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엉덩이 뭐야?
84년생인 나는 20대 시절까지도 한국이 대단한 나라라고 느끼지는 못 했었다.
'한강의 기적? 조용한 아침의 나라? 너무 자화자찬 아니야? 난 왜 유럽에서 태어나지 않고 한국이라는 이 척박한 땅에 태어났을까? 하나님은 왜 나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셨느냐 이 말이야!!'
이게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내가 한국이 대단한 나라라는 걸 깨달은 시기는 코로나 때였다. 똑같은 위기 상황을 겪는 전세계 모든 나라들이 정말 후진적인 의식과 대응 방식을 보일 때, 오직 한국만이 신속하고 체계적인 대응을 해냈다. 전국민이 똘똘 뭉쳐서 빨리빨리 문제를 해결했다.
그 때 처음으로
'와, 우리나라 정말 대단하다. 서구 열강들이 저렇게 헤매는데,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착착착 잘하지? 쟤네도 별 거 없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 후로 대한민국은 정말 날개라도 단 것처럼 하늘로 비상하기 시작했다. 1919년의 딱 100년 후, 한국은 제국주의의 쇠말뚝을 벗어버리고 비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도 많아지고, 한국을 좋아하는 외국인들도 많아졌다. 자연스럽게 외국인과 대화 할 기회도 많아졌다.
그런데, 외국인들과 대화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들이 지금 사용하는 언어가 가끔은 도대체 영어인지, 불어인지, 어느 나라 언어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는 것을.
내 생각에, 그런 경우 십중팔구, 그들은 한국어를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한국에 와서 한국인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완전히 이렇게 히트를 치기 전에도 2천년대 들어서 외국인들이 꽤 많이 들어왔다. 동국대를 다니고 있던 나는 4호선을 타고 통학을 했는데, 한 번은 충무로역에서 지하철을 타려는 외국인이 말을 걸었다. 뭐라고 뭐라고 하는데 내가 못 알아들으니까, '미엉덩, 미엉덩' 이러는 거다. 솔직히 그 당시 영어랑 담을 쌓고 살던 시절이라 그런지 1도 못 알아들었다.
'도대체 미엉덩이 뭐야...'
"몰라, 몰라, 아이 돈 노우. 쏘리."
이러고 그냥 나 혼자 지하철을 타버렸다. 그 사람은 약간은 허망하게 나를 바라보고 플랫폼에 서있었다.
몇 분 쯤 지났을 때, 지하철은 명동역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번 정차역은 명동, 명동역입니다. 디스 스탑 이스, 미엉덩, 미엉덩......."
'아~~~~ 명동 가냐는 말이었구나~~~~!!!'
그 외국인에게 굉장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 열차를 같이 탔어야 하는데, 나 때문에 괜히 더 못 타게 된 것 같았다. 영어를 못한 것도 미안하고, 인내심 가지고 들어주지 못한 것도 미안했다.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그냥 지하철을 타버렸는데, 너무 미안해서 다시 돌아가서 알려주고 싶기까지 했다.
근데 그 때 꽤나 큰 충격을 받았다. 미엉덩은 한국어였다는 사실이 너무 충격이었다.
이런 사례는 내가 몽골인 아내를 만나고 나서 더 많이, 더 자주 일어나게 되었다.
몽골인 아내는 한국이 좋아서 한국에 왔다기 보다는, 그냥 친구따라 강남 가듯이 한국에 왔다가 나를 만났다. 그래서 딱히 한국에 대한 애정이나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마음이 크지 않았다.
그래도 남자친구, 지금의 남편이 한국인이니까, 또 한국에 살아야 하니까, 한국어를 꾸역꾸역 배우는데, 가끔은 아내가 말하는 한국어가 도저히 한국어로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다.
몽골인들은 '오' 발음과 '우' 발음을 크게 구분하지 않는 것 같다. '어'랑 '오'는 구분을 하는데, '오'랑 '우'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 느낌이다. 오랑 우를 바꿔써서 내가 뭐라고 하면, 오나 우나 똑같은 거 아니냐고 그런다. 그러면서 자기네들은 J발음과 Z발음을 한국인이 구분하지 않는다고 웃어제낀다.
예를 들어 '후랑이'라고 발음을 했다고 치자.
'후랑이? 아닌 밤 중에 뜬금없이 후랑이? 후랑크 소세지도 아니고 후랑이가 뭐야? 호랑이를 말하는 건가?'
비교적 유추가 가능한 수준이라고 하더라도 정답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오산 가져왔어?"
"오산? 경기도 오산? 오산은 시티 네임이잖아. 갑자기 웬 오산?"
"아니, 오산 가져왔냐고. 엄브렐라."
"아~~~ 우산~~~~? 오산이 뭐야~ 우산이지!"
"오산, 우산, 포테이토, 포타토. 똑같애!"
"안 똑같거든?!"
그 때 난 알았다. 외국인이 한국 영어를 못 알아듣는 이유를. 블랙커피 톨 사이즈와 털 사이즈가 다르다는 것을.
발음이 조금만 달라져도 단어의 의미와 소리의 연결성이 깨져버리기 때문에 본토 사람의 머릿속은 무한대로 펼쳐지는 가능성들을 생각하게 된다. 도대체 이 사람은 무슨 단어를 말하고 있는 것일까.
'후랑이? 후랑크 소세지? 후랑스? 호랑이를 말하는 건가?'
'오산? 갑자기 웬 오산? 오산에 가고 싶다는 뜻인가? 아니면 다른 무슨 단어를 말하고 싶은 거지? 오삼? 오삼 불고기? 오상? 오송? 오순? 뭐야 도대체...... 엄브렐라? 아~~~ 우산~~~~!!'
언어의 소리와 의미는 원래 자의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약속이 깨지는 순간 무한대의 가능성이 생겨버리는 것이다. 그걸 외국인 입장에서는 이해하기가 힘들다. 네이티브 스피커가 되어 봐야지만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오랫 동안 한국어를 쓰는 외국인을 보지 못하고 살았다.
그러나 한국의 위상이 이렇게나 높아진 만큼, 한국어를 사용하는 외국인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
만약 외국인이 도대체 지금 이게 영어인지, 불어인지, 러시아어인지, 이탈리아어인지, 스페인어인지 분간이 안 가는 말을 한다면, 기억하자. 그 사람은 높은 확률로 한국어 단어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