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입니다 :)
새로운 플랫폼에서 인사드리는 우꾸 에디터입니다!
좁디좁은 인스타그램의 정사각형에서 벗어나니 시원하면서도,
이제 여기서 어떤 이야기로 여러분들에게 다가가야 하나 고민이 제법 많아지네요.
한 칸 지식을 가두던 틀이 넓어진 만큼 이제부터는 조금 더 사적인 이야기들을 해볼까 합니다.
그래도 이제 거기에 과학을 곁들인.
사람들은 ”연구직“에 대한 묘한 환상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실패해도 괜찮은 직업’이라는 것이죠.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라는 문구를 기치로 실패를 아무렇지 않게 여긴다거나,
나아가 실패를 겪으면 ’ 새롭게 배웠으니 오히려 좋아!‘라고 여길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아닌가?)
저만 해도 연구자의 길을 걷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실패해도 그것마저 새로운 발견? 이거 정말 힙한데?'
이 환상이 제가 연구직에 발을 내딛게 만든 원흉 중 하나였죠.
그리고 이 환상이 어느 정도 맞는 것 같았습니다. 딱 첫 1년 동안은요.
새로운 실험이란 것은, 과학적으로 될 것 같으니까 해보는 것이란 말이죠.
'이 실험이 된다면 펼쳐질 나의 미래에 대한 희망' 50%와
'이 실험이 될 수밖에 없을 거라는 나의 믿음' 50%.
이 두 가지가 제 연구의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런데 계획했던 실험이 결과가 제대로 안 나오기 시작합니다.
이게 한 두 번이면 연구직에 대한 '뽕'으로 버텨볼 만 한데,
실패가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무리 '실패마저 새로운 발견'이라고 자기 위로를 해봐도,
기대를 하고, 그 기대가 깨지는 경험은 본능적으로 아픈 경험이더라고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구란, 연애다! 근데 이제 서투름을 곁들인.
어디선가 연애 전문가라는 사람이 한 말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고백은 확인이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무작정 고백 공격부터 하지 말고
천천히 서로에 대한 호감작과 빌드업을 하다가,
서로에 대한 호감이 무르익어 나도 알고 너도 아는 바로 그 순간에!
딱 고백을 하면서 비로소 관계가 시작된다는 그런 말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니까 실험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마음에 드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바로 실험을 하는 게 아니라
선행 연구들을 살펴보면서 될 것 같은 방식으로 실험을 찬찬히 설계하고
'야 이거는 될 수밖에 없겠다' 하는 그 순간에 실험을 딱 하면!
… 대부분은 안됩디다.
기대하던 데이터가 나오지 않을 때의 기분이 어떻냐면,
음… 나 좋아해 주는 건 고마운데… 우리 그냥 좋은 친구로 지내자 ^^
딱 이 이야기를 듣는 바로 그 기분이에요.
휘몰아치는 허망감, (연구가 된다면 이루어질) 미래가 무너지는 기분.
그리고 억울함이 밀려오기 시작합니다.
'또 나만 연애(연구) 못하지… 어디가 문제였을까…'
이런 일이 반복되니까 왜 대학원생들이 그렇게 피폐해지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피폐 해지는 건 육체적으로 힘들어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대하고 고백하고 차이고.
또 기대하고 고백하고 차이고.
연구 분야마다 다르지만, 저 같은 경우 실험 설계부터 수행까지 2-3일 정도가 걸리니
이틀에 한 번 꼴로 고백 후 차이는 경험을 겪는 꼴이지요.
이거 맨 정신으로 버틸 수가 있겠습니까?
물론 지금까지의 모든 실험이 실패로 이어 진건 아니었습니다.
가끔씩은 철저히 계산된 고백 공격이 예상대로 먹혀서 좋은 결과를 내기도 하고,
또 정말 가끔씩은 뇌 빼고 고백을 들이박았는 데 성공한 경우가 있기도 하고.
이런 소수의 성공담(?)들이 모여서 논문 작성으로 이어지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그때마다 나오는 도파민이 연구를 때려치우지 못하는 이유가 됩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런 성공담은 정말 적습니다.
이런 소수의 성공 경험을 제외하면, 제 일상은 실패로 가득 찹니다.
사람들은 이런 실패를 '숭고한 것'으로, '새로운 배움'으로 포장해 주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너무 아픕니다.
누가 고백하고 차이고 훌훌 털고 일어날까요.
그러던 와중에, 작년 말(23년 12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깨달음을 얻는데요…
(“그날 본 과학자의 이름을 나는 아직 모른다”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