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다녀 본 사람이라면 많은 분들이 공감할 것이다. 공항에서부터 기차역, 경찰서, 심지어 관공서와 병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만화 캐릭터들이 수없이 등장한다. 아이들뿐 아니라 성인용 제품, 기업 광고, 교통 캠페인에도 만화풍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쓰이고, 심지어 예쁘다. 어떤 도시에는 지역 특색을 담은 '유루캬라(ゆるキャラ)'가 지역의 상징으로 기능하고, 경찰은 귀여운 동물 캐릭터와 함께 범죄 예방 캠페인을 벌인다. 이런 현상은 다른 나라, 특히 한국이나 서구권에선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왜 일본은 이렇게 만화 캐릭터가 생활 곳곳에서 성행하게 되었고, 그것이 무리 없이 받아들여질까? 이 현상은 단순한 취향 차원이 아니라 훨씬 깊은 문화적, 사회적, 법적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첫째, 일본 사회는 오래전부터 '2차원 문화'를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여왔다. 일본에서 애니메이션과 만화는 단지 어린이의 오락물이 아니라, 성인도 즐기고, 다양한 장르로 확장된 하나의 거대한 문화 영역이다. 오랫동안 '오타쿠'라는 용어가 부정적 뉘앙스를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이후 사회가 이를 포용하면서 '서브컬처'가 점점 주류로 흡수됐다. 애니메이션은 이제 일본의 중요한 문화 수출품이자, 내수 소비를 지탱하는 산업이기도 해서 국가 차원에서도 이 문화 영역을 '쿨재팬(Cool Japan)' 전략의 일환으로 세계에 홍보하고 있다.
둘째, 일본 특유의 비정면적 의사소통 문화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일본 사회는 전통적으로 감정 표현이나 직접적인 지시를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문화에서는 귀엽고 부드러운 이미지가 전달 매개로서 훨씬 유용하다. 예컨대, 단속이나 금지 사항을 전달할 때 귀여운 캐릭터가 등장하면 시민들은 강압적으로 느끼지 않고 수용하게 된다. 이는 권위의 상징에 감성을 부여함으로써 심리적 거리감을 줄이는 효과를 낸다.
셋째, 지역성과 상징성의 결합이다. 일본은 전국 각지에 자신들만의 지역 캐릭터를 만들고 이를 관광, 지역경제, 상품 홍보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들은 단지 귀엽기만 한 게 아니라, 지역의 역사, 산업, 전설을 반영한다. 시민들은 이를 통해 지역 정체성을 다시 발견하고, 외부 방문객들은 캐릭터를 통해 지역에 친밀감을 느낀다. 이런 캐릭터는 공공성과 상업성이 교묘하게 뒤섞인 독특한 매개체로 작동한다.
넷째, 산업적 측면도 중요하다. 일본의 콘텐츠 산업은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캐릭터 굿즈를 중심으로 강력한 연계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인기 캐릭터 하나가 나오면, 만화책에서 애니메이션, 영화, 게임, 상품화, 관광지 연계까지 이어지는 다층적 확장이 가능하다. 이는 단순히 창작자의 예술 활동이 아니라, 대규모 상업 시스템으로 기능한다. 따라서 캐릭터는 일본 경제의 일부분이기도 하며, 국가는 이를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제도적으로 보호해왔다.
다섯째, 일본 사회의 '비일상과 일상의 경계 허용성'도 한몫한다. 많은 사회에서는 현실과 판타지를 구분하고 성인은 만화나 캐릭터를 일탈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일본은 어른도 아이처럼 좋아할 수 있고, 캐릭터도 공공영역에 당당히 존재할 수 있다는 '정서적 관용'이 강하다. 이는 엄격한 현실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감정의 탈출구가 되며, 캐릭터는 그 틈을 자연스럽게 메우는 도구로 기능한다.
여섯째, 일본과 한국의 문화적·법적 차이도 이 현상을 설명하는 데 중요하다. 일본에서는 성인의 캐릭터 소비가 자연스럽고 사회적으로 용인되며, 경찰서나 관공서조차 이를 공식적으로 활용한다. 반면 한국에서는 여전히 성인은 캐릭터와 거리를 둬야 한다는 암묵적인 유교적 문화가 존재하고, 공공기관에서의 캐릭터 사용도 제한적이다.
법적으로도 차이가 크다. 일본은 캐릭터 자체를 독립적인 상표권으로 보호하고, 지자체 단위에서 캐릭터 예산을 배정하며, 산업진흥정책으로 통합 관리한다. 반면 한국은 저작권 중심 보호에서 이제 막 캐릭터 IP 산업을 법제화하고 있으며, 여전히 콘텐츠 활용은 민간 마케팅의 부속물로 취급되는 경향이 강하다.
요약하자면, 일본 곳곳에서 캐릭터가 자유롭고 성행하는 이유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문화적 전통, 사회적 의사소통 방식, 지역경제 전략, 산업적 연결성, 감정의 완충장치로서의 기능, 그리고 법과 제도의 뒷받침까지 복합적 요소가 결합된 결과다. 그리고 그것은 일본 사회가 오랫동안 쌓아온 하나의 문화 시스템이기도 하다. 단지 귀엽고 즐거워 보여도 그 속에 생각보다 훨씬 깊고 치밀한 의도와 시스템이 숨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