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story] 강남과는 다른 강북의 길, 그 이유

강북 중심지는 왜 길이 꼬불꼬불할까?

by 매드본

도시는 그 속을 관통하는 길에 따라 성격이 확연하게 달라진다. 같은 서울이라도 강남과 강북을 걷거나 운전해보면 금세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강남은 반듯하고 넓다. 차선이 여유롭고, 교차로마다 신호등이 질서정연하다. 우회전 3번만 하면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말이 들어 맞는다. 반면 강북, 특히 종로, 을지로, 창신동, 숭인동 일대를 걷다 보면 마치 외국에 온 것 같은 이질감도 든다.(필자는 강 이남에서 살았기에) 길이 너무 좁거나,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만큼 꼬불꼬불 구불구불 휘어 있다. 네비게이션도 헷갈리는 이 복잡한 동네의 길들은 도대체 왜 이렇게 생겼을까?


우리는 이 질문을 통해 공간이 시간과 어떻게 얽히는지를 살펴보게 된다. 곧게 뻗은 길이 미래의 질서를 상징한다면, 꼬불꼬불한 길은 과거의 흔적이자 기억의 지형이다. 강북은 왜 그런 길을 품고 있을까?


곧은 길은 계획이고, 구불한 길은 삶이다

계획되지 않은 도시, 쌓아 올린 삶의 패턴

강북의 중심지는 대부분 20세기 이전부터 사람이 살던 곳이다. 조선 시대 한양의 도성 안팎에는 왕실과 관료, 상공인, 노동자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터를 잡고 살았다. 문제는, 도시라는 게 어느 날 갑자기 설계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처음엔 오솔길이었고, 그 옆에 움막이 있었고,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길이 자연스럽게 다져졌다. 누군가는 작은 공방을 열었고, 누군가는 국밥집을 냈다. 길은 그렇게 ‘일상의 흐름’을 따라 구부러졌다. 누구도 도시를 조감도로 보지 않았기에, 공간은 사람의 발걸음에 따라 생겨났다.

예를 들어, 익선동 한옥마을의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은 원래 계획된 길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서민 주거지로 형성된 이곳은, 각자가 자기 터전에 따라 길을 내고 집을 지은 결과다. 지금은 카페와 공방으로 변모했지만, 그 구불구불함은 당시 주민들의 삶의 궤적 그대로다.


산과 물, 지형의 제약이 길을 구부렸다

서울 강북은 북악산, 낙산, 인왕산, 남산 같은 산들에 둘러싸여 있다. 산은 길을 가로막고, 물은 흐름을 바꾼다. 당시의 길은 도로가 아니라 사람과 가축이 다니던 이동 경로였고, 당연히 오르막은 피하고, 낮은 길로 에둘렀다. 또 계곡을 끼고 도는 길, 산비탈을 피해 뱅도는 길이 많았다. 지금도 창신동이나 숭인동 골목에 들어서면, 길이 갑자기 꺾이거나 경사가 급해지는 구간이 흔한 이유다. 이건 ‘설계의 미비’가 아니라 ‘자연에 대한 순응’이었다.

예컨대 창신동 봉제공장 밀집 지역은 낙산의 경사를 따라 골목이 형성되어 있다. 재봉틀 소리 가득한 좁은 계단길, 트럭이 오를 수 없는 비탈진 언덕길은 모두 그 지형의 흔적이다. 자연을 깎아 만든 길이 아니라, 자연을 감안해 만들어진 길이다.


분할과 상속, 골목을 조각낸 논리

한 집이 대를 이어 물려지면서, 땅은 점점 작게 나뉘었다. 상속이 반복되면 골목은 촘촘해지고, 대지는 불규칙해진다. 집 뒤에 골목이 생기고, 그 골목이 다시 길이 된다. 도시가 커질수록 이런 분할은 복잡하게 얽히며 길의 방향을 결정짓는다. 특히 주택 밀집지였던 동네는 이런 식으로 좁은 골목들이 마치 혈관처럼 얽힌다. 마치 인체의 모세혈관처럼, 주요 도로에서 갈라진 골목은 점점 더 미세해지고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뻗어나간다.

예를 들어, 숭인동의 한 블록을 보면 5평 남짓한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그 사이를 누비는 골목은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폭이다. 그 골목들은 원래 없던 길이었다가, 땅을 나누고 집을 새로 짓는 과정에서 생겨난 우연적 산물이다.


산업과 시장, 비공식 경제의 흔적

을지로와 청계천 일대는 오래도록 인쇄, 조명, 공구, 금속 등 소규모 공장이 밀집했던 구역이다. 이 지역의 길은 ‘이동’보다는 ‘접근’을 위한 길이었다. 창고를 열기 위해, 뒷문으로 짐을 들이기 위해, 트럭이 아니고 사람이 다니는 길이 필요했다. 사적 필요에 의해 만든 길이 도시의 틀이 된 셈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종로 귀금속 거리나 광장시장, 황학동 벼룩시장 골목의 길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경제 활동의 물리적 흔적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청계천 공구상가 뒷골목에는 1톤 트럭이 겨우 빠져나갈 수 있는 폭의 골목이 있다. 이 골목은 사실 상가 간 물건 이송을 위해 만들어졌고, 지금도 리어카와 카트가 오간다. 이처럼 골목은 노동의 동선이 만든 길이다.


재개발의 한계, 남겨진 도시의 단면

강남은 아예 백지 상태에서 '계획된' 도시였다. 도로부터 먼저 그어놓고 건물을 올렸다. 반면 강북은 기존의 도시를 밀어버리고 새로 짓는 일이 훨씬 더 어렵다. 역사와 공동체, 보상과 협의,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그래서 재개발이 지연되거나, 재정비가 부분적으로만 이뤄지면서, 구불구불한 길은 여전히 도심 속에 살아남았다. 다시 말해, 이 길들은 ‘계획의 실패’가 아니라 ‘기억의 보존’이라는 관점에서도 읽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종로구 창신동 일대는 수차례 재개발 논의가 있었지만, 주민 반대와 보상 문제로 지지부진했다. 그 결과, 1960~70년대식 판잣집 골목과 철제 계단, 미로 같은 골목이 여전히 남아있다. 이는 도시가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망설이는 현장이기도 하다.


길이 말해주는 도시의 시간

강북의 중심지가 꼬불꼬불한 이유는 그 길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우리의 선조때부터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곧은 길은 사람의 계획으로 그은 선이지만, 구불한 길은 삶이 켜켜이 쌓인 흔적이다. 우리는 강북의 길을 걸을 때, 단지 공간을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얹힌 시간을 밟고 있는 셈이다.


강북의 골목은 불편하지만 풍부하다. 예측하기 어렵지만 기억에 남는 이유이다. 우리가 이 길을 지우기보다, 읽고 자랑스러워 해야하는 이유는 그 길 위에는 누군가의 노동, 가족의 역사, 지역의 기억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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