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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11편) 엄마와의 말다툼 1편

by Aroana

가족 x편’에 들어가는 이야기는 우리 가족이 어쩌면 드러내고 싶지 않은 잔인한 가정사다. 내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고 브런치를 지인에게 오픈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20대의 멘탈을 뒤흔들었던 가정사를 단지 팩트 중심으로 건조하게만 나열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에세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 느꼈던 감정을 최대한 주관적 입장에서 말해보려 한다. 감정에 치우칠 수 있다는 글이라는 것을 미리 양해 구한다.


퇴사 결심을 이유로 진지하게 엄마와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고속버스 차 안이었다. 나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며 엄마에게 이 주제에 대한 내 속내를 처음으로 밝혔다.


“여기 말고 조금 더 확실히 내가 여유를 가질 수 있는 회사에 갈지, 아니면 회사에서 요구하는 책임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곳으로 갈지, 뭐... 쉽게 말하면 그냥 알바 같은 거지. 그런 일을 하면서 하고 싶을 것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


당시 엄마의 대답은 대화가 아닌 조언으로 더럽혀진 충고였다. 내가 궁금했던 것은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을 병행하는 데서 오는 어려움과 그것에 대한 엄마의 의견이었다. 그러나 엄마는 그저 내가 퇴사를 고려한다는 생각에, 무조건 그만두었을 때의 단점만 늘어놓았다. 내 의사와는 별개로 앞으로의 미래를 벌써 다 예상했고 결과는 이미 비참하게 결론내린 뒤였다. 물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엄마’라는 신분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 때 까지도 크게 서운한 생각은 없었다. 다만 나는 그래도 엄마가 조금 더 개방된 시각을 가지고 개인의 의사를 존중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우리 엄마는 분명 다른 엄마와는 조금은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똑같았다. 그 점이 못내 조금은 아쉬웠다.


통화가 끝나고 답답함과 착잡함을 한가득 짊어진 채 일했던 가게에 놀러 갔다. 다음 날이 월요일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였지만, 그냥 이대로 집에 들어가기는 싫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친구들과 그냥 웃고 떠들고 놀고 싶었다. 그러나 술기운이 올라오면서 나는 같은 고민거리를 털어놓게 되었고 그날의 술자리는 새벽 4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아침이 되었고 나는 술이 덜 깬 채로 회사에 정말 힘겹게 출근했다. 일을 하면서는 자괴감이 밀려왔다. 어젯밤 그냥 여기저기 헛소리를 한 것에 대한 창피함이었다. 보는 사람마다 고민을 털어놓은 것에 대한 우스움, 미련함, 한심함 등이 전해졌다. 미친놈처럼 술을 처먹는 내가 꼴도 보기 싫었고 어서 빨리 이런 상황들이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화요일 퇴근길에는 엄마로부터 연락이 왔다. 진지하게 이야기 좀 하자는 내용이었다. 대충 어떤 이야기들이 오갈지는 예상되었다. 그러나 한 번 더 엄마에게 기대를 걸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꼭 토론이 아닌 토의의 장으로 만들고야 다짐했다. 도착 후 테이블에 앉으며 엄마가 운을 띠었다. 대화의 포문은 아니나 다를까, 늦게까지 술을 먹고 다니는 나의 행실에 대한 지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대화는 곧 일방적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누나들마저 내가 너무 걱정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엄마가 가족에게 내가 요새 술을 늦게까지 마시면서 회사나 때려치우겠다고 막 투정이나 부린다는 식의 이야기를 전한 모양이었다. 사소한 것까지 공유하는 우리 가족의 유대관계에 대해 큰 불만은 없다. 그걸로 상처받았다는 것이 아니다. 앞뒤 다 자르고 단지 표면적인 결과만 놓고 이야기하는 엄마의 말하는 방식에 대해 큰 서운함을 느꼈다. 엄마는 우리 가족이 이제서야 평화가 찾아왔는데 왜 갑자기 네가 여기서 말썽이냐는 식으로 나를 몰아붙였다. 다들 제 앞가림하고 결혼에 자식까지 순조롭게 이어졌는데 도대체 너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 말이 마치 나에게는 이렇게 들렸다.


“너도 이제 엄마가 구상했던 계획 아래로 들어와야 하는데 지금 여기서 뭐 하는 짓이냐?”


엄마의 잔소리를 들으면서 떠오르는 내 이미지는 그냥 사회 부적응자의 모습이었다.


“아..., 분명히 다들 그냥 내가 술을 좋아해서 술만 처먹고 평일인지 주말인지 구분도 못하는 놈으로 바라봤겠구나. 그냥 회사 한 달 찔끔 다니고 일하기 싫어서 핑계나 대는 그런 새끼로 여겼겠구나”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진지한 이야기를 하자면서 한다는 이야기가 고작 나에게 술을 마시지 말라는 거였다니. 나는 할 말은 잃은 채 엄마의 이야기를 그저 듣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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