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책임한 일상 속에서
시지프스. 그리스 신화에서 끝없는 고통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는 신들을 속인 죄로 인해 거대한 바위를 산 정상까지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았다. 바위는 매번 정상에 다다르기 직전에 다시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시지프스는 이 끝없는 반복을 영원히 지속해야 한다. 이 이야기는 표면적으로는 비극적이고 무의미한 형벌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와 결합하여 이 이야기를 다시 살펴보면, 시지프스의 운명은 단지 비극적인 반복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사르트르는 “존재가 본질에 앞선다”고 말하며, 인간은 주어진 운명 속에서 본질을 스스로 창조해 나가는 존재라고 주장한다. 시지프스도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면서 그 안에서 자신의 의미를 창조해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무책임하게 반복되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우리는 스스로의 본질을 창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무의미해 보이는 일상일지라도, 그 속에서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몫이다.
우리의 일상은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길로 출근하고, 같은 업무를 반복하는 과정 (혹은 공부를 하거나) 으로 가득 차있다. 때로는 이 일상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실존주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이 반복 속에서도 자신만의 의미를 만들어갈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다. 시지프스가 매번 바위를 밀어 올리는 순간마다 새로운 의미를 찾았듯이, 우리는 일상의 반복 속에서 매 순간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를 규정하는 중요한 행동이 될 수 있다.
바위를 밀어 올리면서도 시지프스는 그 과정 중간중간에 잠시 멈추어 서서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을 것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소리,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 발 아래 느껴지는 흙의 감촉. 이 모든 것은 시지프스에게 있어 그가 경험하는 세상의 일부이다. 이 순간들은 그에게 단순한 휴식의 시간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다시 확인하고 받아들이는 실존적 자유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에서 말하는 '자유'는 단순히 외부 조건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 속에서 자신의 본질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능력이다. 시지프스는 바위를 정상까지 밀어 올려야 하는 필연적인 조건 속에서도, 그 길 위에서 매번 자신의 존재를 새롭게 선택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그래야만 했을 것이다.
우리가 매일 반복하는 일상 속에서도 이와 같은 실존적 자유를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출근길에 들르는 커피숍에서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 잔, 퇴근 후의 짧은 산책, 사랑하는 이와 나누는 대화 등은 모두 우리의 일상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 순간들이다. 이러한 순간들은 단순히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일상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기회가 된다. 사르트르가 말하는 실존적 자유는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 속에서도 스스로의 길을 선택하고, 그 선택을 통해 자신의 본질을 창조해 나가는 과정이다. 시지푸스는 그의 바위를 밀어 올리는 과정에서 그 산책의 순간들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새롭게 규정하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반복했을 것이다.
우리의 일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는 일상 속에서, 우리는 실존적 자유를 통해 그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갈 수 있다. 이 자유는 우리가 매 순간의 선택 속에서 자신의 본질을 창조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방법을 제시해준다.
우리는 시지프스의 이야기를 통해 그의 끝없는 반복이 단순히 형벌로 끝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결국 중요한 질문은 남아있다. 과연 시지프스는 행복했을까? 알베르 카뮈는 그의 에세이에서 시지프스가 행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창조해 나갔기 때문이다. 시지프스는 매번 바위가 굴러 떨어질 때마다, 다시 바위를 밀어 올리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갔다. 그의 행위는 무의미한 반복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창조해 나가는 실존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행복은 주어진 운명에 대한 수용과 그 속에서 자신의 본질을 창조해 나가는 자유에서 비롯된다. 시지프스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거부하거나 불행으로 여기지 않고, 그 상황 속에서 스스로의 의미를 만들어 나갔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었다. 그의 행복은 단순한 쾌락이나 외부적인 조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실존적 자유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도 시지프스의 운명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때로는 무의미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우리는 실존적 자유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찾아 나갈 수 있다. 시지프스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자신의 본질을 창조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시지프스는 행복했을 것이다. 그가 매번 바위를 밀어 올리며 느꼈을 작은 성취감,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한 의미는 바로 그의 행복의 근원이다.
우리도 일상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고,
주체적으로 그 속에서 행복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우리 모두가 행복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