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에 대하여
자기 종교가 기독교라고 하면 욕 먹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해는 한다. 나부터가 교회에 불만도 많고, 화도 많이 나니까. 하지만, 나는, 교회에 대한 불만이 곧 기독교에 대한 불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교회가 하나님을 잘못 해석해서 일어나는 일들이 거의 대부분이니까. 즉, 교회의 잘못이 기독교의 잘못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는 한 번도 가르친 적 없는 것을 행하는 교회들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기독교(이하 예수님)가 가르치는 것은 원래 사랑과 정의이다. 성경을 딱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사랑과 정의라고 할 수 있다. 그 만큼 기독교의 핵심 정신은 사랑과 정의가 가장 중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수님도 사랑이 모든 율법을 다 이룬다는 표현을 쓰셨다. 즉, 어떤 사소한 규칙보다 사랑이 우선하고, 사랑은 모든 정의를 충족한다(혹은 해야한다)는 말씀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교회가 이 '사랑'이라는 대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많은 오해들이 생겨난다.
이번 편에서는 예수님에 대한 수 많은 오해 중에 '회개'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사실 이 글을 쓰게 만든 원인이 존재한다. 유투브를 보는데, 어떤 유명 결혼정보회사 대표가 '종교'(라고 쓰고 기독교라고 읽는다)를 가진 사람은 절대 며느리로 들일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 뭐, 존중한다. 우리는 자유를 철저하게 존중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 지을 자유까지 주신 분이시다. 그 만큼 자유는 소중한 가치이다. 그 사람이 종교인(이라 쓰고 기독교인이라 읽는다)을 싫어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의지로 선택한 것이다.
다만, 그 영상의 댓글에 기독교에 대한 욕이 차고 넘치는데, 그 중에 여러 번 중복되는 내용들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왜 다른 데에 죄를 짓고 용서는 하나님한테 비냐', '마음 편해지려고 돈 내고 회개하는 종교다', '죄는 딴 데 가서 짓고 혼자 회개하고 혼자 마음 편해지는 종교다' 뭐 이런 식의 댓글들이 여러 번 중복되어서 눈에 띄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건 사실이 아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회개란,
1. 말로써 고백한다. 그냥 마음 속으로 고백하는 것은 회개가 아니다. 입을 벌려 입 밖으로 내어 고백하는 것이 회개의 시작이다.
2. 피해를 구제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한다. 자기가 잘못한 것에 대해 발생한 피해가 있다면 그것을 보상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한다. 성경에 나오는 수 많은 회개의 사례는 하나 같이 다 피해를 몇 배로 보상한다. 그냥 딱 피해 만큼 보상하는 경우조차도 잘 없다. 피해의 몇 배를 보상한다. 그리고 다시는 같은 죄를 짓지 말라고 예수님께서 당부하거나 본인이 약속한다.
3. 이를 실제로 실천한다. 그냥 약속만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 진정한 회개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모든 종교가 그렇겠지만, 기독교는 정말이지 진정성을 중시하는 종교이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라는 말이 몇 번이고 반복되어 나온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밖에 볼 수 없으나, 하나님은 실제로 그 사람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신다는 뜻이다. 즉, 자기가 마음 편하려고 하는 회개인지, 진정한 회개인지 하나님께서 보신다는 것이다. 그냥 마음 편하려고 회개하는 건지, 진정으로 회개하는 것인지 기독교에서는 실제로 그 둘을 구분해서 보고 있다.
나는 '밀양'이라는 영화를 보지 않았다. 한 때 기독교인들의 인구에 꽤나 회자되던 영화인데, 내용만 듣고 보지 않았다. 기독교를 접한지 얼마 되지 않은 너무나도 초보적인 고민이 들어있는 내용이라서 보기가 싫었다.
영화의 요는 이러하다. 죄는 딴 데에서 짓고, 혼자 회개하고 마음 편해지면 그게 하나님의 사랑이냐, 이거다. 또 한 편으로는, 용서하라고 하는데, 용서가 그렇게 쉬운 게 아니라는 내용도 들어있는 듯 하다.
우선, 이 영화에서 말하는 회개는 진정한 회개가 아니다. '나 회개하고 용서받았소. 나는 이제 마음이 편안하니 당신은 알아서 하소.' 이런 식의 태도는 절대 진정한 회개를 경험한 자의 태도가 될 수가 없다. 진정한 회개라는 것은 자기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는 것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냥 상식이다. 회개라는 것은 자기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고 한다면, 자기 죄를 진정으로 뉘우치는 사람이 피해자에 대해서 고개도 들지 못하고 눈물로 용서를 구하는 반응이 자연스럽지, '나는 이미 회개하고 용서를 받았소이다.'라고 하는 것이 가당키나 하냐는 것이다. 피해자를 보자마자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진정한 뉘우친 자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이 영화 속 범죄자는 회개하지 않고 자기가 용서받았다고 착각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저런 식의 회개를 회개로 보지 않으신다.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 과연 피해자에게 저렇게 뻔뻔한 사람을 진정으로 용서하셨을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시간'이라는 개념이 조금 모호 할 수가 있다. 인간이 경험하는 시간은 순차적으로 일어나지만, 하나님 세계의 시간은 동시적이다. 즉, 용서의 시점이라는 것이 우리의 기준과 하나님의 기준에 차이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회개하는 시점과 하나님이 용서하시는 시점에는 꽤나 차이가 날 수 있다. 앞서 말한 영화에서도, 해당 범죄자가 이 당시에는 용서를 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추후 진정으로 회개하고 용서를 받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렇게 된다고 하면, 하나님의 용서는 사실 2천 년 전에 이미 일어난 일이 되기도 한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함께 모든 용서가 일어나는 것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오는 착각이 꽤나 많은 듯하다. 인간의 시간과 하나님의 시간의 격차. 그래서 교회에서 '당신은 이미 용서받았습니다'라고 하는 말이, 마치, '내가 죄를 회개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용서를 받았다고? 그것 참 편리하군!!' 이렇게 되는 것이다. 실은 그게 아니다. 내가 진정으로 회개하는 시점이 하나님께서 용서하는 시점이다. 그러나 그 용서는 2천 년 전에 일어난 용서라는 것이다. 개념이 좀 어렵지? 그래서 사람들이 헷갈려하는 것이다.
기독교를 미워하는 많은 사람들이여, 이번 글을 통해서 한 가지 만은 알아주시길 바란다. 기독교는 대충 마음 편하려고 회개하는 종교도 아니고, 십자가를 죄책감 쓰레기통 정도로 이용하는 종교도 아니다. 진정한 뉘우침과 피해 구제, 재발방지 약속, 실제로 행동하는 것까지가 기독교에서 말하는 회개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범죄한 자는 절대 하나님의 나라에 올 수 없다고까지 말씀하셨다. 그 만큼 기독교에서는 죄에 대해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넘어가는 종교가 아니다. 다만, 사랑의 종교인 만큼, 범죄자에게도 끝끝내 기회를 주는 것이 기독교의 특징일 뿐이다. 즉, 용서받는 시점에 대한 착각, 끝끝내 기회를 주는 태도에 대한 착각으로 인해서 기독교를 대충 마음 편하려고 회개하는 종교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신 것 같은데, 이 글을 통해서 그러한 오해가 풀렸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