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볼 5(당시 유행하던 미국 야구게임) 사러 용산다녀올께요!" 90년대 중반, 서울 용산역 인근은 전자제품의 성지였다. PC 부품, 가전, 게임기, AV 기기부터 케이블 하나까지 구할 수 없는 게 없던 곳, 그 중심에 전자랜드가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발 디딜 틈 없는 매장을 누비며 가격을 흥정하고, 신제품 정보를 실시간으로 교환하던 모습은 하나의 시대 풍경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그 북적이던 통로는 썰렁하고, 입점했던 가게들은 철수했으며 브랜드 간판은 몇십년이 흘러 퇴색해 있다. 이 거대한 집합체는 왜 생겨났고, 왜 지금 같은 모습이 되었을까?
이 글은 전자랜드의 탄생과 쇠퇴를 단순한 흥망성쇠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당시 한국 사회의 기술 소비 방식과 유통 환경, 그리고 변화하는 시장 질서 안에서 어떤 위치를 가졌고,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복원하는 데 목적이 있다. 동시에, 전자랜드의 몰락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지도 짚어본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는 한국이 산업국가에서 정보국가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다. 가정마다 컬러TV가 보급되고, VTR과 오디오가 퍼지면서 '전자제품'은 더 이상 사치품이 아니라 누구나 필요로 하는 일상 도구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 전자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 유통 채널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백화점은 고급 브랜드를 중심으로 높은 가격대를 형성했고 동네 전파사는 품목이 제한되고 전문성도 부족했다.
이때 등장한 것이 용산의 전자상가들이다. 그중 전자랜드는 1990년 문을 열며 최대 규모, 최대 품목, 최대 경쟁력을 내세운 복합 전자유통 공간으로 주목받았다. 한 건물 안에 수백 개의 독립 매장이 입점해, 동일한 상품을 놓고 각기 다른 조건으로 경쟁했다. 당시엔 가전제품을 사기 위해 버스를 타고 서울 외곽에서 전자랜드까지 찾아오는 일이 흔했다. 사람들은 현금을 들고 와서 계산기 두드리며 흥정을 벌였고, 신제품 출시일이면 매장 앞에 줄이 늘어섰다.
전자랜드는 단순히 크기만이 아니라, 소비자에게 '선택의 자유'를 제공했다. 삼성 TV와 LG TV를 나란히 비교하고, 소니 워크맨과 파나소닉 CD플레이어를 직접 들어보고, 컴퓨터 부품을 하나씩 조합해 조립 PC를 꾸리는 경험은 그 자체로 정보 소비의 혁신이었다.
전자랜드는 시장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그것은 생태계였다. 판매자, 수입상, 조립기사, 중고 거래업자, 자가 수리족, 얼리어답터가 뒤섞여 정보가 흐르고 기술이 순환되는 유기체였다. 컴퓨터를 맞추러 온 대학생은 인근의 B동에서 CPU를 사고, C동에서 메인보드를 흥정하고, 마지막으로 지하층에서 조립을 맡긴다. 중간에 만난 사장은 어디서 메모리를 싸게 판다는 귀띔도 해준다. 이 일련의 과정은 단순히 '쇼핑'이 아니라 하나의 참여형 활동이었다.
당시엔 유튜브도 가격 비교 앱도 없었다. 사는 사람이 똑똑해야 했고, 자기가 아는 만큼 싸게 사고, 잘못 알면 속기도 했다. 그래서 전자랜드는 기술을 잘 아는 사람이 실질적인 이익을 보는 현장이었다. 여기에 복수 매장 간의 가격 경쟁이 붙으면서, 소비자는 정보력만 있다면 언제든 최저가를 찾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흥정'의 문화였다. 가격표는 시작점일 뿐이었다. 상인은 "현금이시면 더 빼드릴게요"라고 했고, 손님은 "옆 매장은 더 싸던데요"라며 맞받았다. 물건을 사는 일이, 사람을 만나는 일이자, 감각을 시험하는 일이었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시장은 급변한다. 가격 비교 사이트가 등장하고, G마켓, 옥션 같은 오픈마켓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소비자는 집에서도 얼마든지 '최저가'를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굳이 용산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제조사들도 변화했다. 삼성과 LG는 직영 매장과 온라인 스토어를 강화하고, 가격을 일관되게 유지하기 시작했다. 소니, 캐논, 애플 같은 글로벌 브랜드는 아예 정찰제를 고집하며 흥정 자체를 배제했다. 소비자에게는 싸게 사는 재미보다 믿고 사는 안정감이 중요해졌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인터넷 커뮤니티'가 정보를 흡수했다. 디씨인사이드, 클리앙, 쿨엔조이 같은 온라인 게시판들이 전자제품 구매 후기를 공유하고, 조립 노하우를 나눴다. 전자랜드가 독점하던 '현장 정보력'은 인터넷으로 흘러갔다.
전자랜드는 이 변화에 제때 대응하지 못했다. 외형은 유지됐지만, 내실은 흔들렸다. 높은 임대료에 시달리는 매장들은 가격을 더 깎아야 했고, 그만큼 이윤이 줄었다. 경쟁은 격화됐고, 서비스 품질은 떨어졌다. 소비자는 불만을 품고 떠났다.
무엇보다 온라인 전환이 실패했다. 자체 플랫폼을 운영하기보단, 개별 상인들이 각자 오픈마켓에 입점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브랜드 차원의 통합 전략도 없었고, 고객 데이터 분석, 검색 최적화, 배송 인프라 구축 같은 현대적 전자상거래 운영 방식에도 뒤처졌다.
코로나19는 마지막 타격이었다. 2020년 이후 방문객이 급감하고, 언택트 소비가 기본이 되면서 오프라인 매장의 경쟁력은 더욱 낮아졌다. 빈 점포가 늘어나고, 건물 전체의 활력도 함께 사라졌다
지금의 전자랜드는 과거의 명성을 잃었지만, 완전히 잊혀진 것은 아니다. 유튜브에는 '전자랜드에서 산 전설의 조립PC' 영상이 올라오고, 커뮤니티에는 "한때 용산 갔다가 메모리 두 배로 끼워줬던 사장님" 이야기가 공유된다. 그곳은 단지 물건을 사는 장소가 아니라, 사람과 기술, 정보와 경험이 얽히던 복합적인 기억의 장소였다.
또 전자랜드는 소비문화의 한 유형을 대표했다. 싸게 사기 위해 발품을 팔고, 사람을 만나고, 직접 만져보고 비교하며 스스로를 단련하던 시절. 그것은 더 싸게 사기 위한 행동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소비의 의미를 자기 방식으로 재구성하던 하나의 문화이기도 했다.
그러나 시장이 바뀌고, 기술이 바뀌고, 소비의 방식이 바뀌었을 때 이 공간은 적응에 실패했다. 나는 감히 용산 전자랜드가 망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안에는 한 시절의 삶의 방식과 거래의 언어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잔해 위에서 지금의 전자 소비를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