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부
제 3부. 흐르는 시간 속에서 길을 본다
낯선 길에 발을 디디다
흔들리는 균형 위에서 길은 다시 만들어졌다.
사랑에 연거푸 실패하고, 세상의 일반적인 길을
걸을 수 없는 사람들을 뒤로해야 했던 상처가 깊었다.
하지만 가장 깊었던 상처는 따로 있었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나는 삶과 죽음의 경계 앞에서
세상이 나를 버렸다고, 나 역시 세상을 버렸다고
원망하며 지냈다. 그 시간 동안, 삶에 대한 모든 부정을
키웠다. 그래도 내 곁을 지키는 존재들이 있었다.
말은 못 해도, 내 안부를 묻는 듯 껌딱지처럼 내 곁을
지키는 아이들. 그들의 눈빛은 세상의 냉대 속에서 내가
붙잡을 수 있었던 유일한 온기였다.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던 내 삶의 무게 중심이 다시
잡힌 것은 새로운 사랑 덕분이었다.
그녀는 나의 과거와 상처를 묻지 않았다. 조건 없이
그저 나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 주었다.
나는 그녀의 품에 안기고 싶은 마음과 함께,
내 안의 벽이 조금씩 허물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전까지는 상처를 피하기 위해 사랑을 받는 데만
익숙했다면, 그녀에게는 기꺼이 내 사랑을 듬뿍 주고
싶다는 마음이 커져갔다.
실패와 좌절이 나를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하는 방식을 제대로 깨닫게 해 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과거의 모든 실패와 아픔은
나를 단단하고 묵직한 사람으로 만든 망치질이었다.
숱한 이별의 경험을 통해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을 온전히 내어줄 때, 비로소 진정한 사랑을
받을 수 있음을 배웠다. 이 깨달음은 단순한 연애 감정을 넘어, 세상 모든 것과 관계를 맺는 방식을 바꿔놓았다.
이전에는 부정적으로만 보였던 세상이 이제는 새롭게
사랑할 대상으로 가득 차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그녀와 함께, 그리고 세상과 함께
다시 사랑을 시작한다. 길가에 핀 작은 꽃에도
눈길을 주고, 해 질 녘 노을을 보며 위로를 받는다.
이는 내가 다시 삶을 긍정하게 되었다는 증거이자,
혼자 걸어온 길 위에서 만난 가장 따뜻한 온기다.
비록 세상은 여전히 불완전할지라도, 나는 이 사랑의
온기를 길잡이 삼아 다시, 그리고 온전하게 걸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