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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12편) 엄마와의 말다툼 2편

by Aroana

가족 x편’에 들어가는 이야기는 우리 가족이 어쩌면 드러내고 싶지 않은 잔인한 가정사다. 내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고 브런치를 지인에게 오픈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20대의 멘탈을 뒤흔들었던 가정사를 단지 팩트 중심으로 건조하게만 나열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에세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 느꼈던 감정을 최대한 주관적 입장에서 말해보려 한다. 감정에 치우칠 수 있다는 글이라는 것을 미리 양해 구한다.


적어도 나는 엄마가 왜 갑자기 내가 그렇게 술을 마셔대고 힘들어하는지 한 번쯤은 궁금해할 줄 알았다. 진지한 이야기라는 화두를 꺼냈다면 엄마도 이런 내가 분명 답답해 보였을 텐데... 그저 술만 먹지 않으면 참 좋은 아들이라는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러고는 관철하려던 내 주장을 조용히 가슴 속에 묻었다.


“알았어. 술만 먹지 않으면 모든 게 다 해결되는 거지? 술만 조절할 수 있으면 그냥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대로 살면 되는 거지?”


“네가 알아서 해. 그걸 뭐 내가 어떻게 말리니? 내가 하지 말라고 해도 너는 할 놈이잖아. 그럼 그냥 술만 마시지 마.”


“알았어. 지금까지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것은 다 내 잘못이야. 핑계대지 않을게. 이건 앞으로 고칠게.”

술 문제로 시작된 이야기는 이렇게 빨리 종결되었다. 그러나 엄마는 이런 내 모습이 못내 불만이었는지 갑자기 갚고 있던 아파트 이야기를 거론했다. 그리고 한 말은 끝내 내 가슴에 큰 상처로 남게 되었다.


아파트와 관련해 간략히 정리하자면, 최근 부동산값이 상승하며 우리 집도 덩달아 혜택을 보고 있었다. 엄마와 나는 이미 2017년부터 아파트 대출금을 같이 갚아 나가고 있었다. 물론 부동산의 많은 지분은 엄마에게 있다. 엄마는 아파트를 활용해 미래의 포부를 꽤 현실성 있게 그려나갔고 나는 그런 엄마의 결정을 지지해주며 도움의 손길에 기꺼이 응했다. 나에게도 이로운 선택이 될 수 있어서다. 우리는 시기를 정해놓고 이른 시일 내에 빚을 모두 갚기로 합의했다. 나는 이 시기의 고비만 잘 넘긴다면 이후의 미래는 조금 더 여유롭게 그려나갈 수 있다는 것에 희망을 품었다.


코로나로 인해 자산 가격 폭등을 겪으면서 나는 고민 끝에 내년부터는 지금 갚고 있는 금액에서 1.5배를 올리기로 결심했다. 즉 내년부터 나는 매달 150만 원이라는 금액을 갚기로 한 것이다. 이는 솔직히 말해서 나에게 많이 부담되는 상환액이었다. 해보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을 모두 참고, 또 사실상 개인 저축도 포기해야 가능한 금액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최대한 빨리 털어내며 이 과정에서도 어떻게 하면 인생을 조금 더 즐겁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젊으니까 돈만 갖다 바치는 삶보단 그래도 그 안에서 뭔가 내 것만의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돈이 들지 않으면서 내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것. 글 쓰는 것이 대표적이었다. 하지만, 이 때 엄마가 했던 날 선 말은 마치 내가 그동안 갚아나가려 한 노력이 한 순간 부정당하는 인상을 받았다.


“대익아. 너는 지금 우리가 그려나가는 부동산 계획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 이것만 갚는다고 다 끝이 아니야. 여기서 더 나아가려면 그때는 훨씬 더 고생하면서 갚아야 돼. 이게 끝이라고 절대 생각하지 마. 그러려면 지금부터라도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도대체 어쩌려고 그러는 거냐”


이 때 내 뇌리에 꽂힌 말은 ‘부동산을 쉽게 생각한다’라는 부분이었다. 정말 최선을 다해 빚을 갚고 있고 금액을 올리면서까지 나름대로 미래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지켜본 내 모습은 다른 사람이었다.


“이 자식이 집 빚만 갚으면 아주 그냥 지 멋대로 살 놈이구나”


그랬다. 이 집만 갚으면 나는 술이나 퍼먹고 친구들과 어울리려고만 하는 그런 한심한 망나니로만 그동안 비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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