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러 교회를 전전하며 여러 목사님들을 보았다.
여러 좋은 목사님들도 많았지만 이상한 사람들도 있었다.
오늘은 내가 만나 본 여러 좋은 목사님들, 그 중 한 분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한다.
이 목사님은 꽤나 유머러스한 분이시다.
항상 웃겨야 한다는 강박이라도 있는 것처럼 장난끼 가득한 얼굴로 농담을 한다.
그런데 그 분의 장점은 유머가 아니였다.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 전통적이고 관례적인 시야가 아닌
자기 스스로 통찰한 시야를 가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 그 목사님의 설교를 참 좋아했다.
때로는 내 문제의식을 정확히 찌르는 설교를 하시기도 했기에 난 그 목사님께 꽤나 반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이 목사님과 만나서 대화를 해보면
이상하게 핀트가 어긋나는 느낌이 있었다.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항상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하라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뭔지 모르게 나를 믿지 못하는 느낌이 있었다.
난 그 느낌이 나를 잘 모르기 때문에 나에 대한 경계나 보수적인 접근으로 인해 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번은 그 목사님의 어떤 설교를 들으면서 내가 느낀 느낌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그 설교의 요지는 이것이었다.
자기의 온전치 못함을 온전하게 하려는 몸부림은 사회적 지위, 자격을 위한 몸부림이라는 것이다.
그럼 크리스쳔은 어떻게 해야 하냐? 성령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라는 거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그저 온전해지려는 몸부림을 사회적 지위와 자격 하나로만 이해하고 있다는 게 나는 충격이었다.
게다가 삐진다는 것 또한 자기의 사회적 지위나 자격이 손상되었다고 생각해서 삐지는 것이라고 그 목사님은 주장했다.
그 설교를 듣고 나서야 그 목사님의 태도가 이해되었다.
유머러스하고 따뜻한 설교를 하는 것과 달리 인간에 대한 깊은 냉소가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인간이 온전함을 향해 몸부림 치는 것은 단순히 사회적인 자격을 쟁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건 오히려 성령의 인도하심일 수 있다.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지 않고 지혜롭게 사용하려는 몸부림일 수 있다.
사명으로부터의 부름일 수 있다.
그걸 싸그리 개인적 쓴뿌리 취급을 해버리고 계속해서 사람의 숨은 의도가 어딘가 존재 할 것이라고 보는 태도는 전혀 성경적인 사랑이 아니라고 느꼈다.
인간에 대한 과도한 냉소... 솔직히 말해서 실망해버리고 말았다...
삐지는 것도 마찬가지. 그 목사님 말대로라면 교회가 아무리 사랑이 없거나 사랑을 표현하지 않아도 성도가 삐진다면 그건 성도의 잘못이지, 교회의 잘못이 아닌 것이다.
그 교회가 왜 그렇게 성도들을 방치하는지 그제서야 알 것 같았다.
삐지는 사람이 문제지 삐지게 만드는 주체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 책임질 주체도 없다.
참 좋아했던 교회였는데 등록교인한테 문자 한 번 안 보내고 자기들끼리 투표하고 자기들끼리 히히호호 해도 삐지는 내가 성경적이지 못 한 것이다.
말로만 함께하자 하면 뭐하나. 실상은 자기들끼리만 즐기고 싶어하는데.
교회가 실은 다 그런 식이다.
요즘은 순교가 교회의 순교가 아니라 교회에서의 순교라고 한다.
교회 밖에서 순교가 일어나는 게 아니라 교회 안에서 순교가 일어나는 것이다.
자기들끼리 희희낙락하고 말로만 사람을 환영한다고 하는 것. 실제로는 사람에 대해 버거워 하는 것.
그게 지금의 교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