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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사원입니다

by Aroana

야간 알바를 그만두는 것은 한 달 전에 이야기했다. 많은 정이 들었던 만큼 헤어짐을 좋게 가지고 싶어서였다. 사장님은 그 전에 취업이 되면 언제든 보내 준다며 기간에 얽매이지 말라고 하셨다. 나는 또 한 번 취업 시장에 몸을 내디뎠다.


자소서를 고치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있었다. 바로 길렀던 머리부터 보통으로 되돌려 놓는 일이었다. 캐주얼 바에 일하면서 나는 줄곧 머리를 길러 왔는데 길이는 어느새 어깨를 조금 못 미치는 정도까지 내려앉았고 색깔은 조금 밝은 브라운으로 염색되어 있었다.


“다시 취업하려고 해서 머리를 자르려고요. 그냥 예전처럼 해 주세요”


단골 미용실 원장님께 말씀드린 후 내 머리는 그야말로 평범함을 되찾았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한없이 어두워 보이는 검은색은 누가 봐도 염색이라는 것을 티 냈다.


여러 차례 면접을 본 후 강남은 더 이상 내 선택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일자리가 많아도 출퇴근에서 불편함이 느껴졌다. 희망하는 직종이랄 것도 없었다. 그냥 회사원이 주는 ‘이미지’만 가지면 충분했다. 주5일, 나인 투 식스잡, 적당한 급여에 칼퇴가 지켜지면 뭐든 할 기세였다. 실제로 나는 선호하는 지역만(출퇴근이 가능한) 표시했을 뿐, 직종에 기호사항은 선택하지 않았다.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많은 것은(자소서를 복붙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나는 왠지 될 것 같은 회사(지원율이 저조한), 급여 정보가 나온 회사에 정말 무작위로 이력서를 넣어가며 아무 곳이나 걸리면 들어가자고 생각했다.


여러 곳과의 기업 탐방을 마치고 나를 필요로 하는 한 회사에서 최종 합격을 했다. 해당 기업은 의류회사였고 나는 이 회사의 물류팀에서 일하게 되었다. 물류 업무는 내가 처음 해보는 분야였기에 낯설기도 했지만, 또 동시에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행정업무 보다는 단순 잡무가 많을 것 같았고 의류를 거래처에 보내야 하니 힘쓰는 일도 곧 잘 있을 것 같았다. 모두 내가 선호하는 노동이었다. 회사 성장성을 보고 온 것도, 내 직무의 발전 가능성을 고려한 선택도 아니었기에 왠지 머리 식히며 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이곳에서 안정을 외치며 누구보다 열심히 박스를 접고 택을 붙이며 포장하기를 희망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지난달과 비교했을 때 이제 나는 완벽히 ‘보통’ 사회인으로 탈바꿈했다. 나인 투 식스, 사무직, 적당히 대우받을 수 있는 정도의 급여. 이것들은 사회에서 내 신분을 증명해 주는 것들이 되었다. 이제 마음 놓고 감추면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고 필요하면 언제든지 대출을 일으켜 투자할 기회가 생겼다. 나는 사회가 유심히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제도권의 혜택을 누리며 나에게도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나이대의 역할을 고려했을 때 30대 초반의 내 모습은 마치 돌고 돌아 보통으로 회귀하는 과정처럼 보였다. 20대 중반에는 목표했던 꿈을 좇아 치열하게 생활하기도 했고 후반에는 인생의 판을 흔들어 보기 위해 머나먼 이국땅으로 도피도 해봤다. 아직은 방황해도 괜찮다는 스스로를 믿어가면서 말이다. 모험심이 나를 흔들었던 과거의 감정이었다면, 이제는 내 안에 또 다른 무언의, 어떤 ‘안정감’이 요구되고 있음을 느꼈다.

“일단은 ‘평범함’ 속에 나를 넣어 놓자. 이제는 하고 싶은 것들을 평범함과 잘 조화시켜 나가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

어쩌면 꽤 오랫동안 정규직 일자리가 될 수 있는 이곳에서 나는 살면서 필요한 많은 안정적인 것들을 채워나가기로 했다. 그리고 이 계획은 그러나,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부러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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