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행 다섯 번 갔다 온 사람이 본 일뽕

이러다 아주 일제침략까지 실드 치시겄어

by 강유선

나는 일본 문화를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메칸더브이, 후레쉬맨, 바이오맨, 드래곤볼, 란마1/2 등등 수도 없이 많은 일본 만화를 보며 자랐고, 일본의 사무라이나 닌자들이 칼로 사람을 쫙쫙 베는 것도 남자들 마음 속에 있는 폭력적인 본성을 자극해서 그런지 아주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또, 한국의 투박함과 정교함 사이의 절묘한 중도를 지키는 조화미도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일본의 단정하고, 깔끔한 단정미(?)도 꽤나 아름답다. 게다가 일본은 그러한 문화재들이, 원폭 두 방 맞은 거 빼고 별 다른 외침을 받은 적이 없어서 그런지, 보존이 아주 잘 되어 있다. 일본을 갈 때마다 정말이지 외침 없는 나라는 이렇게 자기 것이 아주 잘 보존되는구나 싶어서 부럽기까지 하다. (물론 일본인들 자체가 레트로한 걸 좋아하는 것도 주요한 이유겠지만 어쨌든......)

나는 일본 사람들도 좋아한다. 일본에는 친절한 사람도 많고, 세심하게 배려하는 사람도 많으며, 일본 여성들은 안빈낙도와 사랑의 가치를 안다고들 하는데, 그러한 점도 참 마음에 든다.

다만, 이러한 것들이 과연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용서의 근거가 되어 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1990년대 말, 처음으로 일본 문화를 전면적으로 개방하고 나서 30년 정도가 지났다. 많은 사람들이 일본 문화를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되었고, 일본을 왕래하는 것도 제주 왕래하는 것 만큼이나 쉬워졌다.

그 만큼 많은 사람들은 일본의 좋은 측면을 경험하게 되었다. 특히, 한국의 투박함에 불만을 가진 사람일수록 일본의 세심함에 감동하고, 그것에 빠져드는 측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른 바, '일뽕'이라고 불리우는 마약에 취한 사람들이 상당히 많아진 것이다.

이 사람들은 일본을 찬양하고, 한국을 비하하는 일에 꽤나 진심인 편이다. 그 동안 한국에 가졌던 불만이 일본에서 해소되면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그 카타르시스가 한국에 대한 과도한 비하와 일본에 대한 과도한 찬양으로 이어진다.

한 번은 모 유튜버가 하도 일본인은 친절하고 한국인은 불친절하다는 식으로 말하길래 실시간 채팅으로 몇 마디 하고 구독취소 누르고 나온 일이 있다.

물론, 일본인들이 전반적으로 친절한 정도가 한국인들 보다 더 할 수도 있다. 나도 경험해 본 바가 있기 때문에 그걸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일본어를 쪼끔 알아듣기는 하는데, 말로는 못하는 내가 경험한 일본은, 꽤나 외국인 혐오도 만연한 곳이라는 것이었다. 특히 후쿠오카의 편의점에서 말로 표현하기 아주 애매하고 은근한 차별 같은 걸 많이 느꼈고(나한테만 젓가락을 안 챙겨준다든지, 보온병에서 물을 받게 되어 있는데 사용법을 몰라 눈 앞에서 한참을 쩔쩔 매는데도 그 한참 동안 와보지도 않는다든지 인사를 안 한다든지 등등), 불친절한 것도(마트 결제하는 법을 잘 몰라서 헤매니까 반말 혹은 시비조로 모니터 탁탁 치면서 이거 보고 하라고 마음대로 모니터 버튼을 누른다든지, 인사를 안한든지 등등), 또, 딱히 친절하지 않은 것도(그냥 건조한 목소리로 응대) 많이 경험했다. 게다가 후쿠오카의 한 고급 카페에서 흥미로운 경험을 했는데, 무슨 일을 당했냐 하면, 처음 들어갈 때에는 아주 친절하던 웨이터가, 나의 약간 저자세에 가까운 듯한 예의범절을 보고는 점점 고자세가 되어갔던 것이다(!). 그런 것들을 보면, 일본이라고 해서 그렇게 대단한 친절 시민의 국가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후쿠오카 방문 후 한국에 귀국했을 때에는, 정말이지 한국이 훨씬 더 친절하고, 훨씬 더 사람을 환영하는 나라라는 것을 느꼈다. 그 만큼 일본에는 혐한인지, 외국인혐오인지, 뭔지 모를 그런 불친절함과 차별도 엄연히 존재한다.

그 유튜버 말이, 한국은 뭐, '손님한테 오히려 을질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은 횡단보도에서 보행자한테 양보하는 꼴을 못 봤다' 그러는데, 일본 가도 그런 사람들 있고, 한국에도 안 그런 사람들 많이 있다. 그냥 일뽕에 취해서 일본이 유독 친절하게 느껴지고, 혐한에 걸려서 한국이 유독 불친절하게 느껴지는 거다.

게다가 어떤 사람들은 일뽕이 얼마나 과했는지, 일본의 제국주의에 대한 피해자 코스프레마저 실드를 쳐주려고 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피해자 코스프레는 아주 유명하다. 제대로 된 사과를 한 적도 없고, 반성하는 모습을 일정하게 보인 적이 없다. 오히려 원폭피해를 강조하면서 자신들이 피해자인 것처럼 말하고, 심지어는 실제로(!)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런 사람들에 대해 실드를 쳐주면서, '일본 제국주의는 일제 군부의 잘못인데 왜 일본의 선량한 일반 시민들이 원폭 피해를 받은 것에 대해 일제의 만행을 운운하냐'고 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한다. 나, 참, 기가 막혀서 말도 안 나온다. 일뽕에 취해서 일본이 그렇게 가엾게 느껴지는 것인지, 쿨병에 걸려서 쿨하게 '선량한 시민들과 군부를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 그러는 것인지, 한국인 특유의 정 때문에 '안쓰러워서' 그러는 것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매조키즘은 맞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약간 피학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

일본은 한국에 대해 철저하게 가해자이고, 한국은 일본에 대해 철저하게 피해자이다. 그건 일제 군부 뿐만이 아니라, 일본의 수 많은 일반 시민들을 통해서도 이뤄진 일이다. 일제의 수탈은 단순하게 정치, 경제적인 것을 넘어섰다. 민족말살정책을 통해서 우리의 정서, 문화, 모든 것을 침탈, 말살하려고 하였고, 일반 일본 시민들 조차도 조선인을 2등 시민으로 여기고 수탈한 것은 뭐 할머니, 할아버지들한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이야기들이다. 관동대지진 이후 조선인한테 누명을 씌웠던 유명한 일화는 말해서 뭐 하겠는가, 입만 아플 뿐이다.

일본은 역사를 왜곡하고 자신들의 피해자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우리가 거기에 조금이라도 동조 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건 인도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자기학대적인 폭력주의이다. 나를 죽이려고 했던 살인미수범이 지금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데, 거기다 대고 '맞아요, 저 사람은 불우한 가정에서 자랐을 뿐, 실은 선량한 사람이예요'라고 진정한 피해자인 우리가 말하는 게 어떻게 인도주의가 되고, 정의가 되냐 이 말이다. 살인미수를 저질렀으면 그에 응당한 죄의 대가를 받고, 피해자에게 진심어린 사죄를 하는 것이 순리지, 어떻게 피해자가 가해자의 피해자코스프레를 도와주냐 이 말이다. '맞아요, 저 사람은 선량한 시민이예요' 이러는 게 정의냐 이 말이다. 어이가 없어서 같은 말 또 하고 또 하고 또하게 되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일본문화도 좋아하고, 일본인들도 좋아한다. 그들이 가진 섬세하고 배려 있는 문화도 좋아하고, 유려한 만화들도 좋아한다. 하지만 그들의 선량한 측면이 그들의 악독한 측면을 감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도 있고, 침묵하는 것은 곧 동조하는 것이라는 말도 있다. 어디까지나 진정한 사과와 역사에 대한 올바른 태도가 선행되지 않으면, 일본인은 그냥 재밌는 거 잘 만드는 놈들, 친절한 척 하는데 때로는 아예 친절한 척조차 안 하는 놈들, 물건 잘 만드는 놈들인 거지, 우리가 나서서 '맞아요 얘 착한 애예요' 하는 거는 진짜 뽕 맞은 짓인 거다.

제발 그러지 좀 말자. 일뽕이 달콤하면 그냥 그거는 그거대로 즐길 일이지, 전범 살인 침묵 동조 피해자 코스프레 범죄자들을 옹호하지 말라 이 말이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안 그러지만, 몇 몇 이상한 사람들이 꼭 눈에 띄길래 써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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