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하면서도 확실하게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상황을 겪는다. 상사가 무리한 업무를 지시하거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는 부탁을 하거나, 윤리적 의문이 드는 지시를 내릴 때다. 그럴 때 우리는 고민에 빠진다. "거절해야 하나? 거절하면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현실은 냉정하다. 아무리 조직문화가 수평적이라고 해도, '상사'라는 권력 관계는 존재한다. 그렇다면 상사를 상대로 현명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아니오"를 말하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많은 이들이 착각한다. 거절은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기술이다. 말투, 타이밍, 맥락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무턱대고 "못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면 방어적이고 공격적으로 보인다. 대신 이렇게 말해보자. "이 업무를 지금 제 일정보다 우선순위로 둘 수 있는지 조율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는 거절이 아니라 협의처럼 들린다. 동시에 업무 과부하의 현실도 전달한다.
상사의 요청을 거절할 때는 반드시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 단순한 감정이나 거부감이 아닌, 논리적이고 정량화된 근거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이번 주에 이미 세 개의 마감 일정이 잡혀 있어서 새로운 업무는 품질 보장에 무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하면, 상사도 쉽게 반박하지 못한다. 거절은 감정이 아니라 데이터로 말해야 한다.
무작정 "못 한다"고 하면 조직 내 신뢰를 잃을 수 있다. 하지만 대안을 제시하면 오히려 신뢰가 올라간다. 예를 들어 "제가 이번 주는 어렵지만, OOO 대리님이 최근 비슷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경험이 있습니다. 함께 검토해보면 어떨까요?"라고 말하면, 거절하면서도 문제 해결 의지를 보인다. 이는 상사를 무안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입장을 지키는 지혜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즉시 반응하는 것이 성실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거절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잠시 멈춤이 중요하다. "잠시 검토해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는 시간을 벌 수 있는 마법의 문장이다. 이 시간 동안 요청의 실현 가능성, 자신의 일정, 조직의 분위기 등을 파악하고 전략을 짤 수 있다. 즉각적인 거절은 관계를 날카롭게 만들지만, 숙고 끝의 거절은 존중받는다.
소심한 사람에게 거절은 기술 그 자체보다는 심리적 부담으로 다가온다. 이럴수록 미리 '표현 문장'을 리허설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예: "일정을 조율해볼 수 있을지 확인해보겠습니다"나 "이건 확인이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같은 문장은 거절이라기보다 협의처럼 들려 부담이 덜하다.
직접 말하기 어렵다면 메시지나 메일을 활용하자. 글로 표현하면 감정을 가라앉히고 논리를 정리할 수 있다. 또한 상대방도 더 침착하게 받아들이기 쉽다. 예: "오늘 말씀하신 건에 대해 검토해보았는데요, 제 상황상 바로 착수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혹시 일정 조율이 가능할까요?"
처음부터 중요한 부탁을 거절하려고 하지 말고, 커피 심부름 같은 사소한 부탁부터 정중히 거절하는 연습을 해보자. 이는 '거절 내성'을 키우는 데 효과적이다. 작은 '노'가 쌓이면 큰 거절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
직장 내에서 신뢰할 수 있는 동료 한 명만 있어도 거절은 쉬워진다. 공동 대응이 가능해지고, 상황 공유를 통한 심리적 지지 역시 가능하다. 인간관계를 넓히려 애쓰기보다, 내 상황을 이해해줄 '한 사람'을 찾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상사에게 "노"라고 말하는 건 누구에게나 어렵다. 하지만 무조건 순응하는 자세는 장기적으로도, 조직 전체로도 손해다. 가장 중요한 건, 거절의 기술을 익히고 이를 관계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정중하게, 논리적으로, 그리고 전략적으로 접근하라. 상사도 결국 사람이다. 합리성과 진정성 앞에서 '권위'는 '이해'로 바뀔 수 있다. 일회성의 거절은 리스크지만, 신뢰 위의 거절은 리더십으로 보인다. 그러니 평소에 말을 아끼지 말고, 가능한 한 자주 소통하라. 리스크는 관계 속에서 줄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