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걷는 날들의 온기

21부

by 김대희

발자국마다 스며드는 기억


길 위에 찍힌 발자국은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다.

과거에는 그 흔적이 고독의 증명처럼 보였지만,

지금은 다르다. 새로운 사랑이 가져온 온기 덕분에,

내 발걸음은 세상의 미세한 떨림을 감지하는 창문이

되었다. 길을 걷다 보면, 과거에는 듣지 못했던 세상의

작은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아파했던 만큼 예민해진 나의 감각은,

세상을 다시 만나는 힘이 되었다.

과거에는 눈앞의 아픔에 매달려 시간을 보냈지만,

이제는 세상이 내게 건네는 작은 이야기를 듣는다.

차가운 유리창에 맺힌 작은 물방울,

햇빛에 부서지는 길가의 먼지,

오랜 세월을 함께한 얼룩의 흔적까지도 내게는

한 편의 시가 된다.

발자국이 남긴 자리마다 세상의 숨결이 스며들고,

나는 그 숨결을 통해 비로소 세상과 온전히 하나된다.


내 발자국은 이제 홀로 남지 않는다.

모래 위에 찍힌 자국마다 말없이 이어지는 세상의

속삭임이 흐른다. 지나가는 이의 고독한 뒷모습,

무심히 쌓이는 하루의 무게, 그 틈마다 내 마음은

조금씩 잉크처럼 번지고, 길 위의 하루는 나를 닮아간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듯,

내 발자국은 계속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이 길 위에서 나는 오직 나만이 걸을 수 있는

갈을 찾았고, 그 길의 끝에는 나를 기다리는 세상이 있다.


결국, 모든 발자국에 스며든 기억은, 나를 한층 더 넓고

깊은 존재로 확장시킨다.

이제는 세상이 내 안에 스며들고, 나의 사랑이 세상에

퍼저나가니, 나는 더 이상 외롭지 않다.

길 위에서 길을 보았고, 발자국마다 스며드는 세상의

사랑을 통해 나는 나 자신을 온전히 채웠다.



나를 기억하는 너에게


나는 오래 기억되고 싶다.

비가 오는 날 창문을 통해 비춰진 너의 얼굴에서,

젖은 옷에 남아있던 녹진한 공기 냄새 섞인

페트리코에서,

너의 목덜미에 남아있던 향긋한 샴푸냄새에서,

동네 분식집에서 밥을 먹던 오후,

우리게 헤어지던 날, 코끝을 스쳤던 서늘한 바람과 섞인

너의 한숨에서, 네가 뒤에서 몰래 와서 내 머리를

감싸안던 그 버릇처럼, 그렇게 너의 기억 속에 남아있고 싶다.

어쩌면 커피잔에 남아있던 너의 온기, 다이어리에 눌러 쓴 너의 이름, 연필 끝에 맴돌던 너의 망설임까지, 이 모든 것이 오래 기억되고 싶은 나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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