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부
편견이라는 틀 안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나는 종종 스스로 만든 틀 안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보이는 것만 믿고, 알 수 없는 것을을 단정 짓던
시간들 속에서, 사람들과 풍경은 편협하게 굴절되어
내 눈앞에 머물렀다.
그 안에서 나는 얼마나 좁은 시야와 무지 속에
있었는지 깨닫는다.
어는 날, 예상치 못한 대화와 우연한 관찰이
그 틀을 살짝 흔들었다.
타인의 선택과 사소한 친절,
길에서 마주친 작은 풍경 하나가
내 마음 속 편견의 경계를 조금씩 밀어냈다.
나는 그 틈에서 이전과 다른 세상을 보았고,
내가 놓치고 있던 가능성을 발견했다.
편견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겠지만,
그 틈을 들여다보고, 느끼며,
가볍게 인정하는 순간이 필요하다.
그 경험들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기보다
오히려 부드럽게 열어준다.
세상을 이해하려는 마음과, 나 자신을 돌아보는
태도가 조용히 공존한다.
그래서 나는,
편견이라는 틀 안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놓쳤을까 고민해본다.
죽음을 생각하며 잠시 멈추는 시간
죽음은 언제나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내 곁에 있다. 그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
한쪽이 미세하게 떨리고, 나는 그 떨림 속에서
삶의 숨결과 사소한 순간들을 세삼 느낀다.
나는 문득 지난 하루를 떠올렸다.
말없이 스친 사람들의 얼굴, 무심코 지나친 장소,
작은 선택과 순간의 감정까지 모두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죽음을 깨닫는 순간, 사소한 기억들이 마음 속에서
조용히 울리며, 삶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한다.
그 고요한 성찰 속에서, 나는 마음을 살핀다.
두려움이나 허무함이 아닌, 묘한 안도와 평온이
스며들고, 지나간 일과 아직 오지 않은 시간들 바라보는
눈이 조금 더 부드러워진다.
죽음은 나를 멈추게 하지만, 나 자신을 이해하게
만들기도 한다.
죽음을 생각하며 잠시 머무는 이 시간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마음을 정리하고 삶의
결을 느끼게 한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마음이 회복되는 것을
알아차린다.
죽을 용기가 없어서 살아야 한다면
그날 밤, 나는 오래도록 차가운 문 앞 서 있었다.
삶의 무게가 온 몸의 혈관을 타고 짓누르던 시절.
그 문을 열면 모든 고통이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다.
사람들의 상처, 기대, 그리고 나를 스스로 무너지게
했던 지독한 미련까지 모두 끝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나는 죽을 용기까지 없는
나약하고 무기력한 존재였다.
문 앞에는 또 다른 그림자가 주저 앉아 있었다.
죽지 못해 사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라 여겼던 나.
삶의 의미가 모두 사라져버린 껍데기만 남은 모습.
숨만 쉬는 존재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스스로를
깎아내린 나. 그림자는 더 이상 일어나지 못했다.
죽을 용기가 없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마지막 순간까지 삶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는 것을 말한다.
어쩌면 나는 나약해서 죽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살고 싶다는 아주 작은 간절함이 마지막 나를 붙잡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나는 조금씩 숨을 쉬기로 했다.
내가 겪었던 절망과 후회들을 마음속에서 태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을 끌어안고 강해지는 법을
배우기로 했다. 나는 이제 그림자로 주저 앉아있던 나를
외면하지 않는다. 그 시간을 보낸 나를 탓하지도 않는다.
차가운 문 앞에서 서성였던 그날 밤의 나에게 괜찮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절망과 후회라는 불꽃에 타버린 것은 나의 삶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과 무의미한 기대였다.
나는 더 이상 차가운 죽음의 문 앞에 서성이지 않는다.
그날 밤 나는 끝내 문을 열지 않았고, 주저앉았던 그림자를 다시 깨운다. 나의 삶은 더 이상 비극이 아니라,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돌아온 나의 새로운 여정의 시작이다.
이 작은 호흡이 나를 살아가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