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정의를 위하여

아름다움에 대하여

by 강유선

꼰대희 채널에 일타강사 이지영이 나와서 순자의 성악설을 설명하는 쇼츠를, 사실 몇 년 전에도 봤지만, 갑자기 알고리즘에 다시 떠서 봤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1. 예쁜 것은 희소하기에 가치가 있다. 선도 마찬가지로 희소하기에 칭송의 대상이 된다.

2. 선이 희소하다는 것은 그 만큼 악한 인간이 더 많고 흔하다는 뜻이 된다.

3. 아이들은 이기적이다. 순수한 아이들은 인간의 본성을 그대로 투영한다.

4.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다.

5. 이기적인 것은 악한 것이다. 고로 인간은 악하다.

해당 영상의 댓글에도 여러 사람이 지적하는 부분이지만, 아름다움과 선이라는 것이 희소하기에 칭송받는 것은 아니다. 선한 사람만 사는 곳에 악한 사람이 온다고 해서 악한 사람이 칭송받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쁜 사람만 사는 곳에 못 생긴 사람이 온다고 해서 갑자기 미의 기준이 역전되지도 않을 것이다.

선이란 그 자체로 선이고, 악도 그 자체로 악이다. 상대적인 개념이 아니다. 선과 악은 그 자체로 절대적인 개념이다. (그렇다고 못생긴 게 악이라는 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은 선과 악이 상대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고, 역사와 문화에 따라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불교가 그렇게 생각하고, 많은 진보주의자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불교 신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불교는 사실 허무주의 종교이다.

'모든 것이 허무하기 때문에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다만 최고의 선은 무, 없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라는 게 불교의 핵심 교리이다. 그래서 절대성과 상당히 거리가 먼 종교이다. 모든 것을 상대적으로 생각한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 것이다. 술에 술을 타고, 물에 물을 탄 듯, 모든 것은 그냥 그것일 뿐, 허무한 것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집착 할 필요가 없고, 어떤 것도 옳다, 그르다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허무한 것이다.

진보주의자들도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정의도 상대적인 것이고, 성별도 상대적이며, 아름다움도 상대적이라고 생각한다. PC주의 운동이니, 젠더리스, 페미니즘 같은 운동들의 근간에는 다 이런 식의 상대주의적인 관점이 깔려 있다. 남자를 무엇으로 정의하고, 여자를 무엇으로 정의하냐 이거다. 아름다움을 무엇으로 정의하냐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역전을 그들은 사랑한다. 정의도, 정체성도, 무엇 하나도 절대적인 것은 없고, 모두 다 역전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 생각의 근원에는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고 믿는 신념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이 세상이 정말 공으로 이뤄져 있고, 모든 것은 상대적이며, 남자가 여자이고, 여자가 남자인가.

너무 극단적인 것은 언제나 일을 그르친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고 믿는 신념은, 모든 것이 절대적이기에 도저히 다름을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철저한 절대주의 만큼이나 파괴적이고 폭력적이다.

이 세상은 상대성으로만 이뤄진 것도, 절대성으로만 이뤄진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둘은 조화롭게 질서를 이루고 있다.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 할 만큼 상대적이고, 정의가 바로 설 수 있을 만큼 절대적이다.

'인간은 악하다'

라는 명제도 너무 극단적이다. 이기심이 곧 악한 것이라는 비약도 우스꽝스럽지만, 인간이 악하다고 그렇게 섣불리 단정적으로 판단하기에 인간은 너무나도 선을 사랑한다. 진정한 악은 선을 가까이 할 수 없는 법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단 말이다.

즉, 인간은 순수악이 아니다. 그래서 저 '인간은 악하다'라는 말은 사실, '어떤 면에서'라는 전제를 깔지 않고는 성립 할 수가 없다. 인간이 100% 순수악이라면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선을 가르친다고 선을 익힐 수 있는 존재가 아니게 된다. 그러면 거기에는 선도 악도 없는 그냥 100% 순수한 악만이 존재 할 뿐이다. 하지만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우리 모두 알다시피, 우리 마음 속에는 선한 구석이 하나씩은 다들 있다. 우리가 순수악이 아니라는 증거다.

게다가 순자가 말하는 이기심은 그냥 귀여운 자기 사랑의 근간 같은 것, 자기생존 같은 것이지, 악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내가 있어야 남이 있고, 내 가족을 책임지는 것이 우선이 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이지, 나와 내 가족을 챙기지 않고 남을 챙기는 것은 선도 아니고, 사랑도 아니고, 무책임하고, 심지어 오만한 것이다. 나와 내 가족을 먼저 챙기는 것은 사랑의 근간이다. 자아를 돌보지 않는 것은 자아를 파괴하는 것과도 같고, 그것은 선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악에 가까운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순자가 말한 어린 아이는 오히려 성선설의 근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즉, 나는 인간에게 선한 면과 악한 면이 모두 있다고 믿으며, 세상의 원리에는 상대성과 절대성이 공존한다고 믿는다. 굳이 더 깊이 들어가자면, 인간은 하나님의 성품과 사탄의 죄성을 모두 지닌 존재이고, 세상은 절대성이라는 기초 위에 상대성이 자유롭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느낌이랄까. 중용적인 진리 안에서 양 극단은 조화를 이룬다고 생각한다.

다만 절대적인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 절대선, 절대악의 기준은 존재하며, 그것은 역사나 문화 따위에 관계 없이 인간이 '선험적', 즉,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부분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것은, '하나님에게로부터 온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태어나기 전부터 알려준 것이기에 전 인류가 선악의 개념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 지구 반대편에 간다고 해서 살인이 선이 되고, 사랑이 악이 되는 경우가 있느냔 말이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그런 경우는 없다. 선한 것은 선한 것이고, 악한 것은 악한 것이다. 선을 악이라고 하는 곳은 없다. 다만, 악한 문화를 가진 사회가 있었을 뿐이다. 어떤 사회가 선을 악이라고 가르친다고 해서 선이 악이 되고, 악이 선이 되는 것이 아니다. 선은 영원히 선이고, 악은 영원히 악이다. 선과 악은 절대로 절대적인 개념이다.

바로 이 기초 위에 상대성이 존재 할 수밖에 없다. 절대적으로 상대적인 개념이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그것은 불교와 같이 허무한 것밖에 되지 않는다. 불교 신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극단적 상대주의는 결국 허무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불교가 공을 지향하는 것이 우연이 아닌 것이다.

인간은 선한 것을 사랑한다. 사랑과 정의를 사랑한다. 그것을 아름답다고 여긴다. 그리고 악한 것을 미워한다. 설령 자기 자신이 때로는 악할지라도, 악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 악이라는 것은 거짓과 배신의 속성을 지녔으므로 악을 사랑한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진정으로 악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선을 사랑한다. 다만 어리석게도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 할 뿐이다. 그리고 나약할 뿐이다. 나약해서 상처받고, 아파할 뿐이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하나님이 인간에게 끝끝내 기회를 주시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우리는 어리석고 나약해서 선악을 혼동하고 아픔에 몸부림치고 유혹에 넘어가거나, 사탄과 죄성에게 속을 뿐, 아직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로 돌아갈 희망이. 그래서 하나님은 기다리시는 것이다. 한 명이라도 더 돌아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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