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딩 vs 기술
전기라는 동일한 세계에 발을 디뎠지만, 니콜라 테슬라와 토머스 에디슨은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에디슨은 '발명왕'으로 불리며 전구, 축음기, 영화기, 직류 전력망으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반면 테슬라는 교류 전력과 전동기를 비롯해 현대 문명을 가능케 한 핵심 기술을 남겼음에도, 오랫동안 잊혀지거나 괴짜 천재 정도로만 기억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상황은 달라졌다. 테슬라의 기술은 현대 전력망의 기반이 되었고, 전기차 회사 Tesla가 그의 이름을 따오면서 오히려 에디슨보다 대중에게 더 큰 영감을 주는 존재로 부상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두 사람의 삶과 활동을 비교하면, 단순히 발명의 차이가 아니라 사회와 시장, 이미지 전략이 갈라놓은 결과임을 알 수 있다.
테슬라와 에디슨을 단순히 '천재와 상인'으로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행보가 어떻게 현대 전기 문명의 두 기둥을 세웠는지, 그리고 왜 에디슨은 당대의 승자로 남았고 테슬라는 후대에 와서야 재평가받게 되었는지를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살펴본다.
에디슨은 미국 오하이오에서 태어나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지만, 발명과 사업에 대한 감각이 탁월했다. 그는 신문을 팔며 자립했고, 전신기술을 익혀 실용적 발명을 이어갔다. 대표적으로 축음기는 대중에게 큰 충격을 주며 그를 발명왕으로 각인시켰다. 그는 발명품을 곧바로 특허로 묶어 사업화하는 능력을 지녔다.
반면 테슬라는 오늘날 크로아티아 지역에서 태어나 수학과 물리학을 깊이 공부했다. 그는 머릿속에서 기계를 완전한 형태로 구상하고, 실제 제작 전에 마치 3D 시뮬레이션처럼 회로와 모터의 작동을 가상 실험할 수 있었다. 이는 에디슨이 수천 번의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발명품을 다듬었던 방식과 극명히 대비된다.
두 사람이 정면으로 충돌한 대표적 사건은 '전류 전쟁'이다. 에디슨은 직류(DC) 전력을, 테슬라는 교류(AC) 전력을 주장했다. 직류는 송전 거리가 짧아 대도시 일부를 밝히는 데 그쳤지만, 교류는 변압이 가능해 장거리 송전에 적합했다. 테슬라는 조지 웨스팅하우스와 협력해 교류 시스템을 추진했고,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에서 교류 전등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시연하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어서 나이아가라 폭포 수력발전소를 교류 시스템으로 완성해, 뉴욕까지 전력을 공급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현대 전력망의 출발점이었다.
그러나 이 승리가 곧 테슬라 개인의 부로 이어지진 않았다. 에디슨은 이미 거대한 전기회사를 세우고 언론·정치권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반면 테슬라는 상업적 이익을 소홀히 했고, 특허권을 싼값에 넘기거나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술적으로는 테슬라가 앞섰지만, 사회적 영향력에서는 에디슨이 승자였다.
에디슨은 자신을 단순한 발명가로 두지 않았다. 그는 뉴저지 멘로파크 연구소를 기업처럼 운영하며 체계적으로 발명과 특허를 관리했다. 발명 그 자체보다 발명을 통해 시장을 장악하는 데 관심이 있었다. 이 점에서 그는 '연구개발 기업가'의 원형이었다. GE(제너럴 일렉트릭)의 뿌리가 에디슨의 회사라는 점은 이를 잘 보여준다.
반면 테슬라는 이상주의자였다. 그는 무선 송전, 지구 전체를 하나의 에너지망으로 연결하는 비전 같은 아이디어에 몰두했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수익 모델이 불분명한 아이디어에 불안해했고, 자금난은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결국 그는 말년에는 호텔방에 머물며 비둘기를 돌보는 괴짜로 묘사되었고, 빈곤 속에 세상을 떠났다.
에디슨은 대중을 사로잡는 방법을 잘 알았다. 전구 시연, 영화 상영, 심지어 교류 전력을 비난하기 위해 동물에게 전기를 흘려보내는 잔혹한 시연까지 벌였다. 역시 쇼를 좋아하는 언론은 그를 '전기의 마술사'로 띄워주기 시작했다. 그는 과학자이면서 동시에 탁월한 홍보가였기에 가능했다.
반대로 테슬라는 대중들에 비해 너무 앞서갔고 설명도 추상적이었다. 무선 통신, 에너지 무한 공급 같은 구상은 당시 사람들에게 현실보다는 공상처럼 들렸다. 언론은 그를 때로는 천재로, 때로는 괴짜로 묘사하며 신뢰를 깎았다. 투자자들이 그를 떠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아이러니 하게 오늘날 현대 사회의 전력망은 테슬라가 제안한 교류 전력 위에 세워져 있다. 가정의 전기 콘센트, 도시의 전력망, 공장에서 돌아가는 모터까지, 거의 모든 곳이 테슬라의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그는 전력 시스템뿐 아니라 무선 송신, 원격 제어 등 현대 기술의 씨앗을 뿌렸다.
20세기 후반 이후 과학사 연구와 대중문화는 테슬라를 다시 불러냈다. 할리우드 영화 속에서는 미스터리한 발명가로 등장했고, 과학 커뮤니티에서는 시대를 앞선 천재로 재발견되었다. 결정적으로, 전기차 회사 Tesla가 그의 이름을 브랜드로 채택하면서, 전 세계 대중은 다시금 그의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에디슨'이라는 이름보다 '테슬라'라는 이름이 더 혁신과 미래를 상징하는 단어가 된 셈이다.
테슬라와 에디슨은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기 문명을 개척했다. 에디슨은 발명과 사업을 결합해 당대의 승자가 되었고, 테슬라는 기술적으로는 더 앞서 있었지만 생전에는 고립되었다. 그러나 역사는 단순히 생전의 유명세로 끝나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전력망과 전동기는 테슬라의 업적 위에 세워져 있으며, 글로벌 기업 Tesla가 그의 이름을 이어받아 미래 산업의 상징이 된 것은 그 증거다.
결국 두 사람은 경쟁자이자 공존자였다. 에디슨이 없었다면 발명은 시장에 뿌리내리지 못했을 것이고, 테슬라가 없었다면 전기는 전 세계로 확산되지 못했을 것이다. 에디슨은 당대의 승자였고, 테슬라는 후대의 승자였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현대 문명의 양축을 세운 주인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