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경계를 사유하다
Story 1
신경외과 연구원 김 대희입니다.
대학병원 연구동 5층, 내 책상 위에는 언제나 분석을 기다리는 실험 데이터와 조직 샘플들이 쌓여 있었다.
흰 가운을 입고 오가는 사람들, 데이터를 분석하는
장비 소음, 그리고 유리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펼쳐진 임상 현장의 긴박함.
나는 그 경계에 서서, 삶과 죽음의 신호를 동시에 처리하는 사람이었다.
나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암환자들을 직접 만나 임상 연구 동의서를 받고, 수술장에서 조직을 받아와 여러 실험들을 진행하고 논문을 쓰는 것이었다.
암 병동의 공기는 늘 무거웠다. 그곳에서는 시간이 다르게 흘렀다.
삶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가 하면, 때로는 죽음의 그림자가 너무 빠르게 드리워졌다.
"환자분, 이 연구는 환자분의 조직 샘플을 통해...",
나는 준비된 동의서를 읽어 내려갔지만, 환자의 눈빛 속에서 읽히는 것은 '연구'라는 단어가 아니라 '희망' 혹은 '체념'이었다.
그들의 손을 잡고 동의서에 사인을 받는 순간, 나는 한 사람의 생명이 가진 유한성과, 그 속에서 무엇이든 해보려는 인간의 끈질긴 의지를 동시에 목격했다.
그 손은 차갑기도, 때로는 놀라울 정도로 뜨겁기도 했다. 어떤 환자는 떨리는 손으로 서명을 했고, 또 어떤 환자는 담담한 표정으로 펜을 쥐었다.
그 모든 순간이 나에게는 삶의 가장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조직을 채취하러 수술실이나 시술실에 들어갈 때면, 그 경계는 더욱 명확해졌다.
마취된 환자의 육체는 차가웠고, 집도 의사의 매스 끝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가 오갔다. 내가 채취한 작은 조직 조각은 연구실로 옮겨져 수많은 데이터로
분석되겠지만, 그 너머에 있던 한 존재의 삶의 무게는 그 어떤 데이터로도 측정할 수 없었다. 수치로 환원되지 않는 인간 존재의 신비, 그것이 내가 연구를 하면서도 놓지 못했던 철학적인 질문이었다.
유리벽 너머의 중환자실 모니터에는 늘 희미한 바이탈 사인이 깜박였다.
그 신호가 멈추는 순간, 의학적 죽음이 선고되지만, 한 사람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거대한 사건이었다. 그들이 남긴 가족들의 눈물, 채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 이루지 못한 꿈들, 이 모든 것들이 그 작은 유리벽 너머에서 매일 반복되었다.
나는 그 유리벽 앞에서 매번 무력감을 느꼈다. 의학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 같았지만, 결국 죽음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선 한없이 작아졌다.
동시에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기적 같고 치열한 것인지 깨달았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결코 선 하나로 그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매 순간 치열하게 이어지다 어느 순간 예고 없이 사라지는 희미한 신호와도 같은 것이었다.
이 모든 경험이 마흔여덟이 되던 해, 내가 삶을 다시 정의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찾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