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딩story] '비싼'시계는 왜 비쌀까?

시계, 시간을 넘어선 상징

by 매드본
8bb6be60f543196b191002_wn_128_02.jpg 브레게, 뚜르비옹 (약 7,000 만원)

시계가 '시간'을 알려주는 도구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이 ‘시간’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허락되되었던 것이 아니었다. 종교, 군대, 철도 등 정밀한 '시간 통제'가 필요한 곳에서부터 시계는 권력의 한 도구가 되어갔고, 정확한 시간을 안다는 것이 곧 질서와 통제의 권리를 가진다는 뜻이 되었다. 즉, 시간이란 사회적 통제 도구였다. 그래서 당시 시계를 소유한 자는 시간을 안다는 사실을 떠나서, 남들보다 효율적으로 일을 하거나 다르게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으로 인식되면서 시계는 부, 예술, 정체성을 담아내는 하나의 그릇으로 발전했다.


기계식 시계가 처음 등장한 15~16세기 유럽에서는, 시계 자체가 곧 첨단 기술의 집합체였다. 그러다보니 개인용 휴대 시계(포켓워치)는 왕족, 귀족, 고위 성직자와 같은 특권층만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었고 금이나 은, 보석이 함께 세공되어 사치품이 되었다. 17~18세기에는 스위스, 영국, 프랑스의 장인들이 만든 시계가 유럽 전역에서 고급 기술의 상징이 되었고, 하나의 예술품으로 취급된다.


그러던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표준화된 시계 부품과 조립 라인이 도입되며 중산층도 접근 가능한 시계들이 등장했으나, 고급 수제 시계는 여전히 소수 상류층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당시 파텍 필립이나 브레게 같은 브랜드는 왕실 전용 시계를 제작하며 '비싼 시계'는 더 비싸졌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 작은 하나의 고급 시계에 그렇게 큰돈을 지불하는가? 그 배경에는 치밀한 설계, 정교한 제작, 브랜드의 역사, 소비자의 심리, 그리고 사회적 맥락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시계를 비싸게 만드는 요소들


1. 기술과 장인정신

고급 시계는 보통 수백 개의 미세한 부품으로 구성된다. 이 부품들에는 휠 트레인(wheel train), 이스케이프먼트(escapement), 밸런스 휠(balance wheel), 메인스프링(mainspring), 브리지(bridge), 루비 베어링(ruby bearing) 등이 포함되며, 그 크기는 머리카락보다도 가늘다. 이 모든 부품이 완벽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0.01mm 이하의 오차 범위 내에서 정밀 가공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이스케이프먼트는 동력을 일정한 속도로 밸런스 휠에 전달하여 정확한 시간 측정을 가능하게 해주는 핵심 장치다. 이를 제작하려면 초정밀 CNC 기계가 필요하며, 가공된 부품은 마스터 워치메이커의 손에 의해 조립된다. 밸런스 휠과 스프링은 열팽창을 최소화하기 위해 베릴륨-니켈 합금이나 실리콘 소재로 제작되기도 한다. 실리콘은 마찰이 적고 자기장의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최신 고급 시계에서 선호된다.

또한, 투명한 사파이어 백케이스를 통해 드러나는 기어의 움직임은 단순한 기계적 작동을 넘어선 '움직이는 조각'의 역할을 한다. 이 부품들에 정밀한 앙그라주(anglage, 모서리 폴리싱), 페를라주(perlage, 회오리 문양), 코트 드 제네브(Côtes de Genève, 제네바 스트라이프) 등의 장식이 수작업으로 가해진다. 이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각 시계 브랜드가 자신들의 전통과 철학을 새기는 과정이기도 하다.


2. 희소성과 생산 방식

리미티드 에디션이나 수공 제작은 제품의 희소성을 높인다. 리차드 밀처럼 연간 생산량이 제한된 브랜드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어 중고가가 오히려 신품보다 비싼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또한 파텍 필립의 경우, 한 모델을 제작하는 데 몇 개월에서 수년이 걸릴 수 있다. 이처럼 대량 생산이 불가능한 체계는, 수요 대비 공급을 줄이며 가격을 상승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3. 브랜드의 역사와 상징성

고급 시계 브랜드는 수십 년, 혹은 수백 년의 역사를 바탕으로 자신들만의 철학과 전통을 구축해왔고 그것에 투자해왔다. 롤렉스는 탐험과 스포츠 정신의 상징으로, 파텍 필립은 가문 대대로 물려주는 유산의 이미지로 소비된다. 이때 시계는 시간 측정기가 아닌, ‘가치를 전승하는 매개체’로 기능한다. 소비자는 단순히 시계를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브랜드가 상징하는 가치와 스토리를 함께 구입하는 셈이다.


4. 소비자 심리와 사회적 인증

비싼 시계는 착용자의 취향, 경제력, 그리고 사회적 위치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작동한다. 특히 브랜드가 지닌 상징성과 가격이 결합될 때, 시계는 타인과의 구별을 위한 기호로 기능한다. 이는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구별짓기’의 메커니즘과 맞닿아 있다. 상류층일수록 보이는 소비보다 아는 소비, 즉 인식된 가치에 민감하며, 이러한 심리 메커니즘은 시계의 가격을 더욱 견고하게 만든다.


5. 중고 시장과 자산 가치

시계는 종종 자산의 형태로 거래된다. 특정 모델은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가치가 상승하기도 한다. 이는 시계를 소비재가 아닌 투자재로 인식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다. 특히 한정판 모델이나 역사적 가치가 부여된 시계는 미술품처럼 경매 시장에서 수억 원에 낙찰되기도 한다. 이러한 시장 구조는 가격의 지속적 상승을 정당화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시계는 단순히 시간이라는 기능을 넘어서 인간의 욕망과 가치 판단이 투영된 결과물이다. 그것은 기술과 예술, 전통과 혁신, 상징과 자산이라는 다층적 의미가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한다. 우리가 시계에 값을 매기는 것이 아니라, 시계를 통해 우리 자신에게 어떤 가치를 부여하는가가 더 핵심적이다. 그래서 비싼 시계는 비싼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 ‘값진’ 시계로 해석해도 무방하다고 본다.

madbone.png


keyword
작가의 이전글[미래특파원] 2045년의 세계 금융 지도를 예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