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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10편) 친구의 조언

by Aroana

가족 x편’에 들어가는 이야기는 우리 가족이 어쩌면 드러내고 싶지 않은 잔인한 가정사다. 내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고 브런치를 지인에게 오픈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20대의 멘탈을 뒤흔들었던 가정사를 단지 팩트 중심으로 건조하게만 나열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에세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 느꼈던 감정을 최대한 주관적 입장에서 말해보려 한다. 감정에 치우칠 수 있다는 글이라는 것을 미리 양해 구한다.


고작 며칠 다녀보고 그만둔다는 것이 얼마나 미련하고 한심한 짓인지 잘 알고 있었다. 사회 초년생인 27살, 첫 회사에 들어갔을 때도 3개월은 다녔는데 그로부터 네 살이나 더 처먹은 내 모습이 겨우 이거라니. 얼마나 약해 빠졌으면 팀장이 몇 번 쪼았다고 웅크려 들기나 하고 소심해서 뒤에서는 관둘 생각만 하는 내 자신도 참 미웠다. 그때는 사회경험이 없었다는 핑곗거리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서비스직, 영업직, 판매직도 해봤을 만큼 사람과의 관계에도 자신이 있었는데, 직장 상사와의 관계만큼은 하나도 늘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유도리가 없었고 사소한 실수에도 마음을 쫄려하는 못난 쫌생이였다.


자신 있게 글을 쓴다고 말하기에는 앞으로의 삶에 자신이 없었고, 평범한 회사원이 되자니 회사원의 벽이란 것이 너무나 높아 보였다. 방향을 결정할 시기는 되었고 열심히 사회경험도 쌓았건만 마치 아무것도 이룬 것 같지 않아 보였다.

“형, 왜 소개를 그렇게 평범하게 하려고 해요? 그냥 있는 그대로의 형을 보여줘요. 어쨌든 형은 책을 썼잖아요. 그러면 그냥 작가라고 해요. 뭘 빙 둘러서 이야기해요? 그리고 어차피 회사원으로서 뭐 자기실현을 한다던가, 승진에 욕심이 없다면서요. 그러면 굳이 회사에 다닐 필요가 있어요? 제 말은 그냥 형을 나타내는 직업을 작가라고 이야기하고 어차피 작가가 돈이 잘 안 되는 직업이니까 부업으로 회사원이라고 하든, 따로 돈을 번다고 하면서 그냥 그렇게 소개를 해요. 형. 그거 쪽팔린 거 아니에요. 왜 그게 쪽팔린 거예요?”


“대익아. 내 생각엔 네가 지금 부업에서 본업을 찾으려고 하는 것 때문에 거기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아. 지금의 네 마인드에서 회사는 그냥 부업이야. 물론 회사는 너에게 당연히 그것을 본업으로 요구할 수 있어. 그런데 네 마인드는 그게 아니라며. 네가 그걸 본업으로 여긴 순간 너는 네가 진짜 본업으로 여겼던 글쓰기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거야. 왜냐고? 지금 너는 글쓰기에서 최선을 다하지 못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거든. 물론 나중에는 시간이 지나면 쓸 수 있지. 그런데 지금 네 마인드는 취업 후 ‘처음부터’ 작가정신을 발휘하고 싶은 거잖아. 결국은 이 두 가지가 충돌돼서 그러는 거야. 하나를 확실히 인정해야 할 것 같아. 회사를 부업이라 여길 거면 그럼 그냥 부업답게 다녀. 그것을 본업이라 여긴 순간 너는 글 절대 못써. 그래도 회사원 타이틀을 붙잡고 싶다면 너 스스로가 느끼기에 훨씬 더 심적으로 여유가 느껴지는 일을 찾아. 물론 돈은 더 쪼그라들겠지. 그것도 싫다면 그냥 뭐 알바 같은 거 해야지.


그리고 나는 왜 네가 억지로 회사원이라는 타이틀에 작가를 숨기려고 하는지 잘 이해를 못 하겠어. 아니, 너 작가 맞아. 앞으로 글을 계속 쓸 거라며. 본업이 글 쓰는 게 맞잖아. 그러면 그걸 굳이 왜 회사원 뒤에 숨기려고 하는 거야? 그냥 이야기해. 그냥 조그만 자기계발서 냈다고 이야기하면서 앞으로 계속 글을 쓸 예정입니다 하면 되는 거 아니야? 나는 네가 왜 그걸 부끄러워하는지 솔직히 잘 이해가 가질 않아. 물론 네가 자랑하듯이 떠벌리진 않겠지. 내 말은 그냥 담백하게 이야기해도 그게 절대 자랑같이 들리지 않는다는 거야. 아니, 뭐 어쩌다 낸 책이었으면 네가 부끄러워할 수 있지. 그런데 계속 쓸 거라며. 그러면 최소한 너 자신이 네 글에 대한 대우는 해줘야하지 않겠어? 그냥 작가라고 이야기하고 대신에 너도 돈은 벌어야 되니까 부업으로 일을 한다고 해. 그걸 굳이 꼬치꼬치 캐묻는 사람들이 있을까? 너 보고 책으로 돈 많이 벌지 못했다고 비웃는 사람들이 진짜 있냐는 거야. 또는 네가 글로 돈을 못 버니까 생계형으로 일하는 것에 대해 불쌍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냐는 거지. 아니, 그리고 설사 있으면 어때? 그게 부끄러운 거야? 대신 너는 업이 있잖아. 그 업이 사라진 건 아니잖아. 평생하고 싶은 업이 너는 있는 거잖아. 제발 좀 그걸 부끄러워하지 마“


친구들의 조언은 단지 나를 감싸려고만 하는 말이 아닌 정말 진심이 담긴 위로이자 고마운 충고였다. ‘작가’가 내포하는 말에 여전히 부끄러움이 있지만 계속 글을 쓸 것이라면 적어도 이 말을 굳이 감춰야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로 회사나 승진에 욕심도 없고 전문가로 커리어를 쌓고 싶은 생각도 없는데 이 타이틀이 나를 언제까지 가둘 수 있을까? 무엇보다 회사가 먼저랍시고 어설프게 글을 대하려는 태도 자체가 싫었다. 원하는 글을 쓰기 위한 목적으로 돈을 벌려는 건데, 최선을 다해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곳에서 내 어설픈 글이 인정받을 리는 더더욱 만무했다. 성공하지 못한다 해도 원하는 주제로 글을 쓰고 싶었고 차라리 열심히 노력해서 대차게 까이는 편이 더 나았다. 그래야 후회가 없고 아쉽지 않으니까 말이다.


조금씩 마인드가 정립되고 나니 퇴사해야 하는 이유가 좀 더 분명해지기 시작했다. 앞으로 어떤 회사를 갈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회사 뒤에 작가라는 타이틀을 숨기지는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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