산 가격은 중산층조차도 ‘하강의 공포’를 느끼게 만든다. 자산을 가진 자는 더 큰 위험을 감수할 수 있고, 가질 수 없는 자는 안정만을 좇다 더 많은 기회를 놓친다. 이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격차를 더욱 벌린다.
양극화는 개인의 노력이나 습관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시스템이 만들어낸 결과다. 교육, 고용, 세제, 복지, 주거, 기술 인프라까지 국가적 정책 설계 전반이 어떤 계층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는지를 반영한다. 지금의 방향이 유지된다면 양극화는 자연스럽게 ‘격차의 일상화’로 이어질 것이고, 계층 간 이동은 예외적 사건으로 전락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중요한 갈림길에 있다. 양극화를 단지 통계가 아닌, 우리 삶의 ‘환경’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불균형을 줄이기 위한 제도적 감수성과 새로운 사회적 상상력을 발휘할 것인가. 양극화는 미래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우리의 주소, 직장, 대화, 소비, 불안, 기대에까지 침투해 있다.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직면하는 일, 그게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