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서해에 커다란 공항을?
대한민국의 관문, 인천국제공항은 오늘날 세계에서 손꼽히는 공항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 거대한 공항이 처음부터 당연하게 인천 앞바다에 자리 잡은 것은 아니었다. 서울과 가까운 김포공항이 있었고, 강원도나 충청도, 더 나아가 부산이나 동해안 지역까지 다양한 후보지가 논의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전문가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서해의 갯벌을 메워 공항을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과연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인천공항이 서해 갯벌 위에 세워진 배경을 다각적으로 보고 부산이나 동해안 지역이 왜 선택지에서 밀려났는지도 함께 살펴본다.
1990년대 초, 김포공항은 이미 포화 상태였다. 1958년 국제선 취항 이후 김포공항은 아시아 허브로 빠르게 성장했지만, 주변은 이미 주거지와 상업지구로 빼곡했다. 활주로를 늘릴 공간이 없었고, 소음 피해는 심각했다. 공항은 확장을 요구했지만 도시는 공항을 더 이상 수용할 수 없었다.
특히 국제선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김포공항의 협소한 시설은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당시 정부는 새로운 국제공항 건설 없이는 동북아 허브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가졌다.
새 공항을 어디에 지을 것인가는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충청남도 당진과 태안, 강원도 원주, 강릉, 속초, 그리고 부산 가덕도 등도 후보지로 거론됐다.
충청권은 국토 균형 발전 차원에서 매력적이었으나 서울과의 접근성이 떨어졌다. 강원도와 동해안 지역은 비교적 넓은 부지를 확보할 수 있었지만 교통망이 부족했고 외국인 입국자의 대다수가 도착하는 서울·수도권과의 거리가 지나치게 멀었다. 동해안에 공항을 건설할 경우, 인천에서 서울까지 1시간이면 닿는 거리 대신, 3~4시간 이상 이동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외국인 투자자와 비즈니스 여행객에게는 치명적인 불리함이었다.
부산 역시 강력한 후보 중 하나였다. 이미 김해공항이 있었고 가덕도 일대는 넓은 바다 매립을 통해 대규모 공항을 지을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부산은 동북아 허브 경쟁에서 불리했다. 동북아 국제선 수요의 핵심은 서울·수도권에 집중돼 있었기 때문이다. 외국 항공사와 여객이 주로 목적지로 삼는 곳이 수도권인 상황에서, 부산은 지역적 균형 발전에는 의미가 있지만 국가적 허브 전략에는 맞지 않았다.
서해 갯벌은 당시만 해도 버려진 땅에 가까웠다. 어업 외에는 활용도가 낮았고, 방대한 간척 경험을 가진 한국에게 갯벌 매립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넓은 평지, 도시와의 거리, 확장성이라는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선택지였다.
또한 항로 측면에서도 장점이 있었다. 인천 앞바다는 항공기의 진입과 이륙을 위한 공역 확보가 용이했고, 동북아 주요 도시들과 직선 항로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는 단순한 위치 선정이 아니라, 미래 항공 수요와 경쟁까지 고려한 전략적 결정이었다.
대한민국은 군사 안보 환경을 무시할 수 없다. 김포공항은 군사시설과 민간공항이 공존하는 형태였고, 이는 확장성과 안전성에 한계를 주었다. 인천 앞바다는 군사적으로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위치였다. 수도권 방어 개념상, 서해에 대규모 공항을 둠으로써 민간·군사 항공 운용을 분리하고, 비상시에는 군사적 활용도 가능하도록 설계할 수 있었다.
당시 정부가 내세운 목표는 단순히 새로운 공항이 아니라, 동북아의 허브였다. 일본의 나리타, 홍콩의 첵랍콕, 중국의 베이징과 상하이 공항과 경쟁해야 했다. 단순히 활주로 몇 개 더 짓는 것이 아니라, 21세기 항공 허브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국제선 중심의 초대형 공항이 필요했다. 인천 앞바다는 이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최적의 무대였다.
인천국제공항은 김포공항의 포화와 수도권 접근성, 국제 경쟁과 군사적 고려가 겹쳐 나온 종합적 선택이었다. 충청과 강원, 부산과 동해안 같은 후보지들도 충분히 논의되었지만, 수도권 중심의 국제선 수요와 허브 전략을 감당하기에는 불리한 점이 많았다.
결국 인천 앞바다는 서울과 가깝고 확장성 높은 미래 비전을 수용할 수 있는 드문 장소였다. 오늘날 인천공항은 개항 이후 꾸준히 확장하며 세계적 공항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그 출발은 ‘갯벌 위의 모험’이었다. 이 모험은 단순히 공항 하나를 건설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세계와 연결되는 방식을 재정립한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