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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말 많다 Jul 15. 2021

영화 조커: 미치광이와 살인범

영화 '조커' 리뷰

전 세계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빌런을 꼽으라면 누구를 꼽을까? 타노스? 울트론? 많은 빌런들이 있겠지만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고 유명한 빌런은 조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조커라는 매력적인 캐릭터에 대해서 많은 감독들이 해석하며 하나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모습의 조커들이 나오게 되었다. 전작과 비교하며 걱정과 우려 속에서 사람들은 조커를 보러 영화관을 방문했다.

 전작인 잭 니콜슨은 전형적인 미치광이 마피아의 모습이었고, 히스 레저는 혼돈 그 자체를 연상케 하였고, 자레드 레토는 사랑꾼으로만 보였다. 이번 조커는 비참하고 우울한 광인이었다. 만화에 가장 영향을 받지 않고 아서 플렉이라는 인물 그 자체만으로 조커를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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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

개봉 날짜: 2019.10.22

장르: 스릴러

국가: 미국

감독: 토드 필립스

주연: 호아킨 피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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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고담시에 코미디언을 꿈꾸는 한 남자 아서 플렉이 미쳐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광기에 절여지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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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따뜻한 관심을

영화는 초반 아서 플렉을 따라가며 진행되지만 영화의 밑줄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아서 플렉이 아닌 그를 둘러싼 미쳐가는 세상에 긋고 있다.


세상을 웃기기 위해 노력하는 남자는 자신에게 점점 무례해지는 사회에 좌절하며 절망하다 어느새 그 사회에 맞게 받아들이기로 하고 광기에 사로잡히는 이야기가 큰 줄기이기 때문이다. ​


쓰레기로 가득 찬 도시는 아서에게 전혀 따뜻하지 않았고 그의 어머니는 아서의 정신병의 원인임을 알았다.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은 "만약 아서 플렉이 사람들의 관심을 조금이라도 받았다면 이런 광인이 안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점을 품고 본인들만의 답을 찾는다.

이미 미쳐버린 조커가 자신의 신념과 비전을 설명하는 것과 다르게 이번 조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무심하게 사회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비친 고담시의 모습을 던져주며 조커가 탄생하는 과정을 그린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생각하기 론 환경이 그를 미치광이로 만들었고, 그가 바란 것은 뼈만 앙상히 남아있는 그의 등을 따스히 어루만져줄 작은 배려였다고 생각하고 말한다. ​


그러나 아서 플렉에게 돌아온 것은 증오와 비웃음이었고 왜 그가 미쳐야 했는지를 천천히 그리고 심도 있게 그려내며 춤과 분장으로 조커의 감정을 대변하고 있다.


#조금은 다른 리뷰

위의 이야기들은 내가 이제껏 생각하고 지금까지도 맞다고 생각하는 리뷰였다. 많은 리뷰어들이 쓰고 보편적으로 이렇게들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나는 약간의 관점을 비틀어 생각해보았다. 만약에 조커를 현실에 대입해본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

나는 어느 날, 뉴스 기사를 하나 본 적이 있다. 정신 질환에 빠진 남자가 실업과 사업실패로 살인을 저질렀다는 내용과 함께 누가 그를 살인자로 만들었나 하는 기사였다. 기사를 본 많은 사람들이 피해자보다는 가해자에 초점을 맞추었고 정신질환을 가진 살인자라는 자극적인 소재로 사회가 만든 살인자라는 댓글들이 달렸다. 댓글에는 피해자를 추모하거나 가해자의 행동을 나무라는 이는 없었다.


그저 살인자를 만들게 된 사회에 대해 혀를 끌끌 차며 기사를 본 것이다. 나는 이런 기억을 바탕으로 조커의 행동들이 영화상에서나 현실 속에서나 합리화될 수 있는 행동인가를 생각해보았다.

물론 영화는 이런 행동들을 합리화하거나 타당하다고 말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를 미치광이로 만든 사회를 현재 미국 사회가 가지는 문제점들을 투영해 보여준다. 폭동과 살인이라는 주제를 통해서 사회로만 탓을 돌리는 우리가 과연 옳은 생각을 가진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폭도가 미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벗어나려 살인을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살인 사건은 기사를 통해 사람들에게 전해졌고 기사는 사회가 만든 희생자라는 제목을 붙여 가해자에게 처한 상황과 현실에 초첨을 맞추고 기사를 접한 많은 사람들이 가해자가 놓인 차가운 현실에만 혀를 끌끌 차며 생각한다.


이 상황에서 내가 과연 이 살인사건 피해자의 지인이나 가족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과연 가해자의 살인행위에 대해 사회의 탓이라고만 생각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점이 생긴다. 아마 그렇게만은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사회가 낳은 희생자라는 타이틀을 갈가리 찢어버리고 기사를 접한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캐묻고 싶을 정도로 좌절과 슬픔에 잠길 것이다. 단순히 살인사건으로만 기사가 났다면 사람들은 가해자의 행동에 반기를 들고 피해자의 슬픔에 공감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와 이에 납득할 만한 사실을 주었다고 해서 이 행동이 합리화되었다고 생각해선 안된다. 어떠한 상황이던 그가 어떤 사람이건 살인이라는 행위는 알맞게 형용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위 기사를 보면서 살인이라는 행위조차도 가해자만의 상황과 현실만을 대입해 사람들의 생각을 일원화시키는 말도 안 되는 현상에 언론과 인식의 존재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다시 영화 조커로 넘어와본다면 아서 플렉은 권총이라는 저항의 수단을 이용해 살인 사건을 일으키고 또 다른 살인 사건의 동기가 되어준다. 영화는 그가 왜 미쳐야 했는가, 왜 총을 쏴야 했는가에 초첨을 맞춘다.


하지만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토드 필립스는 조커를 둘러싼 사회의 모습을 통해 미국의 문제와 숙제를 보여주는 반면에 아서 플렉의 행동이 합리화될 수도 있다는 관객들의 생각을 꼬집는 것은 아닐까?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미치광이의 살인에 무뎌지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소름 끼치는 행위에 대해 피해자가 되었다 해도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무심결에 심긴 것 같다.


토드 필립스가 노린 것은 언론에 무뎌진 살인사건의 페혜였을지도 모르겠다.

이번 조커 리뷰는 아서 플렉이라는 소외계층을 통해 환경이 미치광이 살인범으로 몰아갔다고 말하는 영화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리뷰였다. 피를 흘리며 웃어야만 했던 미치광이 영화 조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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