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여덟, 끝에서 죽음을 발견하다

Story 2

by 김대희

세포 배양실의 영원한 시간


연구실 한편에 자리한 세포 배양기는 언제나 37도씨를 유지했다.

배양기 속에서는 내가 암 환자들에게서 채취한 조직들에서 분리한 세포들이 배양되고 있었다.

나의 일은 이 세포들을 증식시키고, 분화 실험이나 항암제 유효성 평가를 통해 생물학적 독성을 규명하는

것이었다.


패트리 접시 안의 세포들은 놀라웠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그 작은 점들은 멈추지 않고 사방으로 가지를 뻗으며 분열하였고 증식했다.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항암체를 처리하면 일부는 죽어 나갔지만, 살아남은 세포들은 이내 빈자리를 채우며 다시 세력을 확장했다. 그 끈질긴 생명력 앞에서 나는 종종 인간 존재의 유한성을 생각하게 되었다. 배양기 속의 시간은 마치

영원히 반복되는 것 같았다. 배지를 갈아주면 다시 활기를 찾고, 공간을 넓혀주면 망설임 없이 증식했다. 그들에게는 종말이 예정된 것이 아니라, 환경만 허락된다면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만이

있었다.


세포들에게 시간은 선형적이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어제도 내일도 없었다. 그저 지금이라는 순간에 끊임없이 존재하고 분열할 뿐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그리고 그 세포를 제공해 준 환자들에게 시간은 너무나 명확하게 선형적이었다. 시작이 있었고, 끝이 예정되어 있었다.

환자들은 병상에서 하루하루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그들의 일부인 이 암세포들은 배양실의 온기 속에서 영원을 사는 듯했다.

이 아이러니는 나에게 깊은 질문을 던졌다.


생물학적인 생명은 이토록 끈질긴데, 왜 '나'라는 의식을 가진 인간의 삶은 이리도 허무하게 끝나는 걸까? 세포의 영원한 증식은 개체의 영원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개체는 사라져도 유전 정보는 남는다는 생물학적 사실이 과연 한 인간의 존재 의미를 설명해 줄 수 있을까?

연구원으로서 객관적인 시선은 '그렇다'라고 말했지만, 내면의 나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인간은 단순한 세포 덩어리 이상의 존재였다.

감정, 기억, 사유를 가진 특별한 존재였다.


나는 그 작은 패트리 접시 안에서 삶의 본질을 찾으려 애썼다.

세포들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저 본능에 따라 존재할 뿐이었다. 어쩌면 삶의 의미란, 이 무의미에 보이는 반복과 유한함 속에서 스스로 의미를 찾아내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세포 배양실의 영원한 시간 속에서 나는 인간의 유한한 삶이 가진 밀도와 가치를 역설적으로 깨달았다.

마흔여덟이 된 지금, 나는 그 세포들처럼 맹목적으로 살기보다, 나의 유한함을 인지하고, 매 순간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치열하게 사유해야 함을 다시금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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