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갈등이 점점 더 첨예해지고 있다. 정치적 양극화, 세대 갈등, 젠더 갈등, 지역 간 불균형, 노사 갈등, 교육 문제까지—어느 하나 조용한 곳이 없다. 각 갈등은 그 자체로도 중대하지만, 이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사회 전반에 피로감과 냉소를 퍼뜨리고 있다. 단지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구조적 원인을 따져야 할 시점이다. 갈등의 양상이 이렇게까지 만연하게 된 데에는 단순한 가치관 차이를 넘는, 보다 깊고 복합적인 구조적 요인이 자리하고 있다.
첫째, 경제 구조의 변화가 갈등을 증폭시켰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는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효율성과 경쟁을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양극화가 고착화되었고, 노동 시장은 분절되었다. 안정된 일자리는 줄어들고, 불안정한 일자리는 늘어났다. 이는 노동자 내부의 연대보다는 생존 경쟁을 부추겼고, 세대 간 일자리 경쟁, 노동자-기업 간 갈등의 뿌리가 되었다.
둘째, 자산 격차와 불평등이 갈등의 불씨를 키웠다. 자산을 보유한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 간의 간극은 갈수록 벌어졌다. 특히 부동산 시장의 급등은 세대 갈등을 심화시켰다. '영끌'과 '빚투'는 단순한 투자 전략이 아니라, 계층 상승의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부동산은 단지 재산의 문제를 넘어서 생존과 신분의 문제로 전환되었고, 여기서 발생하는 좌절감과 분노는 정치적 성향으로 전이되었다.
셋째, 정치적 대표성의 위기 또한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기존 정당들은 다양한 이해관계를 대변하기보다는 고정된 지지층 결집에 몰두하고 있다. 이념적 대립은 점점 더 감정적 양상으로 치닫고, 정치적 담론은 문제 해결보다 진영 간 싸움에 집중된다. 결과적으로 시민들은 정치가 갈등을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갈등을 이용해 세를 확장한다고 느끼게 된다.
넷째, 미디어 환경과 알고리즘 기반 정보 소비 구조도 큰 역할을 한다. 유튜브, SNS를 통한 정보 소비는 이용자가 선호하는 정보만을 반복적으로 제공하며, 사회적 맥락을 축소시키고 이분법적 사고를 강화한다. 다양한 관점을 접하기보다는, 자신의 관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보가 재편되면서 사회 전체의 인식 격차가 커진다. 이는 갈등의 조정 가능성을 더욱 낮춘다.
다섯째, 한국 사회의 근대화 과정이 급속하게 진행되며 '연대의 문화'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것도 중요하다. 압축 성장기의 성공은 개인의 노력과 경쟁을 미덕으로 삼게 했고, 그 과정에서 공동체적 가치는 종종 희생되었다. 민주주의는 형식적으로 자리잡았지만, 갈등을 조정하는 문화적·제도적 장치는 아직 취약하다. 이는 갈등이 발생했을 때 대화나 조정보다는 대립과 고소, 온라인 공격 등으로 이어지게 만든다.
지금 한국 사회에 만연한 갈등은 단순히 의견 차이나 감정 문제로 환원할 수 없다. 그것은 구조적 변화 속에서 누적된 긴장과 분배의 불균형, 그리고 제도의 미비가 복합적으로 얽힌 결과다. 따라서 이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이해관계자 간의 소통과 타협만으로는 부족하다. 근본적으로는 제도와 구조, 문화의 재설계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책임과 역할은 국가와 정치권에 있다. 이들은 노동 시장의 이중구조 해소, 자산 불평등에 대한 조세·재정 정책, 교육과 복지의 개혁, 사회적 대화와 타협의 제도화를 실질적으로 설계하고 시행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다. 그러나 현재 정치권은 오히려 갈등을 도구로 활용해 진영 결집에 몰두하고 있다는 점에서, 갈등을 해결할 역량과 의지를 스스로 약화시키고 있다.
또한 언론과 플랫폼 기업 역시 중요한 책임을 가진다. 이들은 사회적 분열을 조장하는 정보 알고리즘을 넘어, 다양한 관점과 맥락을 담은 정보 구조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특히 공영 언론과 대형 플랫폼은 사회 전체의 인식 지형을 바꾸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마지막으로 시민사회와 개인도 소극적 존재가 아니다. 제도는 위에서 바꾸되, 문화는 아래에서 형성된다. 연대와 공존의 문화를 만드는 일상적 실천—타인에 대한 이해, 공공의 문제에 대한 관심, 다양한 시각의 수용—이 사회 전반의 긴장을 낮출 수 있다. 교육과 공동체 경험은 이러한 문화를 토대로 강화돼야 한다.
결론적으로, 국가는 구조를 설계하고, 플랫폼과 언론은 인식을 형성하며, 시민은 문화를 만들어간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깊이 변화해야 할 주체는 정치다. 정치는 더 이상 갈등을 동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갈등을 조정하고 새로운 합의를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작동해야 한다. 그것이 지금 한국 사회가 직면한 갈등을 넘어서기 위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