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story] 80년대 서울엔 왜 전당포가 많았을까

"전당포 공화국" 서울의 초상

by 매드본

우리가 1980년대 서울을 떠올릴 때, 청계천이나 종로 일대를 배회하던 수많은 전당포 간판을 기억할 것이다. 과거 모습을 보여주는 영상 등을 보면, 전당포 간판은 빠지지 않을 정도니까. 당시 서울은 '전당포 공화국'이라 불릴 정도로, 전당포가 도시 풍경의 일부였다. 지금의 편의점처럼 거리마다 하나씩 존재했고, 그 안에는 가방, 금반지, 카메라, 라디오, 심지어 겨울 점퍼까지 놓여 있었다. 왜 이렇게 많은 이들이 자신의 물건을 맡기고 돈을 빌려야 했을까?


사실 이는 가난한 시절의 흔적이었다. 80년대의 전당포 붐은 서울이라는 도시가 감당해야 했던 급속한 경제 성장의 뒷면, 그리고 제도적 금융의 부재 속에서 발생한 일종의 생활금융 인프라였던 셈이다. 지금 우리가 전당포를 보기 어렵게 된 데는 단지 사회가 풍요로워졌기 때문만은 아니라 제도와 문화, 기술과 금융의 작동 방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전당포의 유행, 그 사회경제적 배경

급속한 도시화와 현금 흐름의 단절

서울은 1960~80년대 사이에 세계에서도 드물게 빠른 도시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겪은 도시였다. 농촌을 떠나온 수많은 이주민들은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했고, 대기업에 다니는 일부를 제외하곤 대부분 현금 흐름이 일정하지 않았다. 예컨대, 갈비집 주방 보조로 일하던 20대 여성은 다음 주 월세가 없자 금반지를 맡기고 3만 원을 빌렸다. 봉제공장에서 일하던 중년 남성은 갑자기 끊긴 계약 탓에 중고 카메라를 전당 잡히고 공과금을 마련했다. 월급날을 기다리기도 힘들었고, 은행 대출은 서류와 담보가 부족해 접근이 어려웠다. 그 틈을 메워준 것이 바로 전당포였다.


제도권 금융의 배제와 사금융의 일상화

당시의 은행은 고신용자나 기업을 중심으로 운영되었고, 서민을 위한 소액 대출은 거의 없었다. 대부업체도 법적 틀 안에 들어오기 전이었고, 카드사나 캐피탈의 소액 대출 상품도 없었다. 지금은 스마트폰 앱 몇 번만 누르면 되는 일이 당시엔 가족이나 친구를 제외하면 가능한 유일한 대안이 전당포였던 것이다. 서류 필요 없고, 물건 하나 맡기면 즉시 현금을 받을 수 있었다. 이를테면, 장사를 하던 40대 남성은 하루 장사가 안 된 날, 시계 하나를 맡기고 재료비 5만 원을 구했다. 전당포는 말 그대로 일상의 현금 순환을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였다.


자산의 상품화: 물건이 곧 신용이었다

전당포는 현대적인 신용 평가 시스템이 없는 시대에, 개인의 신용을 물건으로 대신 계산해주는 장소였다. 비싼 시계나 라디오, 옷가지 등이 잠시 '신용'이 되어 주는 셈이었다. 당시 고등학생이 아버지의 카세트 플레이어를 몰래 들고 가 2만 원을 빌린 사례처럼, 물건은 현금화를 위한 가교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는 아직까지 당시의 금융이 추상적이지 않고, 물리적인 시대였음을 보여준다. 전당포는 물건의 가격이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내는 즉시성의 가치를 기준으로 작동했다. 즉, 80년대 서울의 전당포는 아직 추상적인 금융이 잘 알려지지 않은 시기에 자산의 상품화가 생활화된 공간이었다.


금융제도의 변화와 전당포의 쇠퇴

1990년대 이후 금융 자유화와 디지털 금융의 확산은 소액 대출의 문턱을 대폭 낮췄다. 동시에 대부업과 캐피탈, 카드론 등 다양한 금융 옵션이 제도권 내로 들어오면서 전당포는 점차 설 자리를 잃었다. 스마트폰 하나면 돈을 빌릴 수 있는 시대에 물건을 들고 가야 하는 전당포는 더 이상 경쟁력이 없어졌다. 심지어 중고 거래 앱의 확산은 물건을 팔아 현금화하는 대체 수단까지 제공했다. 이처럼 점점 전당포는 무섭고 느리고 수고로운 방식이 되어갔고, 역사 속으로 밀려났다.


80년대 서울의 전당포는 제도권 금융이 감당하지 못했던 일상의 미세한 파고를 메우는 실용적 해법이었다. 지금은 그 형태가 변했을 뿐, '전당포적 기능'은 여전히 존재한다. 핀테크 기반의 소액 대출, BNPL(Buy Now Pay Later), 중고 거래 플랫폼, 심지어 일상적인 리셀 시장까지 모두 같은 질문에 답하고 있다.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돈,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우리가 전당포의 흥망을 다시 되짚어보는 이유는, 금융의 본질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언제나 "시간과 자원을 어떻게 맞바꿀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시대는 바뀌었고, 기술은 발전했지만, 그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어떤 형태로든 전당포는 다시 우리 곁에 나타날 것이다. 이름만 달라졌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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