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음식을 만드는 건 가부장 독재인가?
민족의 대명절 추석이 지났다.
개인적으로 가족들이 왁자지껄 모여서 다같이 음식도 만들고, 만든 음식 먹으면서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한다.
우리 가족은 예전부터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포함해서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다같이 만두도 빚고, 전도 부치고 하면서 명절을 보냈다.
뭐, 물론, 중심이 되어서 핵심적인 공정을 진두지휘 하는 것은 여자들이긴 하다.
하지만, 전을 부치거나, 만두를 빚거나, 송편을 빚거나 하는 마지막 공정은 다같이 하는 것이 가족의 전통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사촌 형제들 중 유일한 여자였던 소연이가 전을 부치면서 성질을 냈다. 뭐, 들으나 마나 뻔한 여성주의적 불만이었다.
소연이는 우리 가족의 명절 문화에 대해 나와 완전히 다른 관점으로 보고 있었다.
음식은 여자들만 만들고, 남자들은 방에서 놀다가, 음식 다 되면 먹으러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정말 놀랐다. 어떻게 같은 상황을 보고 이렇게 다르게 받아들일 수가 있나 싶었다.
나는 소연이보다 다섯 살이 많은 입장에서, 걔보다 5년을 더 먼저 이 집안 명절 문화를 겪었는데,
항상 이 집안이 할아버지까지 나와서 남녀 구분 없이 다같이 음식을 하는 것이 자랑스러웠던 부분이었다.
그런데 얘는 똑같은 상황을 보고 어떻게 이렇게 다르게 해석을 할 수가 있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됐다.
피해망상이라는 게 이렇게 무서운 것인가, 현실조차 실제와 다르게 해석하게 만드는 것이 그야말로 '망상'이라는 병인 것인가.
사실, 나와 나보다 두 살 아래의 병하는 예외 없이 항상 음식 만드는 것을 함께 했지만, 병주나 병남이는 할 때도 있고, 안 할 때도 있긴 했다. 그리고 큰삼촌도 할 때도 있고, 안 할 때도 있긴 했다.
하지만 난 내 기억으로는 초등학교, 그 때에는 국민학교였지만, 입학하던 해 설날부터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음식을 함께 만들었다.
나는 남자가 아닌가? 병하도 거의 예외없이 함께 했는데, 병하는 남자가 아닌가? 그리고, 다른 남자들도, 했다가 안 했다가 하면 '안 한 것'이 되어버리는 것인가?
물론, 여자들이 주도적으로 한 건 맞다. 레시피니, 뭐니, 큰외숙모가 장도 보고, 주도적으로 하시는 거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남자들이 동참했다는 사실 자체를 어떻게 저렇게 완전하고도 깡그리 무시 할 수 있는 것인지 정말이지 도대체가 이해가 안 되었다.
게다가, 소연이는 전을 부치기 싫어했고, 나는 전을 부치고 싶어했다. 내가 전을 부치겠다고 하면, 성질을 부리고, 시어머니 잔소리를 퍼붓던 건 소연이 본인이다.
그래놓고, 자기만 전을 부친다고 큰소리를 치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니, 소연아, 전은 원래 내가 부치고 싶었어. 근데 니가 하도 지랄을 하길래 그냥 너 부치라고 한 거야.
소연이는 아무 말이 없었다. 자기의 기억을 더듬어 보는 것 같았다.
나는 한국의 명절문화가 여성들의 피해의식에 의해서 좀 왜곡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명절음식 만드는 것이 정말로, '여성들만의 노동'으로 이뤄진다면, 당연히 불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가족들 모두의 노동'으로 이뤄진다면, 그건 가족이 함께하는 추억이고 놀이이다.
하루 종일 앉아서 전 부치고, 만두 빚고 하는 것이 불평불만인 사람은 그냥 나가서 놀면 된다.
그러나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가족과 함께 하는 즐거운 놀이가 되는 것이다.
여성주의의 분기탱천으로 화가 머리 끝까지 난다면, 그냥 나가시라. 나가서 혜화역이라도 갔다오시면 된다.
그러면 가족들 다같이 음식 만들고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고 싶은 사람들끼리 재밌게 명절 추억 쌓으면 될 일이다.
실제로 우리 아내는 그런 걸 좋아한다. 다같이 모여서 음식도 만들고, 이야기도 하고 싶다는데,
우리 가족들은 이제 모이지 않는다.
소연이가 하도 지랄을 하고, 뭐 우리 집안은 콩가루 집안이니, 뭐니 하길래, 걍 얼굴 안 보고 산 지 몇 년 됐다.
아내는 그게 참 안타까운 모양이다. 아내도 나처럼 자기네 집에서 음식 만들고 다같이 이야기 나누는 게 좋았다고 한다.
다음 번부터는 어머니랑 아내랑 조촐하게라도 우리끼리 음식 만들면서 이야기도 하고 그렇게 지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